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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트리어

Trier | etc. 성 마티아스 교회 트리어에는 대성당(Trierer Dom)을 비롯하여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들이 많지만, 구 시가지와 멀리 떨어진 성 마티아스 수도원(Benediktinerabtei St.Matthias)도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교회로 꼽을 수 있다. 성 마티아스 수도원은 베네디크 수도회 소속. 이 곳이 유명해진 것은 특이하게 생긴 외관 때문은 아니다. 트리어의 첫 대주교가 예배를 드린 장소이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 명인 사도 마태(Matthias)의 무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 마티아스 수도원은 오늘날까지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교회 내부에 보관된 사도 마태의 석관에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교회인만큼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입장료 .. 2013. 5. 2. 21:00 | 더보기
Trier | #23. 트리어 대성당 - 주교의 박물관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은 오랜 역사에 걸쳐 수집하거나 생산한 보물들을 따로 전시하는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주교가 사용하던 제구(祭具), 조각과 회화, 장식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의 이름은 주교의 박물관(Bischöfliches Dom- und Diözesanmuseum) 또는 줄여서 대성당 박물관(Museum am Dom)이라 부른다. 대성당 바로 옆 건물이다. 입장료 : [확인] 개장시간 : [확인] 2013. 5. 2. 20:48 | 더보기
Trier | #23. 트리어 대성당 "독일 3대 교회" 중 하나인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 트리어의 대주교가 관할하던 교회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원래는 로마 제국의 성이 있던 자리인데, 성이 파괴된 뒤 그 잔해를 이용하여 대성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4세기경에 처음 만들었으며, 다시 파괴된 뒤 8세기경에 또 한 번 복구되었다. 지금도 대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입구 주변에 돌의 재질이나 색상, 문양이 좀 다른 부분이 눈에 띌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원래 로마의 성의 흔적이고, 이것을 기초하여 대성당을 그 위에 지은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에서도 기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트리어이기에 이후에도 트리어 대성당의 위용은 상당하였다. 지금 보아도 꽤 큰 교회지만, 원래는 지금보다도 4~5배가 더 컸다고 한다. 2차 세계.. 2013. 5. 2. 20:41 | 더보기
Trier | #22. 성모 교회 대성당(Trierer Dom)과 나란히 있는 성모 교회(Liebfrauenkirche).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트리어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고딕 양식의 교회로 1260년에 완공되었다. 대성당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왜소해보이지만, 여러 부분이 중첩된 외관이 상당히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마치 돔처럼 중앙이 높게 솟아 천장이 매우 높고, 비대칭의 내부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 제단 등이 사방을 충실히 메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붉은 탑(Roter Turm)에서 콘스탄틴 바실리카(Konstantinbasilika)를 바라본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건물들 사이로 골목이 있다. 이 길을 따.. 2013. 5. 2. 19:50 | 더보기
Trier | #21. 붉은 탑 붉은 탑(Roter Turm)은 원래 선제후 궁전(Kurfürstliches Palais)의 일부였다. 선제후 궁전이 완성되었을 때 성벽처럼 긴 건물이 연결되고, 그 끝에 붉은 탑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궁전에서 연결된 부분이 해체되면서 탑만 독립되어 서 있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콘스탄틴 바실리카(Konstantin Basilika) 뒤편 빌리 브란트 광장(Willy-Brandt-Platz)에 위치하고 있다. 크게 보기 2013. 5. 2. 19:39 | 더보기
Trier | #20. 콘스탄틴 바실리카 바실리카(Basilika)는 엄밀히 말하면 종교 목적의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교회는 아니지만 사실상 교회 건축의 근간이 된 로마 시대의 건축을 말한다. 콘스탄틴 바실리카(Konstantinbasilika)는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만든 바실리카로 4세기경에 만들어졌다. 황제를 알현하기 위한 용도였으며, 팔라틴 홀(Aula Palatina)이라고도 부른다. 방이 나뉘지 않은 단일 건물로 따지면 로마 시대의 건축 중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것으로 꼽힌다. 중세에는 트리어 대주교가 머무는 관저였으며, 1600년대에 선제후 궁전(Kurfürstliches Palais)이 바로 이웃하여 건축되면서 콘스탄틴 바실리카는 선제후의 회관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건물이 많이 변.. 2013. 5. 2. 19:14 | 더보기
Trier | #19. 선제후 궁전 - 궁정 정원 선제후 궁전(Kurfürstliches Palais)의 앞에는 작은 정원도 가꾸어져 있다. 이름은 궁정 정원(Palastgarten). 하얀 조각들이 줄지어 서 있고 잔디밭이 깨끗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작은 연못도 있어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이다. 정원 옆에는 옛 성벽의 흔적도 남아있다. 성벽의 끝에 카이저 테르멘(Kaiserthermen)이 있어 산책만 해도 그 느낌이 고풍스럽다. 2013. 5. 2. 18:52 | 더보기
Trier | #19. 선제후 궁전 선제후 궁전(Kurfürstliches Palais)는 트리어의 대주교가 머물던 궁전이다. 궁전과 바로 붙어있는 콘스탄틴 비실리카(Konstantinbasilika)가 먼저 존재했었고, 여기에 1615년부터 순차적으로 건물을 붙여 3채의 궁전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었다. 궁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핑크색의 로코코 양식이 화사하다. 오늘날에는 행정관저로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인의 입장은 제한된다. 그런데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궁전 내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어떤 예술가가 주얼리를 만들어 전시회를 열면서 선제후 궁전의 홀을 대관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일반에 공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 내부에 입장해보았다. 전시회장에서는 손님들에게 와인을 대접하며 격식을 차리고 있었고, 내부 .. 2013. 5. 2. 18:44 | 더보기
Trier | #18. 라인 주립박물관 라인 주립박물관(Rheinisches Landesmuseum)은 로마 제국 시대의 고고학적인 유물을 다수 소장한 대표적인 박물관. 트리어 및 모젤 강(Mosel River) 유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소장품이 있다. 또한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수집된 방대한 동전 콜렉션도 유명하다. 입장료 및 개장시간 : [확인] / 안티켄카드 사용 가능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원형극장(Amphitheater)에서 다시 카이저 테르멘(Kaiserthermen)까지 돌아온 뒤 카이제 테르멘 뒤편 사거리에서 바이마르 대로(Weimarer Allee) 또는 오스트 대로(Ostallee)로 우회전(두 거리는 같은 길의 양쪽 방면의 이름만 다른 것이다)하여 조금 더 가면 왼편에 박물관이 있다. 크.. 2013. 5. 1. 21:06 | 더보기
Trier | #17. 원형극장 고대 로마제국의 원형극장(Amphitheater)이 트리어에도 있다. AD 100년경에 만들어졌으며 당시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대형 극장이었다. 로마의 극장이 그러하듯, 검투사들이 동물과 사투를 벌이는 것을 구경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오늘날에도 원형극장의 골격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특이하게 지하로 내려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두었는데, 지하에는 건축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조명이 거의 없어 사실 거의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 원형극장은 객석이었던 높은 곳에도 올라가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잔디밭만 남아있는데, 이 곳에서 극장을 내려다보면 그 규모가 더욱 실감이 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트리어의 로마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입장료 및 개장시간 : [.. 2013. 5. 1. 20:31 | 더보기
Trier | #16. 카이저 테르멘 트리어에는 세 곳의 로마 목욕탕이 있다. 앞서 소개한 바르바라 테르멘(Barbarathermen), 피마르크트 광장 테르멘(Thermen am Viehmarkt), 그리고 카이저 테르멘(Kaiserthermen)이다. 이 중 4세기에 만들어진 카이저 테르멘이 가장 늦게 건설된 것이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고 가장 유명하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치형 건물의 벽면, 그리고 지하 통로와 목욕탕의 폐허들이다. 아치형 건물은 길거리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굳이 유료 입장을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울타리 너머로도 폐허의 일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하 통로와 건물 내부의 골격은 유료 입장을 해야 볼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물을 끌어와서 뜨겁게 가열하.. 2013. 5. 1. 19:34 | 더보기
Trier | #15. 피마르크트 광장 독일어로 피(Vieh)는 가축을 뜻한다. 즉, 피마르크트 광장(Viehmarkt)은 과거 가축 시장이 있었던 곳. 구 시가지 내에서는 가장 넓은 광장이기 때문에 지역 행사가 열리면 놀이시설이 들어서는 곳이다. 방문 당시에도 작은 축제가 열려 광장 전체에 놀이시설과 매점이 들어차고 시민들이 유쾌한 한때를 보내는 중이었다.피마르크트 광장이 유명한 것은 여기 있는 로마의 목욕탕 때문이다. 피마르크트 광장의 테르멘(Thermen am Viehmarkt)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AD 80년 경에 지은 것이다. 이후 폐허가 되어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1987년 지하 주차장을 만들기 위한 공사를 하다가 발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유리 건물을 지어 위를 덮고, 방문자는 건물 내부에서 지하.. 2013. 5. 1. 18:39 | 더보기
Trier | #14. 성 안토니우스 교회 후기 고딕 양식의 성 안토니우스 교회(Kirche St.Antonius)는 1514년에 지어졌다. 아담한 교회이지만 내부의 로코코 양식의 설교단이 유명하다.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정보없음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Karl-Marx-Haus)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크게 보기 2013. 5. 1. 18:11 | 더보기
Trier | #13.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 독일인으로 전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누구일까? 아돌프 히틀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르틴 루터?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카를 마르크스가 아닌가 싶다. 그의 사상은 아예 전세계를 절반으로 갈라 수십년 동안 지독한 전쟁을 촉발하는 촉매가 되었으니 말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바로 트리어 태생이다. 그의 생가는 오늘날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Karl-Marx-Haus)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일찌기 카를 마르크스를 "칼 막스"라고 표기했었기 때문에 칼 막스 하우스라고 적는 자료도 적지 않다. 박물관은 마르크스의 삶, 연구, 그리고 후대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자료를 방대하게 전시하고 있다. 건물은 1727년에 지어졌다. 입장료 및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 2013. 5. 1. 18:02 | 더보기
Trier | #12. 시청사 옛 시청사를 슈타이페(Steipe)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니 새 시청사는 그냥 시청사(Rathaus)라고만 부르면 된다. 트리어 시청사는 상대적으로 구 시가지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3~4채의 건물이 복잡하게 연결된 구조이지만 큰 특색은 없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쥐트 대로(Südallee)에서 시나고그(Synagogue)가 나오면 힌덴부르크 거리(Hindenburgstraße)로 좌회전, 그리고 왼편으로 아우구스티너 거리(Augustinerstraße)가 나오면 다시 좌회전, 그러면 시청사 주차장으로 연결된다. 주차장 너머가 시청사 정면이다. 크게 보기 2013. 5. 1. 17:50 | 더보기
Trier | #11. (2)바르바라 테르멘 쥐트 대로(Südallee)에는 또 하나의 로마 유적이 있다. 바르바라 테르멘(Barbarathermen). 고대 로마제국의 목욕탕 터가 남아있는 곳이다. 2세기 중반에 지어졌으며, 당시 시내 중심에 있던 테르멘(목욕탕)이 도시의 성장에 따라 너무 협소해지자 시가지 외곽에 크게 테르멘을 새로 만든 것이다. 건설 당시 로마 제국의 수많은 목욕탕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것이었고(가장 큰 것은 수도 로마에 있었다), 로마 제국 이후의 시대에도 어느정도 그 현상은 유지되었으나 결국 시대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테르멘의 이름은 이 주변에 있던 교회 이름이 성 바르바라 교회(Pfarrkirche St.Barbara)였기 때문이었다고. 목욕탕 터는 한동안 일반에 공개되었으나 2000년부터 폐장.. 2013. 5. 1. 17:34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