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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독일 "자메이카 연정" 끝내 결렬

메르켈 총리 4선(정확히 이야기하면 4연임)에 빨간불이 켜졌다. 메르켈의 기민당(기사당 연합 포함)이 다시 과반 의석을 확보하려면 자민당-녹색당과 3당 연정을 성사시켜야 했다. 사민당이 진작부터 연정에 빠진다고 선언했기에 기민당-자민당-녹색당의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긴 협상 끝에 자민당이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서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하더라도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없게 되어 메르켈의 4선은 불투명해졌다. 기민당이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과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정에 참여하는 정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정부가 정책에 반영하는 대가로 힘을 모아준다. 그렇다면 기민당이 많이 양보하면 연정이 가능한 것 아닐까? 문제는 자민당과 녹색당이 정반대의 이념과 정강을 가진 정당이라는 데에 있다. 자민당은 친재벌 보수정당, 녹색당은 친노동 좌파정당이다. 만약 자민당의 요구를 수용하면 녹색당이 반발한다. 그래서 기민당이 아무리 양보를 해도 답이 없는 것이다.


당초 자메이카 연정의 성사를 기대했던 것은, 그래도 극우의 득세는 막아야 한다는 정치권의 공통적 이해관계가 있으니 자민당-녹색당도 서로 양보를 해주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가령, 난민 수용에 있어 자민당은 몹시 부정적이고 녹색당은 더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이 난민을 잔뜩 받아들인 이유가 인건비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해두려는 자본세력의 꼼수였다는 지적이 쭉 있어왔다. 기민당도 보수적인 정당이니까. 그런데 오히려 보수적인 자민당은 난민을 반대하고, 진보적인 녹색당은 난민에 우호적인 것을 보면 그간의 분석이 틀렸다. 독일의 난민 수용은 기독교 색채가 강한 부자국가의 인도적 차원의 희생이었던 셈이다.)


이제 메르켈이 택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다. 사민당에 다시 러브콜을 보내 연정을 구성하거나, 과반 의석을 포기하고 소수정부 출범을 밀어붙이거나, 또는 재선거를 실시해야 된다.


사민당은 연정에 참여할 확률이 낮다. 그들은 2000년대 들어 기민당과 연정을 할 때마다 그 다음 선거에서 기록적으로 참패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절대 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공언한 상태. 만약 연정에 참여하면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다음 총선에서 큰 위기를 맞을 게 뻔하다.


소수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단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기민당 정권에 매우 큰 위험부담이 된다. 독일 총리 선출은, 기본적으로 국회 과반을 달성한 정당(또는 연립정당)의 당수를 총리로 지명하는 방식이지만 과반을 달성한 정당이 없다면 다수당의 당수를 총리로 지명한다. 따라서 메르켈이 밀어붙이면 어쨌든 소수정부는 출범할 수 있고 4선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소수정부라는 것은, 결국 국회에서 번번히 발목을 잡혀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선거는, 그 방식 자체는 부담이 아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있던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재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기민당의 참패를 인정하는 셈이므로 메르켈이 총리 후보(당수)로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뿐 아니라, 자칫 극우정당인 AfD의 의석이 더 늘어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정부가 출범하지 못하면 사실상 무정부상태가 된다. 벨기에가 이런 식으로 연정 구성에 실패해 지지부진하게 협상하는 사이 1년 넘게 무정부상태가 지속된 사례가 있다. 어떻게든 빨리 답을 내야 하는 상황, 메르켈은 과연 4선에 성공해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