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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2017 독일 총선 결과

독일 언론과 독일연방의회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료를 보고 있는데 아직은 잠정집계(Hochrechnung)라고 타이틀을 달고 있으나 거의 이대로 게임이 끝난 것 같아 이 결과를 소개한다.


예상대로 메르켈의 4선은 성공할 듯하다. 기민당이 이번에도 다수당이 되었다. (기민당은 바이에른 지역의 기사당과 사실상 같은 공동체이므로 두 정당의 지지율을 합쳐 계산한다. 아래 소개될 모든 자료에 Union이라고 나오는 것이 기민당-기사당 연합을 뜻하며 필자는 모두 기민당으로 통칭한다.)

그런데 지지율은 역대 최악이다. 기민당의 지지율은 32.8%. 이것은 1950년대 이후 기민당의 최저 지지율에 해당된다. 바로 직전 총선인 2013년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던 기민당이 난민 이슈와 극우주의 광풍,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등 메가톤급 폭풍이 연달아 터지며 지지율을 다 까먹었다.


기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사민당(SPD)은 더 최악이다. 20.4%는 사민당 역사상으로도 최저 득표율에 해당한다. 역대 선거 중 사민당이 가장 말아먹었다(!)고 평가받는 2009년 총선보다도 2.5% 떨어졌다. 사민당의 총리 후보자 마르틴 슐츠(Martin Schulz)는 EU 유럽의회 의장 출신으로 독일에서 명망이 높은 정치인인데 그의 이름값으로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사민당은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주목할 것은 독일의 극우정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의 약진이다. 2013년 총선에서 5% 미만 획득으로 원내 입성에 실패했던 AfD가 무려 13%의 득표율로 단숨에 제3당이 되었다. AfD의 원내입성은 모두가 기정사실화했던 것이지만 제3당까지 되는 것은 선거 직전까지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결과이기에 독일의 충격이 상당할 것 같다.

이 결과대로라면 잔여의석을 포함해 총 690명의 하원 의원이 선출되고, 기민당은 그 중 238석을 가지게 된다. 원내 과반을 획득해야 메르켈 총리 선출이 안정적으로 가능하다. 독일의 총리는 하원의원의 투표로 선출되기에 하원에서 과반 획득이 중요하다. 그래서 늘 집권당이 야당과 연정을 구성해 과반을 획득한다고 앞선 포스팅에서 소개한 바 있다.


과반인 345석을 초과하려면 기민당에게 108석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사민당은 일찌감치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 사민당은 2005년에도 기민당 연정에 참여했다가 2009년 선거를 말아먹은 전례가 있었다. 그래서 2013년에도 연정 참여에 몹시 고심하다가 진통 끝에 참여하게 된 것인데 이번에 또 "연정 후 대폭락"이 실현되었기 때문에 절대 연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기민당과 사민당 모두 AfD와 연정할 일은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 결국 기민당은 좌파당(Linke), 녹색당(Grüne), 자민당(FDP) 중 최소 두 곳을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한다. 현재 독일 언론에서는 녹색당-자민당을 연정 파트너로 하는 "자메이카 연정(자메이카 국기색인 흑-녹-황에서 착안한 네이밍)"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녹색당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좌파정당이고, 자민당은 기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우파정당이다. 자메이카 연정이 성사된다면 매우 좌파적인 정책과 매우 우파적인 정책을 기민당이 모두 포용해야 한다. 참고로, 자민당은 독일 정치사에서 늘 친재벌적인 경제정책을 주장해 온 유서깊은 강소정당이었는데 2013년에는 5% 획득에 실패해 원내 입성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만약 연정 구성이 결렬되어 기만당의 과반 달성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예정대로 하원의원의 투표로 총리를 뽑지만 과반 달성에 실패해 임명자가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러면 과반 이하라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총리로 임명된다.


그러니 연정에 실패하더라도 메르켈의 4선은 가능하다. 하지만 독일 통일 후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소수정부의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 지경까지 간다면 메르켈의 리더십은 종말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야당 2곳을 포섭해야 할 입장이다.


혹시 역으로 야당끼리 연정을 구성해 총리를 배출하는 역전도 가능할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려면 사민당이 AfD를 제외한 나머지 야당을 모두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이것은 유권자 입장에서 정치권의 선거불복으로 비춰지므로 전부 심판당하기에 딱 좋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은, 기민당이 연정을 구성하느냐 재선거로 가느냐 두 가지뿐이다.

위 그래프는 이번 총선의 이변을 제대로 설명해준다. 각각 서독(+서베를린)과 동독(+동베를린) 지역에서의 득표율을 나타냈다. AfD는 동독 지역에서 근소하게 2위를 차지했다. 현재 독일의 극우주의가 주로 드레스덴 등 동독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 경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필자는 그것이 단순히 난민 문제 때문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고 분석하는데, 기회가 되면 별도의 글로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아무튼 동서의 지지 결과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점만 이야기한다.


참고로 동독 지역에서 3위에 해당되는 좌파당은 원래 독일 분단시절 동독의 집권당인 통일사회당에서 이어진다. 보통 공산주의 국가의 집권당은 공산당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동독의 경우 분단 전부터 공산당 외에도 좌파정당이 여럿 있었기에 소련이 이를 강제로 병합하여 통일사회당이 되었다. 통일 후 통일사회당 내의 개혁적인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계속 활동하다가 2007년 새로 창당한 곳이 좌파당이다. 아무래도 그렇기 때문에 좌파당은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로 고려되지 않는 편이다. 현재로서는 기민당이 "자메이카 연정"을 성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민당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더 이상 연정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사민당이 연정에 참여하면 AfD가 원내 제1야당이 되는 셈이기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전국 투표율은 76.2%로 집계되었다. 2013 총선보다 4.7%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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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결과도 발표되었다. 양대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이 모두 휘청거리고 AfD가 제3당이 되어 기민당으로서는 "자메이카 연정"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상황이라는 큰 줄거리는 동일하다. 다만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는 위 내용과 차이가 있어 이 부분만 다시 부연한다.

독일 연방의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잔여의석을 포함한 총 의원수는 709명. 그 중 기민당은 246석을 획득했기에 과반을 넘기려면 109석이 추가로 필요하다. 사민당이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메르켈 총리의 4선으로 가는 길에는 "자메이카 연정"만이 유일한 해답이 되었다. 극우정당 AfD는 첫 원내 입성에 94명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 독일 사이트에서 연정의 경우의 수를 그래프로 그렸다.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Große Koalition), 자메이카 연정만이 가능한 경우의 수로 꼽힌다. 참고로 마지막 두 가지 경우의 수는 (물론 과반 달성이 불가능하지만) 기민당을 빼고 야당끼리 연정하는 케이스이다. 즉, 하고자 하면 야당끼리 연정하여 과반을 달성해 총리를 배출하는 역전극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함부로 그런 짓을 할 간 큰 정당은 없겠지만. 밑에서 두 번째인 사민당-자민당-녹색당 연정은 신호등 연정(Ampelkoali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빨강-노랑-녹색이기 때문. 이런 식으로 연정마다 이름을 붙이는 것도 독일 선거의 소소한 재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