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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25.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늘 언급되는 곳이 몇 곳으로 정해지는데,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프렌즈 독일>을 만들 때 표지사진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제안하기도 했었습니다. 금번 개정판에서는 표지가 바뀝니다. 3년간 표지로 열일해준 브란덴부르크 문의 은퇴가 멀지 않았습니다.

파리에도 개선문이 있죠. 브란덴부르크 문은 그와 같은 용도의 개선문입니다. 그러면 왜 브란덴부르크 문이 독일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느냐, 독일의 영욕의 역사가 이 한 장소에 그대로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완공은 1791년.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이어서 "대왕(der Groß)"이라는 호칭을 받은 이가 딱 한 명인데(독일 역사 이전에 해당되는 카를 대제는 제외), 바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입니다. 이 시기 프로이센은 유럽 전체를 위협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합니다. 그 기틀을 만들고 1786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사망한 뒤 부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선왕이 이룩한 파워를 과시할 상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788년 건축을 명령해 1791년 브란덴부르크 문이 완공된 것입니다.


즉,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전성기의 아이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프로이센의 군대는 전쟁에 나가거나 들어올 때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하였습니다. 프로이센은 독일을 통일하고 독일 제국을 출범하는 주체가 되었고, 거기서 베를린을 수도로 하는 독일의 기틀이 닦인 것이니, 결국 브란덴부르크 문은 오늘날 독일의 기틀을 상징하는 장소인 셈입니다.

당시 프로이센이 선호했던 고전주의 양식을 제대로 꽃피웠고, 문 위에 거대한 콰드리가(사두마차)를 이끄는 빅토리아 여신의 형상을 올렸습니다. 참고로 나폴레옹이 독일에 침공했을 때 이 콰드리가를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전리품으로 갈취한 것이 루브르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죠. 그나마 독일은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에 승리하며 콰드리가를 돌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서의 경계가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에 속했고, 그 바로 바깥의 길이 동서의 경계였습니다만, 아무튼 브란덴부르크 문이 곧 동서의 관문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문이 복원된 것이 1950년대 후반,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앞에 베를린 장벽이 놓입니다.


위에 연합군 병사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그 뒤에 콰드리가의 뒷태가 보이죠?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콰드리가를 정면으로 보는 방향이 동베를린, 콰드리가의 뒷태를 보는 방향이 서베를린입니다. 지금 지명으로는 파리저 광장(Pariserplatz)이 동베를린, 3월 18일 광장(Platz des 18. März)이 서베를린입니다.


한 때 독일의 힘을 과시하며 군대가 지나가던 개선문은, 이제 양쪽에서 군대가 지키며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분단의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 장벽과 함께 분단의 상징으로 꼽힙니다. 아니, 베를린 장벽은 "상징"이 아니라 그냥 분단 그 자체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브란덴부르크 문이 진정한 분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벽을 부수거나 장벽 위에 올라 환호합니다. 철의 장벽이 무너진 그 날, 브란덴부르크 문을 뒤에 두고 기쁨을 나누는 베를린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공산주의 같은 이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독일이 통일된 지금, 브란덴부르크 문은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베를린의 유명한 관광지로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하고, 주변에는 미국 프랑스 등 연합군에 속했던 국가의 대사관이 있습니다.


한때 지나가고 싶어도 지나갈 수 없었던, 고작 몇m 남짓 되는 이 문의 앞뒤를 사람들은 아무 제약 없이 왕래할 수 있습니다. 서로 총구를 겨누던 곳에는 이제 쉴새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의 자유가 펼쳐집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볼 때 그냥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고 마는 게 아니라, 이 역사적인 스토리를 기억하세요. 여기 놓여있던 장벽은 깨끗하게 허물어졌고, 절대 지나갈 수 없었던 이 길을 내가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으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수십년 전에는 총을 든 군인의 적대심만 가득했었음을 기억하세요.

브란덴부르크 문의 양편에는 건물이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는 관광안내소, 다른 하나는 고요의 방(Raum der Stille)입니다. 고요의 방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입니다. 그림 하나 걸려 있고 소파나 의자가 아무렇게 놓여있어요. 여기서 자신의 인종, 종교, 국적, 이념 등 무엇에도 구애받지 말고 쉬었다 가라는 장소입니다. 당연히 입장료도 없고요. 바로 바깥은 수많은 관광객이 웃고 떠들지만 고요의 방은 조용합니다.

2018년에 새로 문을 연 브란덴부르크 문 박물관(Brandenburger Tor Museum)도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이 역사적인 스토리가 하나의 박물관에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사진, 동영상 등 수많은 자료를 통해 브란덴부르크 문이 어떻게 생겨서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그 시대의 흐름과 역사를 알려줍니다. 문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습니다.


어떤가요. "그냥" 개선문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된 프로이센의 영광의 상징, 독일 분단의 상징, 그리고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에 압축된 독일의 역사입니다. 그냥 옛날에 만든 좀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진 한 장 찍고 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죠? 독일여행은, 특히 베를린 여행은 알면 알수록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여행에 스토리를 입힐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