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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30. 성 해자에 곰이 산다.

최근 방송중인 인기 여행예능 프로그램에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성이 나왔습니다. 성 해자(침입을 막으려고 성벽 바깥을 둘러 만든 못)에 곰이 살고 있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침입을 막으려고 도랑을 파고 물을 채워 접근을 차단하는 게 해자의 역할인데, 그 공간에 물 대신 곰을 풀어서 좀도둑의 침입을 막았다는 귀여운 발상입니다.


그런데 체스키크룸로프 성의 이런 귀여운 발상을 가진 성이 독일에도 있습니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많은 분들이 다녀와봤고 들어봤을 테지만, 이 성을 다녀와보거나 들어본 분은 거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토르가우(Torgau)에 있는 하르텐펠스 성(Schloss Hartenfels)입니다.

이래 뵈어도 약 500년 전에는 한 왕국(정확히는 선제후국)의 중심이었던 곳입니다. 작센 선제후국의 "현명왕"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der Weise)가 만들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에 앞장선 군주 중 한 명이었죠.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선제후 중 한 명이었으니 사실상 최고 권력자나 다름없는 그가 군사적 목적으로 견고한 성을 지었습니다.

크고 웅장한 성은, 엄청나게 화려하거나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양식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토르가우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성지 중 하나인지라 많은 순례객이나 역사를 견학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는데, 하르텐펠스 성은 그 중 단연 첫 손에 꼽히는 관광지입니다.

바로 이 하르텐펠스 성의 해자에 곰이 살고 있습니다. 원래 토르가우는 중세의 곰 사육지였다고 합니다. 그 전통을 계승해 성의 해자에서 여전히 곰을 키우고 있습니다. 곰이 뛰어놀 수 있게 지형물을 이리저리 흐트러놓고 넓은 공간에 풀어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공간인만큼 답답할 것 같기는 하더군요. 저는 솔직히 귀엽다기보다는 좀 안쓰럽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성의 입구에 이런 입간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 그냥 들어갔는데, 성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해자에서 곰을 발견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이걸 다시 보니까 기부함인 걸 알겠더군요. 곰을 구경하는 건 무료지만 곰 사육에 필요한 자금을 조금이라도 기부해달라고 세워둔 것이었습니다. 곰이 들고 있는 판자에 적힌 말은 "Wir sagen Danke!". 직역하면 "우리는 고맙다고 말해요"인데, 감사인사의 정중한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어쩌다가 토르가우라는 도시까지 흘러갔을까요? 여기가 종교개혁의 중요한 장소라서 종교개혁 성지순례 가이드북을 만들려고 찾아갔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에 맞춰 만든 책이지만, 500주년이 지났다고 해서 순례지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여전히 이 책의 가이드는 유효합니다. 하르텐펠스 성 해자에 살고 있는 곰 이야기도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