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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78. 로스차일드와 쉰들러

국제적인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아마도 대부분 소설가 괴테를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괴테의 고향이며, 생가 박물관도 있으니까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언뜻 생각했을 때 "응?" 하는 생각이 들만한 의외의 인물들이 프랑크푸르트와 인연을 맺었으니, 바로 로스차일드와 쉰들러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남은 두 사람(물론 그 중 하나는 가문)의 흔적을 정리합니다.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은 설명이 필요없는 유대계 국제 금융재벌이죠. 그 뿌리는 독일입니다. 그러니까 로스차일드가 아니라 독일어식으로 로트쉴트라고 읽어야 할 텐데요. 그 뜻은 "붉은 방패"라는 뜻이며,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은 성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시대마다 성처럼 사용하는 이름이 바뀌었는데, 거주하던 집 대문에 붉은 방패 모양의 문장이 있었기에 로트쉴트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다 유대인도 성을 가질 수 있게 되자 그 때 사용하던 로트쉴트를 가문의 성으로 사용하였고, 이것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영어식 발음인 로스차일드로 불리게 됩니다.

가문을 일약 세계적인 재벌로 성장시킨 마이어 암셸 로트쉴트(Mayer Amschel Rothschild)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닥치는대로 땅을 사들입니다. 집도 계속 확장되어 궁전이나 다름없는 매우 큰 건물로 발전되었고, 그 주변의 넓은 땅은 전부 정원으로 가꾸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폭격으로 로트쉴트의 집은 파괴되었고, 이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정원 부지의 소유권을 갖고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개방합니다. 그게 로트쉴트 공원(Rothschildpark)인데요.


어디 구석에 있는 게 아니라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떡하니 있습니다. 원래 로트쉴트가의 정원은 지금 공원보다도 훨씬 넓었다고 합니다. 비록 로트쉴트의 궁전 같은 집은 사라졌지만 넓은 공원을 바라보면서 과거에 그가 얼마나 막대한 부를 누리고 살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공사로 휴관 중인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박물관 건물은 건물 두 채를 연결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 한 채의 건물은 원래 로트쉴트 가문의 것이었습니다. 한 은행가가 지은 것을 로트쉴트 가문에서 매입하여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또한 궁전처럼 크고 넓은데, 로트쉴트 가문에게 있어서 이 건물은 본관이 아니었을 정도니까 그 위세가 어느정도였는지 이 또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 건물 역시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매입하였는데, 유대계 재벌의 건물을 사들여 유대인 박물관을 만들었으니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은 쉰들러(Oskar Schindler)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쉰들러는 그 유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그 사람, 독일인 사업가인 오스카 쉰들러(독일어식 발음으로 오스카어 쉰들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자비를 들여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대거 구출했던 사람이죠.

쉰들러는 전쟁 중 막대한 재산을 써버렸고, 이후 사업을 재건하지 못해 파산하고 맙니다. 그래도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전쟁의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사업에 열심이었다고 하네요. 그는 말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10년간 살았고, 그 건물은 입구 앞에 현판을 달아 쉰들러와의 인연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쉰들러는 여기서 1974년까지 살았으며, 그 해 힐데스하임에서 사망합니다. 사실상 죽는 날까지 프랑크푸르트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 건물은 중앙역 바로 맞은편에 있습니다. 오 라일리(O' Reilly's)라는 아이리시펍이 있는 건물입니다. 현판은 멀리서 잘 안 보이니 아이리시펍을 찾으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