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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89. 전쟁과 평화, 뮌헨 올림픽 공원

서울에 올림픽 공원이 있죠. 저는 어릴 적에 학교 소풍으로도 자주 갔던 곳인데요. 다 아시듯이 올림픽 공원은 올림픽을 위해 만든 경기장들이 모여있는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가꾸어 시민에게 개방한 콘셉트입니다.


독일 뮌헨에도 이것과 똑같은 콘셉트의 올림픽 공원이 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경기장 부지에 조성된 올림픽 공원(Olympiapark)입니다.

올림픽 공원은 시내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버려진 넓은 공터가 있었기에 경기장 여러 개를 만들 부지로 적절했죠. 그런데 이 땅은 그냥 공터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폭격으로 다 부숴진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건물 잔해나 고철 등 엄청난 양의 폐자재가 나왔겠죠. 그걸 시 외곽에 한 데 모아 쌓아놓은 자리였습니다.


그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고 인공 호수도 만들고, 그렇게 지금의 올림픽 공원의 틀이 완성되었습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잔해 위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의미있는 발상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독일은 분단국이잖아요. 냉전 시대에 분단국에서 열린 올림픽이기에 더욱 평화의 메시지는 강렬했습니다.

당시 사용한 경기장 중 일부는 여전히 스포츠 행사가 열리지만 일부는 전시장이나 컨퍼런스홀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원 한복판에 높이 솟은 올림픽 타워(Olympiaturm)는 전망대로 개방되어 탁 트인 뮌헨 전망을 보장합니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라 뮌헨 시내의 유명한 건축물들이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날씨 좋은 날에는 멀리 알프스까지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렇게 개최된 뮌헨 올림픽은 당시까지는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분단국에서 열리는 행사인만큼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모두 역량을 쏟아부었죠. 북한이 처음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합니다. 종합순위(한국과 달리 총메달 개수로 집계)는 1~4위가 소련, 미국, 동독, 서독순이었습니다. 사이좋게 나누어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며, 당시 전쟁의 양대 축인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스포츠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것은 매우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 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해 인질로 잡고는 이스라엘에 체포된 팔레스타인 양심수의 석방을 요구합니다. 이때 서독의 대응은 아주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례로, 대테러부대가 없어서 일반 경찰 특공대가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이걸 TV로 생중계하는 바람에 테러리스트들이 TV로 그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네요.


결국 인질로 잡혔던 이스라엘 선수 11명은 테러범에게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죠. 전쟁의 폐허 위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던 행사는 순식간에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보복 공격을 퍼부어 수백명을 죽입니다.

올림픽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폐막식까지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였습니다. 그렇게 뮌헨 올림픽은 역대 가장 슬픈 올림픽으로 기억됩니다. 올림픽 공원 한 쪽에는 당시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가 설치되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이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아파트촌을 구경하기 어려운 나라인데, 뮌헨 올림픽 당시 선수촌으로 만든 주거단지는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촌으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하고 인질로 삼았던 장소가 저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그냥 평범해보이는 공원에도 이런 역사적 스토리가 줄줄이 존재하는 나라 독일. 알면 알수록 여행의 재미가 배가됩니다. 분량에 여유가 있는 시티 가이드북을 만들 때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 다시 전쟁과 평화가 반복된 올림픽 공원의 이 이야기는 <뮌헨 홀리데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올림픽 공원을 방문했을 때 여기서 지역 행사로 마라톤 경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올림픽 공원에서 출발해 뮌헨 시내를 돌고 다시 올림픽 공원에서 골인하는 코스더군요. 이처럼 올림픽 공원은 지역 주민의 생활밀착형 휴게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마침 올림픽 공원 바로 옆이 뮌헨 여행의 필수코스인 BMW 박물관입니다. 날씨가 나쁘지 않으면 BMW 박물관을 관람하고 난 후 올림픽 공원에서 잠시 산책하며 전쟁과 평화가 반복된 역사의 스토리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