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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40. 궁전인 듯, 궁전 아닌, 궁전 같은 츠빙어

엘베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 "독일의 피렌체"라 불리는 드레스덴(Dresden)에는 정말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이번 글은 그 중 츠빙어 궁전(Zwing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드레스덴이 워낙 유명하고 츠빙어 궁전을 소개하는 여행정보도 많으니 틀에 박힌 이야기 말고 소소한 상식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츠빙어를 소개할 때 독일어판과 영어판에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독] Der Zwinger ist ein Gebäudekomplex mit Gartenanlagen in Dresden. (츠빙어는 드레스덴에 있는 정원이 딸린 건물군이다.)

[영] The Zwinger is a palace in the German city of Dresden. (츠빙어는 드레스덴에 있는 궁전이다.)


건물군(群)과 궁전은 엄연히 다르죠. 건물군은 문자 그대로 여러 채의 건물이 모여있다는 의미일뿐 궁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츠빙어를 궁전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 거죠.


왜일까요? 실제로는 궁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영어 자료에는 궁전이라고 표현하고, 왜 저도 블로그나 책에 츠빙어 궁전이라고 적었을까요?

그 답을 위해 "츠빙어"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츠빙어(Zwinger)는 궁전의 이름이 아닙니다. 독일어로 츠빙어는 "성곽의 내외벽 사이의 공터"를 뜻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세에는 성벽을 쌓고 도시를 보호했잖아요. 그러면 성벽은 내벽과 외벽으로 나눠서 이중으로 도시를 보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벽과 외벽 사이에 해자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도 하고,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또는 맹수를 풀어두기도 합니다. 그 땅을 츠빙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드레스덴에서는 이 츠빙어의 활용방법으로 왕의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이제 더 이상 외세의 군사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18세기였습니다. 도시가 확장되며 성벽도 허물어졌습니다. 공터 츠빙어에 축제나 행사를 가질 터를 닦고, 왕이 노는 곳이니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허허벌판에서 놀 수는 없잖아요. 공터를 둘러싼 건물을 지어 공터를 보호하고, 날씨가 나쁠 때 왕이 건물에 피신하는 용도로도 사용했습니다. 공터에서 공연을 열고 왕이 높은 곳에서 구경하라고 건물의 옥상도 예쁘게 꾸몄습니다.


자연스럽게 궁전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 생겼습니다. 공터를 둘러싸야 되니 건물이 사방에 하나씩 생겼습니다. 왕이 사용하려고 만들었으니 편의상 궁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왕이 놀다가 가는 곳이라 궁전은 아닙니다. 그래서 독일어로는 궁전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츠빙어를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궁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 역시 책이나 블로그에 츠빙어 궁전이라고 적고 있는데요. 사실 아직도 고민이 많습니다. 어쩌면 개정판에서는 궁전을 떼고 소개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츠빙어는 어떻게 즐겨야 할까요? 위에 설명했듯, 정원을 만들고, 정원을 둘러싼 건물을 만들고, 건물의 옥상까지 꾸몄다고 했습니다. 즉, 정원, 건물, 옥상. 이 세 가지가 츠빙어를 즐길 키워드입니다.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쏘아올리는 정원입니다. 분수에 걸터앉아 멍때려도 좋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세련된 건물의 외관을 꼼꼼히 구경하셔도 좋습니다.

"궁전"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겨보세요.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는데, 수준 높은 미술관도 있어서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습니다.

건물 옥상도 꼭 올라가보세요. 옥상 위에 또 다른 정원이 숨겨져 있습니다. 귀여운 조각과 분수로 아주 센스 있게 꾸며져 있는데, 이게 300년 전의 센스입니다. 물론 옥상에서 츠빙어를 내려다보는 것도 전망이 시원합니다.


특히 옥상에서 츠빙어를 내려다보면서 상상력을 자극해보세요. 지금 정원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고요. 그러면 내가 서 있는 옥상은 마치 축구장이나 야구장처럼 "관람"을 위한 관중석이 되는 겁니다. 이런 관중석이 사방을 빙 두르고 있으니 츠빙어는 궁전이라기보다는 아레나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마치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바로크 시대에 재해석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왕의 놀이터입니다. 궁전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아름답고 품격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펼쳐질 테니 구석구석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가 왕의 놀이터임을 나타내는 아이콘. 츠빙어의 출입문인 크로넨 문(Kronentor; 왕관의 문)입니다. 왕관을 예쁘게 쓴 웅장한 문을 지나 들어가게 됩니다. 정원과 옥상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니, 내부 관람은 하지 않더라도 츠빙어에서 충분히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상, 궁전이라 불리지만, 궁전은 아닌, 하지만 궁전 같은 드레스덴 츠빙어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