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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38. 프라이부르크와 독일 원전

블로그에 유입되는 검색 키워드를 살펴보면, 여행과는 상관없는 "독일 원전"에 대한 글을 찾아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원전은 논란과 갈등이 많은 문제이다보니 해외 사례를 들어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찬성측에서 독일의 사례를 많이 인용합니다. 그래서 독일 원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원전 찬성측이 이야기하는 독일 원전 관련 이야기는 "가짜뉴스"가 많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친환경수도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를 화두로 하여 독일 원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몹시도 정치,사회적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서남부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모두가 이 도시를 "친환경수도"라 부르고, 환경 정책을 배우려고 정치인, 행정가, 지식인, 언론인들이 숱하게 방문합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프라이부르크는 자주 언론에 등장합니다. 여행 이야기보다는 환경 문제를 테마로 하는 정치,사회적인 이야기가 주로 보도되기는 합니다만.


프라이부르크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독일에서 프라이부르크에 새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려고 결정하자 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합니다. 한국에서도 내가 사는 곳에 원전 건설한다고 하면 환영할 사람은 적겠죠. 환경단체 등이 격렬히 반대시위를 하는데, 프라이부르크도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하겠죠.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이야기하라"고요. 프라이부르크는 실제로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원전 건설을 반대하면,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쓰지도 말라고 빈정거리겠죠. 프라이부르크는 보방(Vauban) 지구에서 "자체 생산한 전기"만으로 주민이 생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대안을 내놓고 실행해 보여주었습니다.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 등 대체에너지를 사용해 지역의 모든 전기수요를 충족하면서도 시민들은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친환경을 위한 갖가지 정책을 도입합니다. 보방 지구에는 자동차가 아예 들어오지 못합니다. 마을 입구 외곽에 큰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마을 내에서는 자전거나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중교통 트램을 이용합니다.


독일에서는 드물게 아파트 형태의 주거 건물이 많은 것도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공동주택이 많다는 것은 인구밀도가 높다는 뜻이고, 마을 규모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상업시설도 자연스럽게 입지하게 되죠. 자기들끼리 고고하게 고립되어 사는 게 아니라 누릴 거 다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환경 중요한 건 다 공감하지만 막상 싸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전기가 없으면 전기료가 오르는 등 내 삶의 질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죠.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건데, 그런 "불안감"을 조장하여 변화를 거부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는 "막상 해봤더니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실체도 없는 불안감에 떨 이유가 없다는 거죠.


독일은 완전한 탈원전을 결정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독일도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원전이 싸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독일인은 그때부터 탈원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막상 독일도 원전을 아예 없애자니 전기 수급이 힘들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 과감하게 원전을 폐기하지 못했습니다. 신규로 늘리지 않고 수명이 다하면 폐쇄하는 정도였죠.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보고 나서 독일은 모든 원전의 완전한 폐기를 결정했고, 현재 가동중인 몇 개의 원전은 수명이 끝나는 2022년에 완전히 가동을 멈추게 됩니다. 그러면 독일에 단 1기의 원전도 남지 않습니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측에서는 말합니다. 독일이 원전을 중단하는 대신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하고 화력발전을 늘려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고요. 프랑스는 원전의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국가인데요. 프랑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독일이 수입한다면 독일의 탈원전은 말뿐인 쇼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전을 줄이고 화력발전을 늘리면 환경이 더 파괴되는데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전기를 독일이 수입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에 전기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국경이 다 연결되어 있는 유럽의 특성상 주변국의 전기를 서로 수출하고 수입하는 게 당연한 시스템입니다. 독일은 프랑스의 이웃 국가인데다가 국경 가까이에 프랑스 원전이 있어 여기서 생산한 잉여 전기가 자동으로 독일에 수출됩니다. 독일이 프랑스 전기를 수입한다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겁니다.


대신 독일도 전기를 수출합니다. 체코나 벨기에 등 국경을 맞댄 국가에 전기를 수출합니다. 현재 독일의 전기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많습니다. 친환경 에너지의 비중을 높여 전기 생산량이 줄었다면 어떻게 전기를 수출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전기 수입량이 훨씬 많아야 되잖아요. 원전에 찬성하는 자들은 독일이 전기를 수입한다는 말만 하면서 이런 사실을 고의로 감춥니다.


독일에서 화력 발전이 줄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독일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독일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석탄 생산국입니다. 광산이 많고, 광산 노동자의 노조가 매우 강성이면서 영향력이 크죠. 화력발전을 줄이면 석탄 생산이 줄고, 그러면 광산 노동자가 직장에서 잘리는 등 피해를 입겠죠. 그래서 정부가 함부로 화력발전을 줄이지 못합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이 또한 원전에 찬성하는 자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숨겨진 사실입니다.


1990년대 후반 독일의 전기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현재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입니다. 비슷하죠? 현재 독일에서 대체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대까지 올라왔습니다. 즉, 독일은 원자력을 줄인만큼 대체에너지로 완벽하게 "대체"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대체에너지가 원자력을 능가하는 일만 남았고, 화력발전을 줄여도 될 여지까지 만들게 됩니다. 한국이라고 이걸 못할 이유 있습니까?


혹자는 전기료를 이야기할지 모르겠네요. 독일의 전기료가 비싼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전기료가 비싸진 것에 큰 역할을 한 건 에너지 업체의 민영화였습니다. 마침 탈원전이 가속화되는 시점과 에너지 민영화 시점이 같아요. 과연 전기료를 올린 건 탈원전 때문일까요, 아니면 민영화 때문일까요? 탈원전이 원인이라면 탈원전이 진행될수록 전기료는 계속 올라야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데, 막상 그렇지는 않아요. 독일은 에너지 민영화가 잘못된 선택인 걸 깨닫고 다시 재공영화를 추진 중입니다. 그렇다면 전기료 인상의 주범은 탈원전이었을까요, 에너지 민영화였을까요?


저렴한 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탈원전보다 더 기피해야 할 것은 에너지 민영화입니다. 그런데 정작 원전을 더 늘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일부 세력은 에너지 민영화까지 원하고 있죠. 제가 그들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프라이부르크가 했으면 독일도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이 탈원전을 과감하게 밀어붙인 것에는 보방 지구의 성공사례가 큰 공을 세웠을 것입니다. 독일이 했으면 한국도 못할 것 없습니다.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으니까 안 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고 들어주기 힘듭니다. 실체 없는 불안감으로 사람을 협박하는 "가짜뉴스"의 거짓 잔치에서 독일은 빼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