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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77. 키르헤, 돔, 뮌스터, 클로스터

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오랜 경력을 가진 한 유명 여행작가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처음 책을 썻을 때만 해도 독자들께서 출판사에 전화하거나 작가 이메일로 책 내용에 대해 이런 저런 피드백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굉장히 강한 컴플레인이 들어오곤 했대요. 그런데 컴플레인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교회와 성당의 표기였다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 장소는 성당(가톨릭)인데 왜 교회라고 표기했느냐, 그런 컴플레인이 많았다는 거죠.


영어를 예로 들어볼게요. 교회를 뜻하는 단어는 church죠. 그러면 church는 교회니까 개신교 예배장소만 뜻하느냐, 그게 아닙니다. church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공동체 또는 건물)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같은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것인데 어디는 성당이고 어디는 교회라는 식으로 구분하여 부르지 않습니다. 굳이 교단이나 종파를 구분해야 한다면 catholic church, evangelical church 등 수식어를 더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가톨릭이나 개신교이나 모두 교회라고 부르는 게 맞고, 굳이 구분해야 하면 가톨릭 교회, 장로교 교회, 감리교 교회 등으로 구분하면 되는 거죠.


아무튼, 이 글은 한국에서 이상한 표기가 횡횡하는 걸 비판하는 게 아니라 독일에서 교회의 표기를 어떻게 나누고 있으며, 그것을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 적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서론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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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church에 해당되는 독일어가 키르헤(Kirche)입니다. Kirche는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사용하는 명칭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며, 그래서 저는 Kirche를 교회로 번역하여 표기합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구분하지 않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키르헤가 적지 않습니다. 뮌헨과 드레스덴의 성모 교회(Frauenkirche)는 많이 들어보았을 텐데요. 뮌헨의 성모 교회는 가톨릭, 드레스덴의 성모 교회는 개신교(루터교)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이지만 표기에 따로 구분을 두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종교개혁이 벌어진 비텐베르크의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 함부르크의 성 미하엘 교회(St. Michaeliskirche),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 뤼베크의 성모 마리아 교회(St. Marienkirche)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키르헤가 존재합니다. 프랑크푸르트의 파울 교회(Paulskirche)처럼 지금은 종교와 무관한 장소가 되었어도 교회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케이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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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가톨릭 교회 중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돔(Dom)과 뮌스터(Münster)가 대표적인데요.

Dom은 가톨릭에서 주교좌가 설치된 교구의 중심이 되는 곳, 즉 주교좌성당을 뜻합니다. 영어의 cathedral과 같은 의미이며, 이걸 한국어로는 대성당이라고 적습니다. 그 유명한 쾰른 대성당(Kölner Dom), 마인츠 대성당(Mainer Dom),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er Dom; 정식명칭은 황제의 대성당이라는 뜻의 Kaiserdom) 등이 해당됩니다. 작은 도시라 해도 그 교구의 중심이 되는 곳은 주교가 관할하는 대성당이 있습니다. 밤베르크 대성당(Bamberger Dom)이나 풀다 대성당(Fuldaer Dom)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Münster도 대성당으로 번역합니다. 원래 수도원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영어의 minster와 뜻이 같습니다. 주교좌성당은 아니지만 그에 걸맞은 비중을 가진 거대한 교회를 Münster라고 하므로, 이걸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도 대성당이라 적습니다. 주교좌성당은 아니지만 대성당이기는 한 것이죠. Münster가 꼭 가톨릭인 건 아닙니다. 그래도 대교회라는 단어는 없으니 대성당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Münster를 옮겨 적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울름 대성당(Ulmer Münster), 프라이부르크 대성당(Freiburger Münster) 등입니다.


그 외에 많이 보이는 장소로는 클로스터(Kloster)도 있습니다. 이건 수도원을 뜻합니다. 성직자가 속세에서 떠나 신앙생활에만 집중하는 공동체를 말하죠. 주로 가톨릭에서 존재하지만 모든 수도원이 가톨릭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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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는 책은 모두 위 표기법에 따릅니다. 가톨릭이냐 개신교냐를 전혀 구분하지 않습니다. 성당과 교회를 칼같이 구분해야 한다면 아래와 같은 난감한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은 지금 개신교 교회입니다. 원래 주교좌성당이었지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Dom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독일에서 결정했다면 모를까, 여전히 독일에서 Dom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어로 대성당이라고 안 적으면 뭐라고 번역해야 될까요? 답이 없어요.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은 원래 주교좌성당은 아니어서 Münster로 부르다가 훗날 주교좌성당이 되었지만 Dom으로 고쳐 부르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번 정한 이름을 중간에 고치지 않고 쭉 사용하는 게 독일의 전통인가봐요. 독일에서도 그렇게 하겠다는데, 한국에서 성당이냐 교회냐를 가지고 투닥거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혹 제 책을 보면서 이건 가톨릭인데 왜 교회라고 적었을까, 베를린 대성당은 개신교인데 왜 대성당이라고 적었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위와 같은 이유를 고려한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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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하나 더. 돔, 뮌스터, 키르헤, 클로스터가 아닌 제5의 표기 바질리카(Basilika)도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바실리카라고 적죠. 이건 고대 로마제국까지 전통이 거슬러 올라가며, 교황과 연관이 있는 가장 급이 높은 로마가톨릭 교회를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이탈리아에 많습니다. 독일에서는 트리어의 콘스탄틴 바실리카(Konstantinbasilika) 정도만 존재하므로 독일여행 중에는 딱히 몰라도 관계는 없는 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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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기독교 문화 위에 생기고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역사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까지 보존된 독일의 전통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합니다.


그 자체로 인류의 1천년을 상회하는 건축공학의 보고이기도 하구요. 루터가 설교한 교회, 괴테가 결혼식을 올린 교회, 바흐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소년합창단을 지휘한 교회 등 역사적 인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장소도 많습니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독일여행 중 교회는 반드시 가야 하고, 또 갈 수밖에 없는 장소가 됩니다.


그런데 어디는 키르헤, 어디는 돔, 뮌스터, 어디는 클로스터, 이름이 다 제각각이니 무슨 차이가 있을지 궁금할 수 있는데, 이 글을 참조하시면 어느정도 기준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