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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62. 뮌헨의 나치 기록관

독일의 다크투어 여행지를 보여준 <난생처음 다크투어> 프로그램의 뮌헨여행 리뷰를 하다보니 여기는 먼저 소개해야겠다 싶어 포스팅을 정리합니다.


뮌헨에 있는 나치 기록관(NS-Dokumentationszentrum)입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죠.

"어, 나 뮌헨 갔다왔는데 저런 게 있었어?"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2015년에 개관했거든요. 이미 뮌헨에 현대사 관련 장소가 많고 박물관도 많고 나치의 강제수용소도 지척에 있습니다만 또 하나의 박물관을 만들어 하나라도 더 역사를 증언하고 후손에게 경고하는 게 뮌헨의 지성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나치 당사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나치의 폭력과 범죄를 고발하는 기록관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욱 의미 있습니다.

일단 입구로 들어가 입장권을 구매한 뒤 가장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관람을 시작합니다. 한층 한층 내려올 때마다 다른 시대의 전시물이 펼쳐집니다. 즉, 어느 한 순간 사람들이 미쳐서 일회성으로 범죄가 발생한 게 아니라 수십년의 시간 동안 야만이 누적되고 누적되다 점차 큰 범죄로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이름이 나치 "기록관"이라고 했죠. 기록물을 모아두고 전시하는 목적의 박물관입니다. 즉, 전시물은 대부분 사진, 신문, 수기 등에 바탕하여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설명으로 곁들이는 형식으로 전시되며, 동영상 등 일부 시청각 자료도 더해집니다. 설명에 영어가 병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좀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요? 물론 쉬운 박물관은 아닙니다. 전시된 내용 자체가 유쾌하게 볼 수 없는 것들이고, 영어가 병기되어 있다지만 어려운 단어가 많기 때문에 술술 읽히지는 않습니다.제가 영어를 못해서 그런 거지만


하지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당시의 광기는 충분히 전달되거든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뮌헨의 랜드마크이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사진 찍고 전망대에도 올라가보는 뮌헨의 신 시청사입니다. 흉측한 나치 깃발(하켄크로이츠)이 펄럭이네요. 지금의 멀쩡한 신 시청사와 비교하면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시절에 얼마나 흉폭한 세상이었을지 그 공기가 짐작이 가죠.

용장기념관이라고도 부르는 펠트헤른할레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면서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 "하일, 히틀러" 하면서 손을 앞으로 쭉 뻗는 인사법을 보셨을 겁니다. 그걸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네요.


당시 펠트헤른할레를 지나갈 때 모든 사람은 경례를 해야 했습니다. 안 하면 잡혀갔어요. 잡혀가면 어떻게 돼요? 수용소로 보내겠죠.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자유와 생명을 박탈당한 겁니다.


펠트헤른할레는 오데온 광장에 있습니다. 역시 뮌헨의 유명 관광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심지어 펠트헤른할레에 올라가볼 수도 있습니다. 한때 군인들이 지키고 서서 의무적으로 경례를 시켰던 "신성한" 장소에서 내가 드러눕고 뛰어다니고 별 짓 다 해도 됩니다. 의미 없이 관광지라고 하니까 사진 몇 장 찍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역사를 알게 되면 여행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됩니다. 나치 기록관이 어렵고 지루해보여도 이런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전시실이었습니다. 컬러사진이 있다는 건 나치 집권기 이후의 사건이라는 뜻이겠죠. 바로 네오나치를 주제로 한 기록들입니다. 독일에서 네오나치가 어떻게 부활해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까지도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낱낱이 공개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다 공개한다칩시다. 그냥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건가요? 또는 일본이 이렇게 나쁜 놈들이었으니 분노하자고 선동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을 지식으로 알기 위함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건을 배우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미래에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설령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라고 해도 감추거나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더 솔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끄러운 짓을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치 기록관의 방대한 전시물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공부하는 뮌헨의 학생들은 네오나치에 대한 경고로 관람을 마치게 되겠지요. 현실 속에서 네오나치가 선동할 때 저게 왜 나쁜 짓인지 알기 때문에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겠지요. 그게 독일의 힘입니다.

내가 사는 곳이 과거에 잿더미가 되었던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보통은 "저 원수한테 복수해야 되는데"라며 적의를 불태우기 마련인데요. 이렇게 역사의 기록을 가감없이 다 공개하고 입체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면 이런 사진을 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맥주 마시고 축구 응원하며 신나게 놀고 즐기는 관광지인 줄 알았던 뮌헨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 이런 장소들까지 취재하고 경험하며 쓴 책이 <뮌헨 홀리데이>입니다. 당신이 들어보지 못했을 뮌헨의 속살까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자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