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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주한 독일대사, 원전에 대해 입을 열다.

정권교체 이후 한국에서는 원전 정책과 관련해 많은 "상반된" 주장이 오간다. 그 중 원전을 유지하고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 독일의 사례를 언급하곤 한다. 탈원전으로 인해 전기료가 폭등하고, 전기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프랑스(원전이 있는 나라)에서 전기를 수입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 나라에 원전을 없애는 대신 다른 나라의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수입해 국민에게 비싸게 파는 황당한 결과가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슈테판 아우어(Stephan Auer) 주한 독일대사가 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보통 주재국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 외교관이 함부로 입장을 나타내지 않기 마련이지만, 독일의 사례를 정치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한 전기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공개적으로 한국의 "가짜뉴스"에 반박했다.

(슈테판 아우어 대사 프로필 / 출처 : 주한독일대사관)


그가 반박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절대 경제적인(저렴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독일은 전기 수입량보다 전기 수출량이 더 많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갈수록 핵폐기물 처리비용 등 발전단가가 증가하는 반면 신재생 에너지는 발전단가가 줄어든다는 말은 한국에서도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 하는 말이니 넘어가고, 가장 중요한 팩트는 독일이 원전 폐쇄로 인해 전기가 부족해 전기를 사들이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잘 알려졌듯 독일은 체르노빌 사태를 겪으면서 탈원전을 시작했다. 체르노빌 사고는 독일(특히 바이에른 등 남부지역)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독일인은 원전이 절대 싸고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원전 폐기 로드맵을 이행하던 중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 아예 원전을 올스톱시켜버렸다.


탈원전 이후 독일의 전기료가 비싸진 것은 사실이다. 대신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에 퍼준다든지, 가게에서 에어콘을 빵빵 틀고도 문을 열어놓는다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전기 낭비가 없으니 독일인도 기꺼이 전기료를 부담한다. 밤에 촛불을 켜고 사는 사람도 많고, 한밤중에 요란한 네온사인이 온 길거리를 환하게 밝히지도 않는다.


독일의 탈원전에서 배워야 할 점이 이것이다. 단지 전기 생산 방식이 바뀌고 생산단가가 오르고 내리고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개인과 상점과 기업이 "전기를 대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독일도 체르노빌 이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는 긴 기간 동안 조금씩 완성되었기에 탈원전 이후에도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 한국도 긴 호흡으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개인과 상점과 기업 모두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물론 독일이 전기를 수입한다는 식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기득권의 장난은 몹시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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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 이 글을 퍼날라 핵심을 왜곡하는 "모 정당 지지자"들의 게시물을 몇 개 발견했다. 그들이 꼬투리를 잡는 한 문장을 좀 더 사실에 맞게 수정하였다. 그리고 부연한다.


독일이 프랑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입하는 것은 맞다. 그것은 서로 한 나라처럼 연결된 유럽의 상황에 기인한다. 유럽 내륙국가는 대부분 서로 전기선이 연결되어있다. 생산하고 남은 전기를 저장하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전기선을 타고 이웃나라로 수출하고, 반대로 수입하기도 한다.


전력 수요 성수기와 비수기는 국가마다 사정이 다르기 마련.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것이 많으면 수요가 필요한 이웃나라에 보내는 간단한 방식이다. 독일은 프랑스와 국경이 닿아있으니 프랑스의 전기를 이렇게 수입한다. 물론 프랑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인 것은 맞지만, 프랑스가 원전을 가동하든 석탄을 떼든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든 구분없이 독일이 수입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일도 전력이 남으면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등 국경이 닿은 이웃국가로 수출한다. 그런데 만약 독일이 원전폐쇄로 인해 전력 생산이 부족하다면, 프랑스로부터 수입하는 것은 있어도 다른 나라로 수출할 여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입량보다 수출량이 2배 가까이 많다(2014년 기준). 물론 현재 독일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모두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전 폐쇄 이후 화력발전이 늘어나지도 않았는데 전기가 남아 전기를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더 발전하고 저장 기술도 늘어나면 화력발전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폐쇄 후 프랑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입한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팩트를 왜곡한 명백한 가짜뉴스다. 참고로, 그런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이들은, 독일이 원전 대신 화력발전을 늘려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식의 또 다른 가짜뉴스도 유포한다. 몹시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