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단과 통일

Berlin | #1-09.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어 있던 시절, 서베를린은 영국, 프랑스, 미국 3개국이 분할 통치하였다. 지금의 중앙역(Hauptbahnhof)과 연방의회 의사당(Bundestag) 등이 있는 중심부는 영국의 통치 지역이었고, 프랑스는 서북쪽, 그리고 미국은 서남쪽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영국-프랑스-미국은 각각의 통치 지역에서 동베를린과 통할 수 있는 통로를 한 곳씩 마련해두고 검문소를 설치했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미국이 통치하던 지역의 검문소. 이 곳에는 동서독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한 쪽에는 동독의 검문소가, 다른 한 쪽에는 미군의 검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에서 남한군과 북한군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경계를 서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 2013. 7. 10. 17:04 | 더보기
Berlin | #1-08.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베를린에 가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한다. 베를린 장벽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물론 있다. 그 중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이스트 사이트 갤러리(East Side Gallery)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보다도 이 곳을 추천한다. 이름도 어려운,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s des Terrors)이다.이 곳에는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낙서도 되어 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어떤 부분은 허물어져서 철근이 튀어나오기도 한, 가공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 베를린 장벽을 보고 있자면, 생각보다 참 앙상하고 약해 보인다. 과연 이것이 냉전의 상징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엄연히 이것이 베를린 장벽이고, 이런 앙.. 2013. 7. 10. 17:04 | 더보기
Berlin | #1-03. (1)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은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본따 만든 개선문. 1791년에 완공되었다. 완공 이후 독일-프로이센 군대가 전쟁을 치를 때마다 이 문을 통해 개선했다고 한다. 베를린이 동서로 분단된 후에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관문의 역할을 담당했다. 장벽이 세워진 이후에 동서베를린 주민들의 왕래가 금지되면서부터, 허가받은 사람들만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 오갈 수 있었다. 앞뒤가 똑같이 생겼지만 문 위에 우뚝 선 콰드리가(여신이 네 마리의 말을 이끄는 동상)가 동쪽을 향해 있어서 앞뒤를 구분할 수 있다.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종일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연방의회 의사당(Bundestag)의 정문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10.. 2013. 7. 10. 17:03 | 더보기
Bonn | #15. 독일 역사 박물관 독일의 굴곡 진 현대사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찾아가야 할 코스가 본에 있다. 무제움마일레(Museumsmeile)에 자리잡은 독일 역사 박물관(Haus der Geschichte; 직역하면 "역사의 집"이라는 뜻)이 그 곳이다. 베를린(Berlin)의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 라이프치히(Leipzig)의 독일 역사 박물관(Zeitgeschichtlisches Forum)과 같은 재단에서 운영한다. 이 곳은 독일의 현대사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시작으로, 나치가 집권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 패배한 뒤 동서로 분단되고, 동독과 서독의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각자 독자생존의 길을 찾고 산업 발전에 노력하다가, 결국 통일에 이르게 되고, 통일 후 사회 부작용을 극복하고 발전하면.. 2012. 12. 16. 22:55 | 더보기
Weimar | #02. 바이마르 아트리움 바이마르 아트리움(Weimar Atrium)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쇼핑몰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일반 상점과 레스토랑, 영화관 등의 문화 시설이 복합적으로 자리잡은 현대식 건물이다. 사실 관광객이 굳이 들를 이유는 없지만, 관광 안내소(Tourist Information)가 입주해 있기 때문에 어차피 들르는 김에 한 바퀴 돌아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그리고 건물 밖 계단에는 뜻밖에도 베를린 장벽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곳에 전시된 장벽은 베를린에서 가져온 "진품"이 맞다. 만약 베를린에 들를 계획이 없다면 아쉬운대로 이 곳에서 베를린 장벽의 실물을 구경해볼 수 있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신 박물관(Neues Museum)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만약 신.. 2012. 12. 6. 21:02 | 더보기
Eisenach | #12. 바르트 성 (a.k.a. 바르트부르크 성) a.k.a. 바르트부르크 성 | Wartburg라는 이름이 바르트 성이라는 뜻인데, 국내에서는 바르트부르크 성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관용처럼 굳어졌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곧 "바르트 성 성"이 되므로 명백히 잘못된 표기이기는 하지만 워낙 널리 사용되기에 여기서 함께 소개한다. 아이제나하뿐 아니라 독일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역사적 가치가 높은 바르트 성(Wartburg). 그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기다림(Wart)의 성(Burg)이 된다. 튀링엔(Thüringen) 지방의 루트비히 백작의 지시로 1067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루트비히 백작은 이 지역을 지나가던 중 성을 짓기 적합한 높은 산을 발견하고는 "기다려라, 산이여! 그대는 나를 위한 성이 되어야 한다!(Warte, Berg, du so.. 2012. 11. 10. 16:55 | 더보기
Lübeck | #14. 빌리 브란트 하우스 뤼베크 태생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토마스 만(Thomas Mann) 외에 한 명 더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더 익숙한 이름일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이다. 빌리 브란트는 독일 통일 전 서독의 총리로 동서 화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자 폴란드에서 직접 무릎을 꿇고 전쟁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여 독일의 반성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만든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독일 여러 도시에는 빌리 브란트의 이름을 딴 거리나 광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정도로 독일 내에서도 존경받는 지도자로 손꼽힌다. 빌리 브란트 하우스(Willy-Brandt-Haus)는 바로 그 빌리 브란트의 일생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는 기.. 2012. 11. 5. 20:00 | 더보기
Potsdam | #12. 글리니케 다리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ücke)는 베를린(Berlin)과 포츠담의 경계선이다. 다리를 중심으로 한 쪽은 글리니케 호수(Glienicker See), 다른 한 쪽은 융페른 호수(Jungfernsee)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베를린의 영역이 시작된다. 다리 건너편 베를린은 분단 시절 서베를린에 속한 구역, 보다 자세히 말하면 미군이 관할하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동독 지역인 포츠담에는 소련군이 진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리니케 다리는 미국과 소련이 직접 대치하는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이 다리가 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군과 소련군은 이 다리에서 비밀접견을 하여 서로 포로를 교환했다고 한다. 다리의 양쪽 끝에 양측 군인이 .. 2012. 8. 14. 19:58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