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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88.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철망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지 않고 보존되어 기념물로 남아있는 장소가 몇 곳 있는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 위에 전세계 예술가의 그림을 덧입혀 평화를 기원하는 길거리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관광객에게 유명한 장소가 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자꾸 여기에 낙서를 하더라는 겁니다. 베를린에서는 주기적으로 그림을 다시 칠하거나 또는 교체하는 식으로 보수하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낙서가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구요. 꼭 낙서가 되어있는 곳에 낙서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낙서가 또 다른 낙서를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결국 베를린에서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앞에 보호 철망을 설치하기에 이릅니다. 어쨌든 그림을 보아야 하니 아예 가려버릴 수도 없고, 이처럼 미적센스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흉물스러운 철망이 설치되었습니다. 당시 외신에서는 "무너진 장벽 앞에 다시 장벽이 생겼다"는 식으로 제목을 달기도 했었습니다.


직접 이 흉물스러운 광경을 보면서 답답하더군요. "오죽했으면 이렇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간 몰지각한 사람들이 벌인 짓을 아니까 보기는 싫어도 이해는 하게 되더군요.

낙서의 대부분은 외국인 관광객이 남긴 것들입니다. 아주 온갖 언어가 다 등장하는데 그 중에 한글도 보여서 정말 화끈거렸습니다. 장벽이 이 모양으로 훼손되니까 여기가 무슨 방명록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되나봐요. 창피합니다.

베를린 가이드북 <베를린 홀리데이>를 쓰기 위해 베를린을 다시 찾았을 때 이런 광경을 보게 되었고, 이 뷰(?)를 보러 여기 오라고 책에 적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다고 세계적인 관광지인데 소개를 안 할 수도 없고, 결국 책에 넣기는 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달 전 방송한 독일여행 프로그램 <고민말고 GO>에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나왔는데, 방송 화면으로 보니 철망이 안 보이더군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작년 말부터 철망을 다시 치운 것 같아요.

철망이 없던 2012년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입니다. 지금 가면 이런 모습이 펼쳐져 있을 겁니다. 만약 또 훼손이 심해지면 다시 흉물스러운 철망이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죠. 부디 더 이상의 몰지각한 일은 없기를 바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