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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 #11. 푸거라이

푸거(Fugger) 집안의 전성기를 이끈 야콥 푸거(Jakob Fugger)는 당대 유럽 최고의 부자였다. 황제와 대주교까지도 그에게 돈을 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가 활동했던 1500년대 봉건주의 시대에 복지의 개념이 있을리 없다. 그런데 푸거의 머리 속에는 복지의 개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빈민을 위한 구제시설을 만들었다. 단지 기부금을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집 몇 채 지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67채의 주거용 건물을 지었다. 그 단지 내에 교회도 짓고, 공동 우물도 만들었다.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시 속 도시"를 만들었다. 이 공간은 온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이 곳의 이름은 푸거라이(Fuggerei; "푸게라이"라고 적는 자료도 있다"). 1516년 만들었으니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빈민 구호 시설인 셈이다. 이 곳이 입주하는 사람들은 1년에 당시 화폐단위로 1 라인굴덴(당시 상인이 1주일에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만 내면 되었다. 이후 단 한 번도 임대료는 인상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임차인들은 화폐가치를 계산하여 1년에 단 0.88 유로만 내면 된다. 우리 돈으로 1,200원 정도, 그냥 공짜나 마찬가지이다. (단, 오늘날에는 수도와 전기비는 사용자가 부담한다.) 임차인들에게는 딱 한 가지만 요구한다. 푸거 재단을 위하여 기도하고 매일 주기도문을 외울 것. 


그렇게 무상 임대나 마찬가지라면 코딱지만한 단칸방 정도 아닐까? 그것도 천만의 말씀. 모든 집은 마당이 딸린 주택으로 지어졌다. 거실과 부엌과 방이 분리된, 어엿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푸거라이의 운영은 오늘날에도 푸거 가문의 재단에서 맡고 있다. 설립자의 철학을 거스르지 않고, 원래의 전통 그대로, 원래의 철학 그대로, 빈민을 위한 시설로서 본래의 목적에 소홀하지 않는다.


외부 관광객은 입장권을 구입해서 단지 내에 입장할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하여 한 채의 주택은 박물관으로 만들어 독일의 평범한 서민들이 살아가는 집의 내부를 재현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아우크스부르크가 폭격을 당할 때 푸거라이 지하에 만들었던 벙커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입장료 및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레흐 지구(Lechviertel)에서 이정표대로 이동하면 모리츠 광장(Moritzplatz)으로 나온다. 여기서 13번 트램을 타고 푸거라이 역에서 하차(4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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