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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64. 미치광이의 신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베를린이 박물관 섬에 다섯 개의 대형 박물관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페르가몬 박물관입니다. 지금은 보수공사로 잠시 관람이 제한되어 있지만, 여기에 전시된 페르가몬 신전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볼 수 있는 곳이죠.

지금 보면 빈 공간이 많이 보이는 좀 엉성한 모양새이기는 합니다만 약 100년 전 터키에서 발굴되어 독일로 가져왔을 때만 하더라도 훨씬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 쏟아진 무수한 폭탄에 박물관도 박살나고 신전도 파괴되었고, 잔해를 수습해 지금의 모습으로 공개하는 중입니다.

폭격으로 파괴되기 전 페르가몬 신전의 모습입니다. 훨씬 상태가 양호하죠.


자, 그런데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페르가몬 신전이 아닙니다. 페르가몬 신전을 본 따 만든 어느 미치광이의 신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미치광이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 그의 총애를 받은 나치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는 뉘른베르크에 이런 거대한 연단을 만들었습니다. 자료사진 중 위쪽 사진이 당시 실제 연단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래가 지금 베를린 페르가몬 신전입니다. 페르가몬 신전을 참조하여 히틀러를 위한 거대한 연단을 세운 겁니다.


알베르트 슈페어에 대한 글에서 이야기했듯, 슈페어는 이 거대한 연단에 조명을 설치해 하늘로 130개의 불빛을 쏘아 올리고는 그 이름을 리히트돔(Lichtdom), 즉 "빛의 대성당"이라 붙였습니다. 고대 신전과 같은 연단 중앙에 히틀러가 있습니다. 그러면 히틀러가 신이죠. 게다가 신전은 "빛의 대성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히틀러가 하나님이죠. 우상화의 스케일이 이 정도였습니다.

연단의 이름은 체펠린 연단이라고 합니다. 체펠린은 "비행선의 아버지"라 불리죠. 그가 바로 이 자리에서 비행선 착륙에 성공한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뜻깊은 장소에서 나치는 이런 광기를 불태웠습니다. 이 또한 군중을 선동하기 위해서였죠. 우리 게르만족이 이렇게 위대하다는 걸 설파하려면 체펠린 같은 위인을 끌어들이면 효과적일 테니까요.

신전과 같은 위용을 뽐낸 체펠린 연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폭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런 폐허로 남아있으며, 뉘른베르크에서는 이 장소를 유지보수하지 않으니 안전은 방문자가 스스로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도 붙어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롤모델이 되었던 페르가몬 신전도 전쟁으로 인해 크게 훼손된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문화유산인 "진짜 신전"은 비록 훼손되었어도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광기만 남은 "가짜 신전"은 훼손된 이후 이렇게 방치된 신세입니다.


나치가 얼마나 "악한지" 보여주는 장소는 독일에 많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미쳤는지" 보여주는 장소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요. 저는 그 방면에서는 뉘른베르크를 첫손에 꼽습니다. 이런 스케일로 미칠 수 있구나, 그리고 이런 스케일로 미친 군주를 열광적으로 지지할만큼 다같이 미쳐있었구나, 그런 생각에 기분이 착잡해지는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