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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50. 히틀러의 시작과 끝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관련된 글입니다. 히틀러가 태어난 곳과 사망한 곳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정리합니다. 여행 이야기보다는 그냥 단편적인 잡담 정도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분리되어 쇠락해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입니다. 골수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이민족이 대등한 권력을 공유하는 오스트리아를 자신의 조국이라 인정하지 않았고, 게르만족의 나라인 독일에서 살기 원했죠. 징집을 거부하며 독일 뮌헨으로 도피하였고, 건강을 이유로 오스트리아 군 면제를 받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즉, 사실 건강은 문제가 없으나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싸울 마음이 없었던 거죠.


이후 히틀러의 삶과 그가 벌인 만행은 일일이 정리하기에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그의 평전(?)을 쓰려는 것이 아니니 생략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히틀러는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벙커에 숨어있었지만 이미 베를린은 소련군과 연합군에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는 연인 에바 브라운과 혼인식을 올린 뒤 아내와 함께 자살합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의 브라우나우(Braunau am Inn)라는 국경도시입니다. 아버지가 세관 공무원이어서 국경도시에서 일했고, 1889년 아버지가 세들어 살던 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근무지가 바뀌어 이사가는 바람에 이 집에서 살았던 기간은 매우 짧다고 합니다.

그래도 히틀러의 생가라는 이유로 네오나치가 성지순례하듯 여기를 찾아옵니다. 이게 브라우나우에게는 골치거리였어요. 건물주는 차라리 건물을 비워두는 한이 있어도 못 건드린다고 버티고, 결국 오스트리아는 법까지 바꿔가며 기어이 이 건물을 매입했고 이제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할 것이라고 합니다.

베를린에 있는 최후의 장소, 즉 1945년 그가 자살한 벙커는 완전히 폐쇄되었고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으며, 오직 안내도 하나만 세워두었을 뿐입니다. 물론 안내도의 목적은 교육을 위함입니다. 그러다보니 최후이 장소라며 기념할만한 뭔가가 없어요. 네오나치가 성지로 여기지 못하도록 베를린에서 철저히 차단한 것입니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베를린의 한 박물관에서 히틀러의 벙커를 재현한 전시실을 만들었다가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교육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독재자의 마지막을 기념할만한 장소를 만들었다는 자체로 여론의 폭격을 받고 결국 전시실을 폐쇄하기에 이릅니다.


어떻게든 그의 시작을 지우고야 말겠다는 오스트리아의 의지, 그의 마지막을 철저히 지워버리겠다는 독일의 의지. 최악의 독재자는 지금 그렇게 "잊혀짐"을 모토로 역사 밖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만행까지 잊겠다는 건 아닙니다. 모든 나쁜 짓은 다 기록하고 교육하되, 네오나치가 그를 기념할 어떠한 구실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뮌헨에서도 비슷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히틀러가 거주했던 뮌헨의 건물은 지금 경찰서로 사용됩니다. 굉장히 발상이 신선했어요. 그 앞에서 네오나치가 뭔 짓을 하면 바로 경찰서로 끌고 가면 되니까요. 히틀러가 살았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경찰서니까 삼엄한 보안검색을 받아야 하고, 용무 외의 딴 짓을 못합니다. 건물은 남았으되 네오나치가 접근할 수 없도록 싹을 잘라버린 뮌헨의 센스도 인상적입니다.


독재자의 동상을 세운다던지, 그 시절엔 그게 최선이었다고 합리화하던지,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독재자를 지워버리려고 온 나라가 혈안이 되어있는걸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