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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217. 둘로 나뉜 도시, 200년 전, 어떤 노래 하나

여러분도 잘 아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는 역사적으로 대주교가 관할하던 유서깊은 지역입니다. 잘츠부르크 도시 하나가 아니라 그 지역의 광활한 땅이 대주교의 관할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대주교는 누구보다 높은 신분이었죠. 그래서 대주교의 영지는 어떤 나라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땅이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나라에 속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주교는 법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권력자였죠.


그런데 나폴레옹의 유럽 침공으로 신성로마제국이 붕괴하면서 이러한 대주교의 영지도 왕권 국가에 종속됩니다. 잘츠부르크 역시 왕권 국가에 종속되는데, 하필 둘로 나뉘어 일부 지역은 독일 바이에른에, 일부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하게 됩니다. 잘츠부르크 도시는 오스트리아에 속했구요.


오늘 소개할 도시는 원래 하나의 생활권이었으나 이 분할 과정에서 둘로 쪼개진 어느 시골 마을입니다. 둘로 나뉘어 오스트리아에 속하게 된 지역은 오베른도르프(Oberndorf bei Salzburg), 바이에른에 속하게 된 지역은 라우펜(Laufen(Salzach))입니다.

저를 오베른도르프로 인도한 것은 이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나름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올해가 그 200주년이라 성대하게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건을 추적하며 오베른도르프로 갔습니다.

오베른도르프는 잘츠부르크에서 에스반으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참으로 한적한 마을에 내려 전철역 밖으로 나오니 이런 표지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슈틸레 나흐트 카펠레(Stille Nacht Kapelle). 그러니까 슈틸레 나흐트 예배당입니다. 그러면 슈틸레 나흐트는 뭔가요? 같은 뜻의 영어단어인 Silent Night로 바꾸면 들어본 분이 많을 겁니다.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네, 바로 전세계인이 다 아는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밤 거룩한밤>입니다. 슈틸레 나흐트 카펠레는, 1818년 12월 24일에 이 노래가 처음 공연된 자리에 세워진 기념 예배당이고, 200주년인 올해 잘츠부르크를 중심으로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슈틸레 나흐트 예배당입니다. 언덕(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위에 작은 예배당 하나가 오롯이 서 있습니다. 뒤편 핑크색 건물은 박물관이구요.

내부도 단촐합니다. 작곡가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 작사가 요제프 모어(Joseph Mohr)의 초상화, <고요한밤 거룩한밤>의 원곡 악보 등이 벽에 소박하게 걸려 있습니다. (원곡은 한국과 달리 6절까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원래 이 노래가 처음 연주된 곳은 이 자리에 있던 성 니콜라이 교회였는데, 1890년대 홍수가 발생해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허물어진 자리에 이런 기념 예배당 하나를 지어 과거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측의 높은 탑은 오베른도르프의 급수탑입니다.

예배당 바로 옆으로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잘차흐강(Salzach). 그 이름을 들어보았다면 잘츠부르크에 대해 잘 아는 분이 분명합니다. 잘츠부르크에 흐르는 그 강이 바로 잘차흐강이거든요.


잘츠부르크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을 독일 각지로, 나아가 흑해 연안까지 운송할 때 배를 이용했습니다. 잘차흐강은 도나우강의 지류이구요. 도나우강이 오스트리아를 관통해 흑해까지 연결되죠. 그래서 오베른도르프는 소금 교역로에 속했기에 작지만 부강한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철도가 놓인 뒤 더 이상 배로 소금을 운송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도시의 활력을 잃게 되었죠.


한때 도시의 번영을 가져다주었던 잘차흐강은, 오히려 홍수로 도시에 상처를 입히고 유서깊은 교회까지 파괴하고 만 셈입니다.

굽이쳐 흐르는 잘차흐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마을, 여기는 오스트리아가 아닙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오베른도르프와 둘로 나뉜 독일 바이에른의 도시 라우펜입니다. 걸어서 건너가도 될만큼 지척에 있는 마을은 하루아침에 다른 나라로 분할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 EU 통합으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이웃 마을에 갈 때에도 출입국심사가 필요했었습니다.

다리를 건너 라우펜으로 갑니다. 오베른도르프와 라우펜을 연결하는 다리는 두 개. 하나는 사람이 건너는 곳, 하나는 사람과 자동차가 건너는 곳입니다. 다리 주변의 강변 산책로를 걸으며 중간중간 보이는 기념비를 구경하면서 두 도시를 여행합니다.

라우펜은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는 아닙니다. 독일 국경 끄트머리의 자그마한 마을이어서 시골 특유의 푸근한 분위기가 가득하고, 꾸미지 않은 소도시의 매력을 볼 수 있습니다. 광장과 교회 등 전형적인 독일 소도시의 풍경을 보며 다시 다리를 건너 오베른도르프로 넘어갑니다.

한때 다리의 양끝에 출입국심사가 있었겠죠. 지금은 그러한 절차가 없어져 실감이 덜합니다만, 이렇게 다리를 건너서 다른 나라로 넘어갑니다. 적어도 한국인은 자국에서는 걸어서 국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도 나름 재미를 선사합니다.

다시 다리를 건너 오베른도르프에 들어서면 정면에 큰 교회가 보입니다. <고요한밤 거룩한밤>이 처음 연주된 성 니콜라이 교회가 무너졌을 때 교회만 파괴된 게 아니라 그 지역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겠죠. 오베른도르프에서는 1900년대초 다른 쪽에 새로 중심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개발합니다. 그때 새로 지은 교회인데, 무너진 교회를 기념하며 새 이름도 성 니콜라이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소금의 성"이라는 뜻의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번성했던 도시, 그러나 스스로의 뜻과 무관하게 하루아침에 둘로 쪼개지고 다른 나라에 속하게 된 도시, 거기서 200년 전에 연주된 세계적인 노래 하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식의 수식어는 달지 않겠습니다. 올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츠부르크를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세계적인 노래의 200주년을 생각하며 잠깐 나들이갈만한 곳이라는 정도로 소개하겠습니다. 이왕 간 김에 걸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걸어서 넘나드며 가볍게 산책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