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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메수트 외질의 국가대표 은퇴

메수트 외질이 SNS로 독일축구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책임을 모두 자신에게 돌린다며 이것을 "인종차별"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국가를 대표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사건을 거슬러올라가면 외질과 동료 귄도간이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것에서 모든 비극이 출발한다. 외질과 귄도간은 터키계 독일인이다. 터키계 독일인이 터키 대통령을 만나 사진 한 장 찍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반문할는지 모른다.


외질은 기념촬영이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항변한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그 사진을 정치적으로 사용했다. 현재 에르도안은 사실상 독재와 다름없는 폭군의 길로 가고 있다. 언론을 탄압하고, 반대파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공무원을 누명을 씌워 제거하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중이다.


그러나 대놓고 독재를 할 수는 없는지라 선거를 통해 독재를 합리화한다. 개헌 투표를 거쳐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고치고, 대통령 선거를 거쳐 임기를 연장한다. 이 양반이 어느정도인고 하니, 2003년부터 총리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다가 더 이상 총리 연임이 불가능해지자 2014년부터 대통령이 되고, 헌법을 고쳐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다. 러시아에서 푸틴이 하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문제는 언론이 탄압되고 반대파가 숙청되는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선거가 과연 공정할지 의문이라는 것.


그래도 터키는 무슬림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서방에 준하는 자유를 누렸던지라 깨어있는 국민이 많다. 그래서 언론이 탄압되는 등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투표 결과가 에르도안에게 유리하지 않게 나온다. 하지만 재외국민 투표까지 합산하면 에르도안이 원하는 결과로 끝나게 된다. 즉, 터키에 살지 않는 터키인이 에르도안을 광적으로 지지(조작이 없다는 전제 하에)하여 독재를 연장하는 셈이다.


외질과 귄도간의 사진은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이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에는 300만명 이상의 터키 국적자가 살고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유권자가 존재하는 것인데, 외질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고 하지만 에르도안은 정치적 목적으로 그 사진을 이용해 수백만명에게 선거운동을 했고, 재외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외질은 은퇴 선언문에서도 "내 핏줄인 터키의 최고 위치에 있는 에르도안을 존중하는 게 당연"하므로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으로 독재가 연장되는 결과를 보면서도 말이다.


가뜩이나 독재에 트라우마를 가진 독일인이다. 밀접한 관계를 가진 터키에서 독재자가 날뛰는데 그에 대한 반감이 높은 게 당연하다. 그런데 외질이 그 독재자를 돕는 모양새가 되었다. 당연히 외질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외질을 욕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그런데 외질은 오히려 팬들과 설전을 벌였고, 멕시코전 패배 후에는 경기장을 나가며 자신을 비난하는 팬에게 옷을 집어던지며 같이 싸우기도 했다. 그 경기에 앞서 국민의례가 열릴 때 외질은 독일 국가를 부르지 않았지만 이건 늘 그래왔기 때문에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의례 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관중에게 인사할 때에도 외질은 혼자 빠졌다고 한다. 독일 언론을 보면, 조별리그 내내 독일 선수단의 분위기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팀웍이 생명인 축구에서, 경기 전체를 조율해야 될 위치에 있는 선수가 분위기를 흐렸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외질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며, 이것은 자신이 터키계이기 때문에 인종차별하는 것이라고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 그가 틀렸다. 만약 인종차별이라면, 본선에서 극도로 부진했던 마리오 고메즈나 사미 케디라, 퇴장으로 못 나온 제롬 보아텡도 함께 욕했을 것이다. 심지어 외질과 함께 사진을 찍은 알카이 귄도간도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외질이 에르도안을 두둔하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팬과의 싸움도 불사한 것이 그가 욕먹은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르도안과의 사진이 공개되고 그것이 선거운동에 이용되면서 독일에서 외질과 귄도간을 대표에서 제외하라는 여론이 많았다. 그 때 메르켈 총리까지 나서서 외질을 두둔했다. 지금 외질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자 터키의 장관은 "인종차별을 향한 가장 멋진 반격"이라고 논평했다. 외질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계속 터키의 독재정권에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중이며, 외질은 이 상황을 부당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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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하는 글.


실제로 SNS에서 외질을 터키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적 조롱을 하고 헛소리를 해대는 독일인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디에나 돌+I는 있는 법. 독일의 소수 극우적인 종자들이 헛소리하는 것이므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독일의 네오나치스러운 저질 극우의 수준이 이런 식이다. 킨더 초콜릿 포장지에 흑인 어린이 사진이 있다고 격렬히 비난하다가 알고보니 그 흑인 어린이가 "국가대표" 제롬 보아텡의 어린 시절 사진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깨갱한다. 독일인 선수 티모 베르너가 공격할 때 야유를 보내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드레스덴 출신이라 라이벌 도시 라이프치히 소속의 티모 베르너에게 야유한 것이다. 심지어 티모 베르너는 이민자 출신도 아니다.


그러니 이 수준의 SNS 망언을 가지고 독일에서 외질에게 인종차별을 가했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몹시 성급한 일반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질이 인종차별을 외치자 독일에서는 자성하는 여론이 더 커질 정도로, 적어도 인종차별에 있어서만큼은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 인성이 올바른 나라가 독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