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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정보/기차

6. 탑승과 환승 : (7)연착 및 취소 대처법

흔히 독일 열차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다는 말을 한다. 필자가 다른 나라의 기차를 거의 이용해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일 열차만 놓고 봤을 때 "정확하다"는 것에 흔쾌히 동의할 수는 없다. 독일 열차도 5~10분 정도의 연착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수십분 이상, 나아가 몇 시간 이상의 연착도 발생하는 데다가, 아예 열차편이 갑자기 취소되어 버리는 일도 생기곤 한다.

열차 네트워크가 방대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한 쪽에서 기상 악화나 선로 이상 등으로 열차가 꼬이기 시작하면 다른 곳까지 줄줄이 꼬이게 됨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제대로" 걸린 날은 기차역 전광판의 거의 모든 열차에 연착 알림이 붙기도 한다.

달리던 열차가 수십분 이상 연착될 경우 차장이 이와 관련된 안내방송을 해주는데, 이 때는 독일어로만 이야기하여 여행자들의 속을 태운다. 달리던 열차가 연착되어 환승역에 늦게 도착하게 되었을 때 다음 열차가 떠났는지, 아니면 그 열차도 연착되어 아직 출발하지 못했는지 등은 차장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하차 전 차장에게 미리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환승역에 내렸을 때 다음 열차가 이미 떠난 뒤라면, 여행자는 일단 자신의 티켓부터 체크할 것. 철도패스나 랜더티켓 등 아무 열차나 탈 수 있는 티켓이라면 그 티켓의 범위에 어긋나지 않는 다음 열차를 타면 된다. 하지만 특정 열차편을 지정하여 개별 발권을 한 경우는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임의대로 다른 열차를 타게 되면, 그 열차에 해당되는 표를 구매한 것이 아니므로 무임승차가 되는 것이다. 연착 때문에 원하지 않는 열차를 탔다고 해서 면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열차를 타고 가다가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검표 중 차장과 싸우는 사람을 여러 번 보았는데, 한 번도 차장이 융통성을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한 러시아인 부부는 이 문제 때문에 도에 넘치게 언성을 높였더니 차장이 경찰을 불러 다음 역에서 인계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열차를 놓쳤다면 바로 기차역 내에 있는 안내 센터(Information)를 찾아가자. 기차가 연착된 사정을 설명한 뒤 티켓을 보여주면, 안내 센터의 독일 철도청 직원이 확인 도장을 찍어준 뒤 다른 열차 스케쥴을 알려줄 것이다. 그러면 그 열차 스케쥴에 따라 탑승한 뒤 검표 시 확인 도장과 함께 티켓을 보여주어야 무임승차에 해당되지 않는다. 


열차편이 아예 취소된 경우에도 마찬가지. 패스가 있다면 다른 열차를 타고, 해당 열차의 티켓을 개별발권했다면 안내 센터에 가서 확인 도장을 받고 다른 열차 스케쥴을 안내받아야 한다.

위 사진은 필자의 경험. 트리어(Trier)에서 하노버(Hannover)까지 장거리 여행을 해야 했는데, 원래 타려고 했던 열차가 갑자기 취소되었다. 독일 철도패스를 가지고 기차를 타는 날이었는데, 열차 취소로 인해 다음 열차를 타면 목적지에 0시가 넘어 도착하게 되어버렸다. 19시 룰에 걸리는 상황. 그러면 철도패스에 날짜를 하루 더 기입하는 불이익이 생긴다. 그래서 필자는 트리어 중앙역의 안내 센터에서 철도패스에 미리 확인 도장을 받은 뒤 기차를 탔다. 만약 이런 확인을 받지 않고 19시 룰을 어기게 되면 억울하게 무임승차로 걸리게 될 상황이었다.

 

그러면 또 한 가지 질문. 만약 연착된 열차가 막차라면 어떻게 될까? 환승할 열차도 십중팔구 막차일 터. 그러면 다음 열차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또는 취소된 열차가 막차라면 어떻게 될까? 


독일철도청은 연착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하는 시스템이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티켓을 구입한 승객이 연착으로 인해 부당하게 추가 발생한 숙식비에 대하여 배상을 해준다. 하지만 그 절차가 독일어를 모르는 여행자가 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것도 사실이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러니 가급적 막차는 타지 않도록 스케쥴을 정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배상을 받으려면 무조건 연착된 기차 내에서 차장에게 연착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한다. 몇 분 이상 연착되었다는 확인을 티켓에 받아두어야 나중에 배상 신청을 할 수 있다. 아무리 연착이 되었다 해도 차장에게 미리 확인을 받아두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배상 기준은, 60분 이상 연착 시 티켓 구입금액의 25%, 120분 이상 연착 시 티켓 구입금액의 50%를 돌려준다. 구입금액이 기준이므로 슈파르프라이스(Sparpreis) 등 할인금액으로 구매한 경우 할인 금액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결정한다. 만약 철도패스나 랜더티켓 등 개별권이 아닌 경우에는 배상을 받을 수 없다. 이런 패스 상품은 열차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티켓이지 특정 열차를 탑승하기 위한 티켓이 아니므로, 해당 열차의 연착에 대하여 보상받을 수 없음이 당연하다. 연착이나 취소로 인해 다른 교통편(기차,버스,택시 등)을 이용한 경우 또는 호텔 숙박이 발생한 경우에도 해당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영수증 원본은 필수.


연착된 열차에서 차장에게 도장을 받을 때 요청하면 배상 신청 서류양식을 줄 것이다. 만약 받지 못하면 기차역에서 내린 뒤 안내 센터에 가서 양식을 받아도 된다. 이렇게 받은 서류양식을 빠짐없이 기재한 뒤 확인 도장을 받은 티켓, 추가 배상이 필요한 영수증 등을 동봉하여 우편으로 발송해야 한다. 그런데 서류는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는데다가 꽤 까다로운 내용을 담고 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배상을 받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여행자의 신분으로는 배상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