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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73. 미치광이 왕, 4개의 궁전과 2개의 호수

유럽에 궁전은 참 많습니다. 그 궁전을 만든 권력자도 많구요. 전세계를 호령한 강한 군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궁전과 관련된 권력자 중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Ludwig II)만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왕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 이야기입니다. 4개의 궁전과 2개의 호수를 통해 한 비극적인 왕의 스토리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인만큼 내용이 조금 깁니다.)


선왕의 죽음으로 1864년 국왕이 된 루트비히 2세는 당시 19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내내 궁전에서 지내며 친구가 없었기에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루트비히 2세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바이에른 왕실의 별장인 호엔슈반가우성(Schloss Hohenschwangau)이었는데요. 수도 뮌헨에서 멀찍이 떨어진 알프스 산자락의 마을에서 루트비히 2세는 홀로 호수의 백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상대할 외부인은 선친의 친구인 작곡가 바그너 정도가 유일했습니다.


루트비히 2세가 불과 19세의 나이로 국왕이 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뮌헨에서 국정에 참여하며 "노회한 정치인"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이들의 시선에서 새파랗게 어린 루트비히 2세는 "꼬맹이"였겠죠. 노골적으로 무시당하고 따돌림당하는 와중에 그가 기댈 구석은 바그너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국왕 취임 후 첫 명령이 "바그너를 데려오라"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아버지 또래의 바그너와 깊이 어울리는 그의 모습은, 바깥에서 보기엔 이상했겠죠.


당시 바이에른은 의회에서 주요 현안을 처리하고 국왕이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영국 왕실처럼 일종의 "얼굴마담"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루트비히 2세가 키도 훤칠하고 외모도 출중해 백성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고 해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더 의회의 견제에 시달렸고, 점점 더 사람을 만나기 꺼려하는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루트비히 2세는 뮌헨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고개만 돌리면 자기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곳에 더 머물기 싫었겠죠. 어린 시절 아무 걱정 없이 뛰놀았던 호엔슈반가우성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슈반가우에 자신만의 성을 짓고 은둔하려고 했습니다.

슈반가우라는 이름은 "백조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백조가 많이 살았나봐요. 실제로 슈반가우의 알프 호수(Alpsee)에서 백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무척 좋아했는데, 이 작품에도 백조의 기사가 나옵니다. 이에, 백조의 땅에 백조의 성을 만들고 은둔하겠다 결심하고는 높은 절벽 위에 아름다운 성을 만듭니다.


이것이 "새로(Neu)" "백조(Schwan)"를 본따 "돌(Stein)"로 만든 성, 즉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입니다. 루트비히 2세는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성을 상상하여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설계에 아이디어를 냅니다. 성은 날개를 웅크린 한 마리 백조와 같은 모습으로, 그 어디에서 유사한 사례가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공사 기간 동안 루트비히 2세는 호엔슈반가우성에 머물며 테라스에서 망원경으로 공사현장을 감시할 정도로 큰 애착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자신의 상상 속 유토피아나 마찬가지였기에 자신이 죽으면 성을 파괴하라는 명을 남겼지만, 다행히도(?) 성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만들며 루트비히 2세는 매우 행복했던 모양입니다. 궁전 건축은 그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취미활동이 되었습니다. 아직 노이슈반슈타인성의 공사도 끝나지 않았지만, 선친의 사냥 별장이 있던 에탈(Ettal)이라는 알프스 마을에도 또 하나의 성을 짓도록 명령합니다. 이것이 린더호프성(Schloss Linderhof)입니다.

이미 루트비히 2세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곁을 유일하게 지켜준 바그너도 여론에 떠밀려 그의 곁을 떠났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주변에는 가족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또 하나의 성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유럽의 궁전 건축에 있어 가장 정점에 있는 곳이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이죠. 이곳은 모든 권력자가 "나도 저런 궁전을 갖고 싶다"는 "뽐뿌질"에 시달리게 하는 곳이었는데요. 루트비히 2세 역시 베르사유 궁전 같은 화려한 궁전도 만들어보고 싶다며 세 번째 작품인 헤렌킴제성(Schloss Herrenchiemsee)을 만듭니다. 규모는 베르사유 궁전보다 작습니다만 내부의 화려함은 베르사유 못지않고, 베르사유의 아이콘인 "거울의 방"은 오히려 더 화려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성은 킴 호수(킴제; Chiemsee) 위 섬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즉,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곳입니다. 루트비히 2세는 화려한 도시 뮌헨에서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으로 도망쳤고, 여기서도 불안했는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곳으로 도망친 셈입니다.


노이슈반슈타인성과 린더호프성은 바이에른 왕실 영지에 지은 것이지만 헤렌킴제성은 섬을 통채로 사서 성을 지었습니다. 훨씬 많은 돈이 들었죠. 이미 막대한 돈을 써서 성을 만든 것으로 모자라 또 막대한 돈을 쓰니 결국 왕실 재산이 바닥나고 빚까지 지게 됩니다.


바이에른 의회에서는 이걸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정신병자로 진단 받았고 강제로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 만들었던 세 개의 성은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쫓겨났습니다. (린더호프성이 유일하게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만 원래 루트비히 2세의 구상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의 관점에서는 미완성이 맞습니다.)

그가 왕위에서 쫓겨난 뒤에도 노이슈반슈타인성은 공사를 계속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린더호프성과 헤렌킴제성은 더 이상 공사를 하지 않았지만, 린더호프성은 궁전 건물은 완공된 상태였고, 헤렌킴제성 역시 건물 자체는 다 짓고 내부 인테리어를 절반만 끝낸 상태였기에 온전한 건물로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루트비히 2세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뮌헨 근교 슈타른베르크 호수(Starnberser See)로 유배 당합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만에 호숫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의회에서는 그가 왕위를 잃은 상실감에 자살한 것이라 발표했지만, 키가 크고 수영에 능했던 그가 무릎 높이의 호숫가에서 자살했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정신병자라고 진단했던 의사도 부근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슈타른베르크 호수는 매우 넓은 호수입니다. 호수 연안 마을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베르크(Berg)라고 하는 곳에 루트비히 2세가 사망한 장소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 자리에 십자가를 세워 기념하고 있습니다. 정말 물 속으로 몇 걸음 들어간 장소에요. 장신의 성인 남성이 자살할 곳은 아니죠.


물론 루트비히 2세를 단순히 정치싸움의 희생양이며 비극의 주인공이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알려진바에 따르면, 그는 네 번째 성의 상상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개의 성이 다 지어지지도 않았고 왕실의 재산은 이미 바닥났는데 또 네 번째 성을 상상했다는 겁니다. 이쯤되면 "건축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데요. 그를 내버려뒀으면 몇 개의 성을 더 만들었을지 모를 일이고, 바이에른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고로 루트비히 2세의 재임 기간 중 독일이 통일되고 독일제국이 출범합니다. 아무리 정치인들에게 무시당하며 희생양이 되었다 한들 이런 격동의 시기에 국정을 내팽개치고 은둔하여 건축에만 빠져든 왕을 합리화할 수는 없겠지요.


홀로 백조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어린 시절의 순수, 왕이 되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독, 건축에 중독되어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쏟아부은 광기, 의문 투성이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그의 길지 않은 생은 그야말로 드라마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아름다운 궁전과 예쁜 호수가 아니라,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중요한 장면이 담긴 무대라고 생각하며 4개의 궁전과 2개의 호수를 바라보세요. 미치광이 왕이지만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감정과 함께 뜻깊은 여행의 여운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바이에른은 루트비히 2세의 성뿐 아니라 도처에 수많은 성과 궁전이 가득합니다. 바이에른의 매력적인 궁전과 성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바이에른 관광청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