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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Halle | #03. (3)마르크트 교회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탑처럼 우뚝 솟은 높은 첨탑의 교회는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 정식 명칭은 성모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 Unser Lieben Frauen) 또는 성모마리아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 St.Marien)라고 한다. 간혹 성모 교회(Frauenkirche)라고 부르기도 한다. 암염이 채취되는 할레에서 소금 상인들은 매우 부유한 귀족들이었다. 이들이 11세기 경에 교회를 지었는데, 이후 1554년에 기존 교회의 첨탑만 남기고 새로 교회를 지은 것이 지금의 마르크트 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기존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는데, 이것을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고딕 양식으로 바꾸면서 완전히 독특한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 앞뒤로 두 개씩의 높.. 2013. 9. 6. 11:22 | 더보기
Tübingen | #01. (2)슈티프트 교회 1493년 지어진 후기 고딕양식의 슈티프트 교회(Stiftskirche)는 언덕의 높은 곳과 낮은 곳에 걸쳐 지어져, 아래에서 보면 마치 성이라도 지어진 듯 육중하게 쌓아올린 돌벽처럼 보인다. 홀츠마르크트 광장(Holzmarkt)에 위치. 정식명칭은 성 게오르크 교회(Stiftskirche St.Georg). 국내에서는 튀빙엔 대성당으로 번역하는 자료도 간혹 있다. 교회 첨탑은 56 미터 높이, 그런데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낮게 공사가 완료되었다. 그 이유는 건설 자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언덕배기에 위치한 교회의 첨탑이기에 그것으로도 충분히 고도가 높아 중세 시대에는 군사용 망루로도 사용되었다. 이후에 튀빙엔 대학교(Universität Tübingen)에 소속되어 학생들을 강의하는 회관으로.. 2013. 8. 7. 15:05 | 더보기
Leipzig | #07. 신 시청사 라이프치히의 구 시가지 끄트머리에 만들어진 신 시청사(Neues Rathaus)는 그야말로 궁전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건물이다. 완공 년도는 1905년. 당시 유럽 최대의 기차역을 지을 정도로 강성하고 부유했던 라이프치히답게 새로운 시청사 건물도 아낌없이 화려하게 건축하였다. 당시 작센 공국은 라이프치히에 있던 플라이센 성(Pleißenburg)을 인수한 뒤 그것을 개조하여 신 시청사를 만들었다. 그러니 시청사가 궁전을 연상케 하는 것은 당연지사. 참고로, 플라이센 성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작센공의 후원으로 1519년 로마카톨릭의 대표자와 성서 교리에 대하여 갑론을박했던 소위 "라이프치히 논쟁"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루터는 로마카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어 파문당하게 된.. 2013. 7. 14. 11:12 | 더보기
Leipzig | #05. (1)성 토마스 교회 성 토마스 교회(St.Thomaskirche)는 교회보다 성가대가 더 유명한 곳이다. 토마너 성가대(Thomanerchor)라고도 불리는 토마스 교회 소년합창단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그 수준을 인정받은 최고의 합창단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Johann Sebastian Bach)가 이 교회의 지휘자로 25년 동안 활동하면서 합창단을 함께 지휘하였고, 합창단을 위한 곡도 많이 만들어 오늘날까지 불리는 명곡이 많다. 바하가 일생을 마치기까지 이 곳에 재직한 인연으로 교회 내에 바하의 무덤이 있고 교회 정문 앞에는 바하의 동상이 서 있다. 교회 중앙 제단 바로 앞에 바하의 추모석이 놓여있을 정도로 이 교회와 바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교회 내에는 작은 방에 바하와 관련된 박물관도 마련되어.. 2013. 7. 14. 10:58 | 더보기
Magdeburg | #09. (2)대성당 김나지움 주 청사(Staatskanzlei)와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오히려 주 청사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 무슨 건물인가 했더니 김나지움이란다. 김나지움은 독일의 인문계 중등학교. 일찌감치 인문계와 실업계를 나누어 각각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사회로 진출케 하는 독일의 실용적인 교육 제도를 대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김나지움이라는 이름은 친숙하다. 그런데 결국에는 중고등학교 정도에 해당되는 것인데 이렇게 큰 규모라는 것은 뭔가 특이사항이 있다는 뜻일 터. 아니나 다를까, 이름부터 대성당 김나지움(Domgymnasium)이다. 1675년에 설립되었으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 딸린 중등 교육기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도 마그데부르크에서 .. 2013. 6. 5. 23:21 | 더보기
Magdeburg | #02. 요한 교회 요한 교회(Johanniskirche)는 구 시청사(Altes Rathaus) 뒤편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정확한 건축년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015년에 문헌에 처음 언급되며, 1181년 화재로 크게 파손된 것을 1200년대에 다시 지은 것이 오늘날의 모습의 토대가 되었다. 이후에도 낙뢰로 인한 화재, 전쟁으로 인한 화재, 2차 세계대전 폭격 등 무수한 파괴의 역사가 반복되었으나 결국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1945년 재건되었다. 중세 시절 마그데부르크는 대표적인 개신교의 도시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24년 마그데부르크에 방문했을 때 요한 교회에서 설교를 했고, 그것을 기념하여 오늘날까지 교회 앞에 루터의 동상이 있다. 또한 교회 첨탑 아래의 청동문이 매우 특이하게 생겨.. 2013. 6. 5. 16:20 | 더보기
Worms | #02. 하일스호프 미술관 하일스 궁전(Heylshof)은 원래 보름스의 국회가 있던 자리였다. 1521년 이 곳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제국의회가 소집되었고, 이로부터 4년 전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소환하여 그의 주장을 철회하도록 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던 장소이다. 당시 루터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제국의회에서는 그를 법에서 추방하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법에서 추방했다는 것은, 만약 그를 다치게 하거나 심지어 죽이더라도 그 가해자가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 장소는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걸고 종교개혁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장소라고 해도 되는 것이다. 이후 하일스 궁전은 1689년 화재로 .. 2013. 1. 21. 11:42 | 더보기
Worms | #01. 루터 기념비 아마도 보름스의 루터 기념비(Luther Denkmal)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개혁 기념물일 것이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루터의 동상은 수많은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이렇게 루터뿐 아니라 종교개혁 운동가 전체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념물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루터 기념비는 중앙의 루터 동상을 중심으로 여러 유명 종교개혁 운동가들의 동상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의 구조물이다. 마르부르크(Marburg)의 영주로서 프로테스탄트를 지지했던 필리프 1세(Philipp I) 등 독일인은 물론이고, 체코의 얀 후스(Jan Hus) 등 외국인까지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가장 바깥에 둘러진 벽을 자세히 보면 독일 도시들의 이름과 문양이 새겨져 있는 .. 2013. 1. 21. 11:24 | 더보기
Marburg | #05. 란트그라프 성 란트그라프(Landgraf)는 우리 말로는 "방백"으로 번역되는데, 독일의 옛 영주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대공(Herzog)보다는 낮은 단계이지만 어쨌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이므로 막강한 힘을 가진 왕족 또는 귀족인 것은 변함없다. 마르부르크의 란트그라프 성(Landgrafenschloss)은 튀링엔(Thüringen) 공국의 방백이 거주하던 성으로, 편의상 마르부르크 성(Schloss Marburg)이라고도 부른다. 이후 마르부르크가 헤센(Hessen)의 영지가 된 후 헤센의 방백 필리프 1세(Philipp I) 시기에 크게 확장되었고, 30년 전쟁 당시에는 신교 도시였던 마르부르크에서 구교의 군사 공격을 막는 요새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헤센 공국의 중심이 다름슈타트(Darmstadt).. 2013. 1. 17. 13:28 | 더보기
Augsburg | #13. 성 안나 교회 성 안나 교회(St.Annakirche)는 1321년 지어져 15~16세기경 확장되었다. 이 교회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인연이 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은 다음해인 1518년, 루터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제국의회에 소환되었다. 그 때 그는 성 안나 교회에 머물렀는데,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한 뒤 자신을 체포하려는 세력을 피해 성 안나 교회에 피해 있다가 밤에 탈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루터가 자신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면서 엎드려 "성 안나여, 나를 구하소서"라고 했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던 성 안나의 이름이 붙은 교회에 은신하여 목숨을 구했던 것이 마치 그의 기도가 통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때의 인.. 2013. 1. 10. 22:55 | 더보기
Augsburg | Topic.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화의 신성 로마제국에서 황제는 껍데기뿐인 권력가였으며, 실질적인 권력은 각 지역에 분포된 선제후가 가지고 있었다. 선제후(選帝侯)라는 말 자체가 "선거권을 가진 제후"를 의미하는데, 이 선거가 황제를 뽑는 선거이다. 그러니까 선제후는 황제를 뽑을 권리가 있는 영주였고, 당연히 이들의 권력이 더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들 선제후들이 모여 제국 내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가 제국의회(Reichstag)이다. 제국의회는 제국도시를 순회하며 열렸는데, 아우크스부르크는 15~16세기 당시 독일에서 가장 번성했던 제국 도시로서 그 당시의 제국의회가 빈번하게 열렸던 도시이기도 하다.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제국의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바로 이 자리에서 멜란히톤(Philip Melancht.. 2013. 1. 10. 14:14 | 더보기
Augsburg | #02. 주교의 궁전 대성당(Augsburger Dom) 인근의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정원 너머로 자리잡은 궁전은 주교의 궁전(Bischöflische Residenz)이라고 부른다. 주교좌가 위치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주교가 머물던 곳이다. 오늘날의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1752년 지어졌으며, 그 이전부터 같은 자리에 주교의 거대한 거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란, 1530년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정리한 것으로, 종교개혁의 지도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입장을 그의 동지 필리프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이 정리하여 이 장소에서 발표한 사건을 말한다(당시 마르틴 루터는 출석이 금지되었었.. 2013. 1. 10. 13:49 | 더보기
Wittenberg | #07. 루터의 나무 95개조 반박문이 내걸린 3년 후인 1520년, 결국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면 당하게 된다. 이에 격분한 루터는 자신이 머물던 곳, 그러니까 지금의 루터 하우스(Lutherhaus)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서 교황의 파면 교서와 로마 교회 법전을 불태웠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비록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에 반하는 의견을 내어 종교개혁을 촉발하기는 했지만 교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교황이 성서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시정을 촉구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의도였다. 하지만 끝내 교황청이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루터를 파면하자 루터의 마음도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화형식"이 있던 자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나무가 심겼는데, 이.. 2012. 12. 24. 22:49 | 더보기
Wittenberg | #06. 루터 하우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에 머물 때 거주했던 집은 현재 루터 하우스(Lutherhaus)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 중 한 곳. 루터 하우스에 가면 마치 궁전처럼 거대한 건물에 일단 놀라게 된다.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부유한 사람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원래 이 건물은 수도원 건물이었고, 마르틴 루터는 이 곳의 수도사로서 건물 일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이 문을 닫자 건물은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루터는 그들을 가르치고 어울리며 이 건물에서 계속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루터가 살던 공간은 그 시절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루터의 유품과 그의 일생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 2012. 12. 24. 22:31 | 더보기
Wittenberg | #04. 시립 교회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건물들 뒤편으로 높은 탑이 솟아있는 시립 교회(Stadtkirche St.Marien)는 비텐베르크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이며, 도시의 중심이 된 교회이다.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가 95개조 반박문으로 이름이 알려져 비텐베르크를 대표하는 교회가 되었지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시립 교회에서 결혼을 했고 자녀들까지 세례를 받았으며 이후 주기적으로 설교를 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는 교회 전면의 제단이 눈에 띈다. 화려한 장식은 없으나 제단에 그려진 성화가 일품. 이 성화를 그린 이가 루카스 크라나하(Lucas Cranach)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입장료 및 개장.. 2012. 12. 24. 22:04 | 더보기
Wittenberg | #03. (1)마르크트 광장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구 시가지의 중심. 시가지의 규모에 비해 광장이 큰 편이다. 광장의 사면은 모두 옛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중 광장의 정면에 위치한 건물이 시청사(Rathaus),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동상, 그 옆에는 필리프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의 동상도 자리잡고 있다. 사면을 둘러싼 건물들이 크기와 색상은 제각각이지만 조화를 훌륭해 이루고 있으며, 건물들 뒤로 높은 첨탑이 솟아있는 시립 교회(Stadtkirche)까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슐로스 거리(Schlossstraße)의 끝이 마르크트 광장으로 연결된다. 크게 보기 2012. 12. 24. 21:23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