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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 Hostel. 유스호스텔 아우크스부르크의 공식 유스호스텔(Jugendherberge)은 대성당(Augsburger Dom)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도 크고 시설도 현대식이라 도미토리에서 지내는 것도 전혀 불편이 없다. 방마다 세면 시설은 따로 있고, 층마다 있는 공동 욕실과 샤워실도 청결하게 관리되며,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1층 레스토랑에서 조식 뷔페도 제공해준다. 원래 유스호스텔은 회원증이 있어야 투숙이 가능하지만, 이 곳의 경우 체크인할 때 약간의 비용을 추가 지불하면 회원증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 덕분에 추가 비용을 받지 않아 회원증 없이 정상 가격에 투숙하는 행운도 뒤따랐다. * 찾아가는 법 중앙역(Haptbahnhof)에서 .. 2013. 1. 10. 23:20 | 더보기
Augsburg | etc. 모차르트 하우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모차르트 하우스(Mozarthaus)가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이 도시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까지 몇 대가 아우크스부르크에 거주했으며, 증조부는 푸거라이(Fuggerei)에서 살기도 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모차르트는 평소 아우크스부르크를 "아버지의 도시"라고 부르며 자주 찾았다고 한다. 모자르트 하우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Leopold Mozart)의 생가. 1937년부터 모차르트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모차르트 일가의 인연을 소개하며,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도구와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 : [확인]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 2013. 1. 10. 23:07 | 더보기
Augsburg | #13. 성 안나 교회 성 안나 교회(St.Annakirche)는 1321년 지어져 15~16세기경 확장되었다. 이 교회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인연이 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은 다음해인 1518년, 루터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제국의회에 소환되었다. 그 때 그는 성 안나 교회에 머물렀는데,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한 뒤 자신을 체포하려는 세력을 피해 성 안나 교회에 피해 있다가 밤에 탈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루터가 자신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면서 엎드려 "성 안나여, 나를 구하소서"라고 했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던 성 안나의 이름이 붙은 교회에 은신하여 목숨을 구했던 것이 마치 그의 기도가 통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때의 인.. 2013. 1. 10. 22:55 | 더보기
Augsburg | #12. 막시밀리안 박물관 귀족이 살던 저택을 활용하여 1855년 개관한 막시밀리안 박물관(Maximilianmuseum)은 바이에른(Bayern)의 왕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랜 시대에 걸쳐 수집한 조각, 자기, 악기, 가구, 보석 등 각종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 : [확인]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푸거라이(Fuggerei) 입구를 등진 방향으로 왼편으로 야콥 거리(Jakobstraße)를 따라 거리가 끝날 때까지 직진하면 페를라하 탑(Perlachturm)이 나온다. 시청 광장(Rathausplatz)의 맞은편 끝에서 필리피네 벨저 거리(Philippine-Welser-Straße)로 좌회전하여 조금 더 가면 삼각형 모.. 2013. 1. 10. 21:51 | 더보기
Augsburg | #11. 푸거라이 - 벙커 푸거라이(Fuggerei)에는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벙커가 남아있다. 좁은 벙커로 들어가면 당시 사용했던 구호물품과 생활물품, 사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이 특별히 대단하지는 않지만 전쟁 중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될 것이다. 2013. 1. 10. 21:27 | 더보기
Augsburg | #11. 푸거라이 - 쇼룸 푸거라이 내부의 건물 중 샤우엔보눙(Schauenwohnung)이 있다. "보여주기 위한 방"이라는 뜻이니 모델하우스 내지는 쇼룸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실제 푸거라이 입주민들이 거주하는 것과 똑같은 집에서 독일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재현해놓고 외부에 공개하는 방이다. 중세의 모습은 아니다. TV도 있고 오븐도 있는 현대식 가정의 모습이다. 사실 이게 특별히 대단한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디서든 박물관에 들어가면 권력자와 귀족이 사는 모습만 볼 수 있는데, 권력자가 아닌 일반인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로는 아마 이 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집은 2개의 침실과 거실, 부엌, 화장실 등 딱 기본적으로 꾸며져 있다. 깔끔하게 꾸며진 내부를 가볍게 둘러볼만하다. 2013. 1. 10. 21:20 | 더보기
Augsburg | #11. 푸거라이 푸거(Fugger) 집안의 전성기를 이끈 야콥 푸거(Jakob Fugger)는 당대 유럽 최고의 부자였다. 황제와 대주교까지도 그에게 돈을 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가 활동했던 1500년대 봉건주의 시대에 복지의 개념이 있을리 없다. 그런데 푸거의 머리 속에는 복지의 개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빈민을 위한 구제시설을 만들었다. 단지 기부금을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집 몇 채 지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67채의 주거용 건물을 지었다. 그 단지 내에 교회도 짓고, 공동 우물도 만들었다.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시 속 도시"를 만들었다. 이 공간은 온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이 곳의 이름은 푸거라이(Fuggerei; "푸게라이"라고 적는 자료도 있다".. 2013. 1. 10. 20:32 | 더보기
Augsburg | #10. 레흐 지구 레흐 강(Lech River)은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작은 개천이다. 그 위로 길을 덮어 지하로 흐르는 구간이 많지만 일부는 지상으로 흐르고 있다. 레흐 강이 지상으로 나와있는 주변 지역을 레흐 지구(Lechviertel)라고 부르는데, 이 주변은 아우크스부르크 구 시가지의 주거 지역이면서도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전통이 남아 오늘날에도 주택 사이로 간간히 수공예품을 파는 공방이 눈에 띈다. 아기자기한 주택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운하, 그리고 드문드문 쇼윈도우 너머로 보이는 정교한 수공예품 등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특정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을 지칭하기 때문에 골목마다 다 둘러보기는 사실상 무리가 있지만, 곳곳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레흐 지구의 가장 주요 지역을 관통.. 2013. 1. 10. 19:10 | 더보기
Augsburg | #09. 포겔 문 아우크스부르크의 중세 성벽의 출입문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또 한 곳이 포겔 문(Vogeltor)이다. 1445년 당시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장 콘라트 푀겔린(Konrad Vögelin)의 지시로 만들어졌으며, 성벽 밖의 습지에 광장을 조성하면서 성문을 만드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고 한다. 포겔 문을 직역하면 "새[鳥]의 문"이라는 뜻인데,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시장의 이름인 푀겔린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다. 오늘날 자동차가 다니는 큰 길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며, 그 주변으로 옛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St.Ulrich und St.Afra)에서 왔던 방향으로 되.. 2013. 1. 10. 18:52 | 더보기
Augsburg | #08. 붉은 문 아우크스부르크 구 시가지의 성벽 출입문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곳이 몇 곳 있는데, 붉은 문(Rotestor)도 그 중 하나이다. 19세기경 성벽이 철거될 때 붉은 문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탑의 붉은 장식 때문에 붉은 탑이라 불린다. 12세기부터 세워졌는데, 오늘날 탑의 모습은 시청사(Rathaus)를 건축한 엘리아스 홀(Elias Holl)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원래 성문 밖으로 원형극장(Freilichtbühne)이 있는데, 방문 당시 폐쇄된 상태였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St.Ulrich und St.Afra)에서 밀히베르크 거리(Milchberg)로 언덕을 내려가 오른편에 슈피탈 골목(Spitalgasse)이 나오면 우회전, 이후.. 2013. 1. 10. 18:04 | 더보기
Augsburg | #07.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St.Ulrich und St.Afra)는,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성 울리히 교회와 성 아프라 교회 두 곳이 합쳐진 교회이다. 그런데 성 울리히 교회는 개신교 교회, 성 아프라 교회는 카톨릭 교회이다. 서로 다른 종교의 교회가 하나로 합쳐진 것은 종교 화합을 상징한다. 개신교를 최초로 공인하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1555년의 아우쿠스부르크 화의의 정신을 살려 지은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에는 입구도 두 곳이다. 두 교회가 분리된 별개의 예배당을 가지고 있기 때문. 색깔로도 구분된다. 회색 외벽의 작은 건물이 성 울리히 교회, 흰색 외벽의 큰 건물이 성 아프라 교회이다. 그러니 두 예배당을 모두 둘러보자. 내부는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2013. 1. 10. 17:43 | 더보기
Augsburg | #06. (2)섀츨러 궁전 막시밀리안 거리(Maximilianstraße)의 여러 역사적인 건축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섀츨러 궁전(Schaezlerpalais)이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귀족의 저택으로, 어지간한 황제의 궁전이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렸던 현장이기도 하다. 막시밀리안 거리에 면한 궁전의 정면만 보면 그리 크지 않아보이지만, 그 뒤편으로 100 미터가 넘는 긴 궁전이 지어져 있다. 1346년 지어진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는데, 지금 모습을 만든 이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막대한 부를 모은 은행가 베네딕트 리버트(Benedict Adam Liebert)였다. 그는 원래의 건물을 사들인 뒤 1765년 지금의 로코코 궁전으로 개조하였다. 이후 그의 딸이 은행가 요한 섀츨러(Johann Schaezler)와 결혼을 했고, 그 후.. 2013. 1. 10. 17:19 | 더보기
Augsburg | #06. (1)막시밀리안 거리 시청사(Rathaus)부터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St.Ulrich und St.Afra) 사이의 길이 막시밀리안 거리(Maximilianstraße). 역사적으로 아우크스부르크가 번영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구 시가지의 중심 거리로, 앞서 소개한 모리츠 광장(Moritzplatz)도 막시밀리안 거리에 포함된다. 넓은 막시밀리안 거리의 양편으로 옛 건물이 보존되어 오늘날까지 상업 건물로서 사용 중이다. 대표적인 건물은 푸거(Fugger) 가문이 대대로 거주하던 푸거의 집(Fuggerhäuser; 집이 한 채가 아니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적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규모는 어지간한 궁전보다 크다. 거리에 면한 부분뿐 아니라 그 뒤편으로 여러 채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는 고급 레스토랑 및 상.. 2013. 1. 10. 17:03 | 더보기
Augsburg | #05. (2)모리츠 광장 성 모리츠 교회(St.Moritzkirche)가 있는 삼거리는 모리츠 광장(Moritzplatz)으로 불린다. 하지만 실제 광장이라기보다는 번화한 교차로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이 곳은 트램과 버스 노선이 수시로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광장의 대부분은 트램과 버스가 다니므로 보행자가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화가라고 해도 이 부근의 건물들은 독일의 구 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중세의 모습이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광장에서 보행자 구역의 거리 중간에 있는 분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 신이 조각된 헤르메스 분수(Merkurbrunnen)이다. 2013. 1. 10. 16:42 | 더보기
Augsburg | #05. (1)성 모리츠 교회 1019년 대주교 브루노(Bruno)에 의해 지어졌다. 성자로 추앙받은 기사 성 모리츠(St.Moritz)의 무덤을 위해 만든 교회로, 외벽에 그려진 벽화의 주인공도 성 모리츠이다. 이후 계속 재건축을 반복하며 오늘날의 고딕 양식을 갖게 되었다. 1510년에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살던 당대 유럽 최고의 부자 야콥 푸거(Jakob Fugger)가 교회를 사들였다고 한다. 내부도 고딕 양식,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크게 파괴된 뒤 내부의 화려함은 되찾지 못한채 1949년 복구되었다. 오늘날 구 시가지 초입에 해당되는 번화가 모리츠 광장(Moritzplatz)에 위치하다보니 교회의 1층은 상업시설이 이미 점령한 상태이다.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정보없음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 2013. 1. 10. 16:39 | 더보기
Augsburg | #04. (2)페를라하 탑 시청사(Rathaus)의 바로 옆에 솟은 페를라하 탑(Perlachturm)은 시청사와 함께 아우크스부르크를 대표하는 그림을 만드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1182년부터 만들어졌으니 시청사보다 먼저 이 자리에 있었던 셈이다. 높이는 70 미터. 말하자면 도시의 시계탑과 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전히 시계탑에서는 매시 정각에 특수장치 인형이 움직인다. 성 금요일(부활절 3일 전)부터 11월 초까지는 내부가 개방되어 261개의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다. 매년마다 누가 탑을 가장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입장료 : 성인 1.5 유로, 학생 1 유로 개장시간 : (성금요일~11월초) 매일 10:00~18:00 2013. 1. 10. 16:02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