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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74. 루트비히 2세의 비너스 동굴

앞서 루트비히 2세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달해드렸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양반은 "미치광이 왕"이라고 폄하하듯 부르기에는 석연치 않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국정을 내팽개치고 궁전 건축에만 몰두한 게 정상은 아니지만, 누구나 뭐에 하나 꽂히면 앞뒤 안 가리고 올인하기도 하잖아요. 그게 스케일이 커서 그렇지 이걸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루트비히 2세의 성을 노이슈반슈타인성, 헤렌킴제성, 린더호프성 순으로 구경했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면서 지독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쳤다는 생각은 솔직히 하지 않았어요. 헤렌킴제성을 보면서도 과한 "덕후"인 건 알겠는데 미쳤다고 할 정도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린더호프성에서,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성 주변에 왕이 만든 정원의 한 동굴에서, 저도 "이 양반이 미친 거 맞구나"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는 비너스 동굴(Venus Grotto)입니다. 자연 동굴이 아닙니다. 루트비히 2세가 정원을 만들며 산 속에 굴을 파고 만든 인공 동굴입니다. 그러면 동굴을 왜 만들었을까요?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려고 만들었습니다.


동굴의 인테리어는 바그너의 <탄호이저>에 등장하는 장소를 상상하며 그대로 만들었고요. 인공 연못에 배를 띄워 객석을 만들었습니다. 소리가 울리는 동굴은 최적의 음향을 제공합니다. 게다가 대인기피 증세가 있던 그가 홀로 공연을 보기에도 더 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배에 앉아 술 마시며 공연을 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겠죠.

포토샵으로 장난친 게 아닙니다. 실제 동굴에 설치된 조명입니다. 루트비히 2세는 이처럼 조명까지 완비된 전용 공연장을 만들려고, 일부러 동굴을 파서 오페라의 무대를 상상해 꾸미기까지 했습니다. 이 조명 시설은 100m 정도 떨어진 발전실에서 전기를 끌어와 가동됩니다. 바이에른 최초의 전기 공사 중 하나라고 하네요.


물론 여기서 실제로 공연이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루트비히 2세도 진짜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바그너 덕질"의 일환으로 진짜 공연장 같은 무대를 재현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와~ 동굴 예쁘다, 그런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다가 조명까지 바뀌는 걸 보면서, 그걸 그 시절에 전기 공사까지 해서 만들었다는 걸 들으면서, 아 이 양반 진짜 미쳐도 제대로 미친 게 맞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루트비히 2세와 관련된 장소 중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비너스 동굴을 꼽습니다. 이 정도 스케일로 미쳤구나, 이 정도 스케일로 머리 속에 바그너뿐이었구나, 일상 생활이 불가능했겠구나,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소입니다.


안타깝게도 비너스 동굴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 공사 중입니다. 2022년까지 공사가 계속될 예정이며, 2021년까지는 동굴이 폐쇄됩니다. 가장 결정적인 장소를 앞으로 3~4년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