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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tvN <알.쓸.신.잡3> 프라이부르크 - 미래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한 번 방송분량도 둘로 나누어 리뷰해야 할 만큼 상당히 많은 내용이 담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3>의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편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나치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독일의 과거 이야기에 대한 수다가 펼쳐졌다면, 이제 미래 이야기에 대한 수다입니다. 그런데 미래로 시간여행을 할 것도 아니고 어떻게 미래 이야기를 한다는 걸까요?


그건 프라이부르크가 독일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생태도시이며, 환경과 에너지에 있어 미래를 위한 모범답안을 보여준 도시라는 것에서 단서를 얻습니다. 즉, 출연진은 프라이부르크의 현재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곧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첫 수다 주제는 "벌"입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 이야기하면 "벌=생태"죠. 환경이 파괴되는 곳에서는 벌이 사라집니다. 벌이 사라지면 꽃과 나무가 번식하기 어렵고, 결국 사람이 먹을 것이 사라지고 사람이 건강하게 자랄 환경이 사라집니다. 하루동안 따로따로 여행했던 출연진이 이구동성으로 프라이부르크에 벌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영하 작가는 공동묘지에 다녀왔는데, 묘지 내에 온전히 벌을 위한(꿀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닌) 벌통이 있고, 각각의 묘지는 마치 미니 정원처럼 개성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그 자체로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혹시 이 방송을 보고 나서 이 묘지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시내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 아래 지도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상욱 박사는 시내의 한 박물관에서 벌을 만나는데, 박물관까지 가는 길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독일 외에는 거의 구경해보지도 못했던 시절, 당연히 그 시절에는 스마트폰 같은 것은 없었으니 종이 지도 펴들고 길을 찾으며 여행했는데요. 길 찾는 게 굉장히 쉬웠어요. 이런 주소 시스템이 말하자면 도로명주소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도로명주소를 도입한다 했을 때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도로명만 보고 길을 못 찾겠어요. 여기서 더 부연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도로명주소는 설계 자체가 "망"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왠지 독일 하면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지고 질서정연하고 오차도 없고 꼼꼼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죠. 실제 겪어보면 그런 모습을 "답답하리만큼" 많이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인이 특별히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라, 독일의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거기서 살게 되면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사람이 다 그렇게 변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에는 훨씬 더 허술하죠. 융통성이 없고 매사 매뉴얼과 룰을 신봉하니까 그 매뉴얼이 부실하면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망한 베를린 신공항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제 박물관에서 벌을 만날 차례입니다.

이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자연과 인간 박물관(Museum Natur und Mensch).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생태학 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직접 꿀벌이 수분하는 방식을 몸으로 체험하며 과학적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험장을 포함하여 벌에 대한 전시회가 매우 비중있게 다뤄진다고 소개되었습니다. 참고로, 방송에 나온 벌 전시관은 2018년 5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진행되는 특별전이므로 이 방송을 기억하며 2월 중순 이후에 박물관에 찾아가면 당황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독일은 이렇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직접 몸을 쓰고 체험하는 박물관이 굉장히 많습니다. 놀면서 공부하는 게 생활화 된 나라입니다.

이토록 방송에서 벌을 집중하여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도 그렇지만 독일도 벌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등 환경적 원인 때문이죠. 결국 이 수다가 향하는 목적지는 "환경"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수다가 펼쳐집니다. 환경 파괴의 가장 큰 유발원은 온실가스다, 그러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어떤 대안이 있는가, 바로 이 주제 때문에 프라이부르크에 온 것입니다. 방송에서는 김진애 박사의 표현을 빌어 "노아의 방주"라고 이야기하네요.


성서에 나온 노아의 방주 내용은 다들 아실 겁니다. 큰 비를 내려 지구를 멸망시키는데 노아에게만 미리 명령하여 방주를 만들어 노아와 가족들, 그리고 암수 한쌍의 동물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죠.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바깥 세상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방주 안은 생존이 가능한 마을이 프라이부르크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보방(Vauban) 지구입니다. 방송에서는 보봉이라고 표기하였는데, 제가 프랑스어는 문외한이라 맞다 틀리다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발음기호를 보면 보방에 가깝습니다. 아무튼, 저는 보방이라고 적겠습니다.


효과적인 주제의 전달을 위해 조금 더 뒤에 나오는 내용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도시가 된 것의 출발은 원자력발전소 반대입니다. 1970년대에 이 지역에 원전을 짓겠다고 하니까 주민들이 반대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겠죠. "내 지역에 설치하는 건 반대하면서 다른 지역에 설치하는 건 괜찮고?"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놔" "원전이 싫으면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쓰지도 마"


프라이부르크는 진짜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에너지는 우리가 만들겠다"면서 보방 지구를 완성합니다. 보방 지구의 주민들은 촛불 켜고 벽난로에 장작 떼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 똑같이 살아요. 하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모든 전기는 보방 지구에서 자체 생산됩니다. 태양광, 풍력, 소수력, 열병합 발전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대체에너지를 활용해 원전 없이도 인간이 누릴 것을 다 누리며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걸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한국도 원전 때문에 시끄럽죠. 독일의 탈원전과 관련된 가짜뉴스도 굉장히 많습니다. 프라이부르크는 그 가짜뉴스가 "가짜"임을 고발하는 산증거입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프라이부르크 여행이 굉장히 시의적절했노라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사회적인 문제이므로 이 자리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하는 하지 않겠습니다. 프라이부르크를 화두로 하는 독일 원전 이야기는 예전에 제 독일여행 블로그에 정리해둔 글이 있습니다. 여행 이야기 0.1%에 정치적 이야기 99.9%로 채워진 글이므로 관심있는 분들만 클릭해주십사 합니다.

보방 지구는 여행보다는 견학을 위해 많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방송을 통해 대신 견학할 수 있는 시간까지 마련해주었습니다. 정말 집요하게 친환경 에너지원을 찾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도록 궁리하고 시도하는 보방 지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견학을 위해 찾아가는 곳이라 했는데, 실제로 프라이부르크는 전세계에서 "배우러" 찾아오는 곳입니다. 기사 조금만 검색해보면 한국에서도 무슨 지자체가 탐방을 갔다느니 무슨 국회의원이 배우러 간다드니 하는 뉴스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한국도 프라이부르크에서 친환경정책을 숱하게 배웠습니다만, 그걸 현실에 적용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봅니다.


혹자는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그 작은 마을 하나니까 자급자족이 가능하지 독일 전국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방 지구가 하나둘 더 늘어날수록 독일 전국에서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의 수요는 더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환경을 지키게 됩니다. 앞서 "노아의 방주"라는 표현이 있었죠? 방주에서 목숨을 구한 건 노아의 가족뿐입니다. 그러나 방주가 곳곳에 있었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심판을 면했겠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서울시 전체를 보방 지구처럼 만들 수는 없어도 새로 만드는 신도시 아파트단지 하나는 가능하겠죠. 그런 단지가 하나둘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겠죠.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문제입니다. 탈원전은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보방 지구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프라이부르크 여행 중에도 소소한 에너지 절약의 사례들을 숱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아, 이래서 친환경수도라고 하는구나", 자연스럽게 수긍됩니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 친환경 에너지조차도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담론을 확장합니다. 프라이부르크는 시내 중심부에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전거를 탑니다. 이왕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으니 시내 외곽에서도 자전거를 탑니다. 자동차가 더 불편한 도시에요. 시에서는 트램망을 제대로 깔아서 보조하죠.


이런 시스템이 운영되려면 결국 주민의 동의가 필수입니다. 당장 내가 불편한 걸 감수해야 돼요. 내가 불편하더라도 이 시스템이 안정되게 운영되도록 동참하겠다는 주민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에 이 기적적인 친환경의 성공사례가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어째서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전에 반대했고 친환경도시를 만들었는가, 이 방송은 그 배경으로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숲; 흑림)를 이야기합니다.

슈바르츠발트는 독일 서남부에 자리잡은 큰 산맥지대입니다. 프라이부르크는 슈바르츠발트의 끄트머리쯤 되겠구요. 그 이름은 워낙 숲이 빽빽해 하늘이 보이지 않아 어둡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에 쓰여있다고 했는데,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렌즈 독일>에도 쓰여있습니다. 수줍

이 지역 사람들은 슈바르츠발트에서 농사도 짓고 벌목과 사냥도 하고 교역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원전 때문에 슈바르츠발트가 파괴되면 자기 삶의 터전이 다 날아가버리는 거죠. 그렇게 지켜낸 슈바르츠발트를 김영하 작가가 직접 들어가 보는데요.

막상 들어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더랍니다. 그 이유가 뭣인고 하니, 슈바르츠발트는 사유지이므로 땅주인이 나무를 베어 영리활동을 해도 됩니다. 단, 조건은 베어내는만큼 새로 심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 나무의 개체수는 유지되는데 다양한 나이대의 나무가 공생하게 되고, 하늘을 빽빽하게 가리지 않지만 그 대신 해가 숲 전체에 잘 들어 더 건강한 숲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자연은 파괴되어도 참을 수 있지만 숲이 파괴되는 건 참을 수 없는 민족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더더욱 슈바르츠발트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지금의 결실을 맺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유희열씨가 "게르만족은 숲의 민족"이라고 코멘트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이 책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주제로 김상욱 박사가 다녀온 테마파크 오이로파 파크(Europa-Park)를 보여주고 마무리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대화가 이어지는 지금까지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스폿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테마파크를 현장감 있게 보여주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출연진은 오이로파 파크라고 발음하던데 자막은 유로* 파크라고 적었습니다. 독일어식으로는 오이로파가 옳은 표기입니다.


<알.쓸.신.잡3>의 독일 프라이부르크편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1회차 방송인데도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아서 리뷰도 두 편으로 쪼개 올렸습니다. 특히 이번 글은 제 코멘트도 굉장히 많이 들어갔는데, 이 프로그램 콘셉트 자체가 "수다"니까 거기에 동참하는 리뷰라 생각하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