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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55. 라이프치히의 특별한 쇼핑몰

여기 한 쇼핑몰이 있습니다. 큰 도시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형 쇼핑몰이며, 유명 브랜드가 대거 입점해 한 자리에서 쇼핑할 수 있어 편리하죠. 하지만 그런 쇼핑몰이라면 굳이 "특별하다"고 이야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라이프치히의 회페 암 브륄(Höfe am Brühl) 쇼핑몰입니다. 둥글둥글 현대적인 외관이 눈에 띄지만 대단히 혁신적이라 할 것은 없죠. 언뜻 보면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는, 주말에 가족끼지 나들이하는, 그런 평범한 쇼핑몰처럼 보입니다.


회페 암 브륄은 그 이름을 직역하면 "브륄가의 건물들" 정도가 되겠네요. 여기서 이 쇼핑몰의 "특별함"이 발견됩니다.

라이프치히의 브륄 거리는 중앙역에서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부분이 널찍한 번화가입니다. 바로크나 아르누보 등 세련되고 화려한 중세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죠.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 건설될 정도로 번영했던 라이프치히의 영광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그러나 브륄 거리는 온전치 않습니다. 19세기경 이 부근에 유대인이 모여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치면서, 다들 아시겠지만 유대인은 가혹한 박해를 받았으니 유대인 거주지역인 브륄 거리 역시 큰 피해를 입었겠죠. 건물을 강제로 빼앗기기도 하고, 공격받아 무너지기도 하고, 화려한 번화가의 영광이 끊어졌습니다.


라이프치히는 구동독에 속했습니다. 동독 정권은 상대적으로 전쟁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죠. 브륄 거리는 훼손된 채 방치됩니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에 걸맞게 다시금 단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이후입니다. 아주 최근 일이죠.


이미 너무 훼손되어 다시 복원하기 어려운 건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건물들이 있는 자리에 큰 쇼핑몰을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회페 암 브륄입니다.

회페 암 브륄은 하나의 큰 쇼핑몰입니다만 마치 여러 건물이 붙어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건물처럼 보이는 이 각각의 구역이 한때 독립된 건물들이 자리했음을 나타내줍니다.


무엇보다, 단순히 구역만 표시해주는 게 아니라 중요한 의의를 가진 건물은 쇼핑몰 외벽에 프린트하여 그 형상을 보여줍니다.

위 사진 속에서 검은 외벽에 건물의 형상이 보이시나요? 마치 맞은편 건물이 유리창에 반사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 유리 외벽에 이런 건물 모양을 프린트한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이 모습대로 존재했던 옛 건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죠.


참고로 이 건물은 독일의 유명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생가입니다. 거장의 생가는 제2차 세계대전과 공산정권을 거치며 완전히 사라져버렸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거장의 생가를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료사진으로 이 자리에 이런 건물들이 있었다고 표지판 몇 개 세워두고 설명을 해도 될 텐데, 굳이 쇼핑몰을 여러 건물의 집합처럼 설계하고 그 중 일부를 외벽에 표시하는 독특한 개념의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회페 암 브륄은 의류, 잡화, 스포츠, 뷰티 등 독일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유명 브랜드 매장이 다 모여 있으니 라이프치히 여행 중 쇼핑을 위해서라도 들를 이유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