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45. 브라키오, 티렉스, 크누트

저는 여행을 다닐 때 자연사 박물관은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뭘 거기까지 가서 화석들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죠. 굳이 보고 싶으면 한국에서 봐도 되구요. 그런데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저의 취향은 아무 상관이 없어졌기 때문에 자연사 박물관도 들어가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여행이 아니라 취재니까요.


은근히 재밌더군요. 특히 공룡 하면 껌뻑 넘어가는 아이들은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하고 초집중하는 모습도 귀엽고, 어른의 시선에서 보기에도 소소한 재미가 있더라는 겁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사 박물관으로 몇 곳이 경합을 벌이지만 아마 대부분 이곳의 손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베를린의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단일관의 규모로는 단연 독일 최대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젠켄베르크 박물관이 총 규모로는 1등이지만, 여기는 프랑크푸르트 본관 외에 다른 도시의 분관까지 합쳐서 1등이구요. 단일관만 따지면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이 1등,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박물관이 2등이라고 하네요.

여기의 터줏대감은 브라키오사우르스의 화석입니다. 입장하자마자 느닷없이 거대한 화석이 시선을 강탈합니다. 머리 꼭대기까지 쳐다보려면 목이 아플 지경이죠. 높이가 13m가 넘고, 세계 최대 규모의 화석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보던 시조새 화석 등 친숙한 전시품도 많아요. 이런 걸 직접 보면서 공부했으면 지구과학 점수가 좀 더 높았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게 만듭니다. 모든 전시품은 교육의 목적을 겸하므로 독일어와 영어로 상세한 설명을 곁들입니다. 물론 어려운 단어가 많기 때문에 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온전히 이해하기엔 매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눈으로만 봐도 흥미로운 게 많아요.

몇 해 전부터 브라키오사우르스를 능가하는 슈퍼스타가 생겼습니다. 바로 "티렉스" 티라노사우르스 화석입니다. 티렉스 화석을 전시한 박물관은 아주 많은데요. 대부분 화석의 일부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형으로 채워넣습니다. 그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리지날" 티렉스 화석으로 꽉 채운 곳은 유럽에서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워낙 임팩트 강한 공룡이기도 하고, 유럽에서 유일하다는 희소성도 있고, 조명을 강렬하게 사용하는 전시실의 센스도 남달라 박물관 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시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품은 바로 이 녀석, 크누트(Knut)입니다. 크누트는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난 북극곰입니다. 그런데 어미곰에서 버림을 받았고, 독일법에 따르면 이러한 동물은 안락사시켜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크누트를 죽이지 말라는 편지와 전화가 쇄도해 결국 베를린 동물원은 크누트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전담 사육사를 붙여주었습니다.


일반에 공개된 크누트는 단연 인기스타가 되었고, 크누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이 동물원에 찾아와 매출이 껑충 뛰는 효과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담 사육사가 갑자기 죽으면서 크누트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연못에 빠져 익사하고 맙니다. 그것도 수백명이 보고 있는 앞에서요.


베를린에서는 크누트의 남다른 존재감과 상징성을 고려해 시신을 박제하여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크누트를 잊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좋은 생각이라는 찬성 입장, 죽어서까지 전시품이 되어야 하는 잔인한 생각이라는 반대 입장이 맞섰는데, 결국 자연사 박물관에 이렇게 자기 자리를 찾았네요.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그 사이에도 아이들이 쉴새없이 크누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만 보고 판단하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겠지만, 좋은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부모와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특히 많이 보였습니다. 설명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성실하게 설명해주는 부모들의 노고가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