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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76. 라이프치히, 10월 9일

1989년 10월 9일은 독일 역사에 있어 매우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 날입니다. 이때는 아직 동서독이 분단된 시절이었고, 동독이 점차 궁지에 몰리던 시기입니다.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공산정권의 힘과 권위로 누르기 어려워졌죠.


특히 라이프치히(Leipzig)는 그 자유의 외침이 가장 컸던 도시입니다. 한 교회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반정부 성향의 지식인이 모여 정치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89년 9월 4일, 자유와 통일을 원하는 시민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습니다. 아무리 동독이 자유를 불허하는 공산정권이라 해도 교회 안에서 평화롭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어쩌지는 못합니다. 이 날 시작된 기도회는 매주 월요일 같은 장소에서 되풀이되며 소위 "월요 데모(Montagsdemonstrationen)" 집회로 발전됩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기도한 뒤 교회 인근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쳤습니다. 물론 처음에 그 수가 많지 않아 동독 정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동독은 언론의 자유가 없으니 이런 집회가 있다고 다른 도시에 알려지기도 힘들었으니 라이프치히만 봉쇄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라이프치히는 당시 동독에서 손꼽히는 대형 박람회장이 있었고, 스스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박람회를 종종 개최했으며 이 자리에는 서독의 기업인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월요 데모는 서독에 알려집니다. 그리고 서독의 뉴스를 볼 수 있었던 동베를린에도 알려지고, 점점 동독 전국에 퍼집니다.


그리고 10월 9일, 그 날은 동독 수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군중들이 행사 참여를 위해 모였겠죠. 이들이 월요 데모에 참여하니 그 수가 7만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당시 라이프치히의 인구가 5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한 도시의 1/7이 참석한 셈입니다. 

서울에서 140만명이 참여한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 

어랏,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었죠


너무 수가 많고 세가 강해 동독도 이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었습니다. 탱크가 동원됐지만 평화롭게 시위하는 대규모 군중을 학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 한 도시에서 벌어진 데모 정도였다면, 이 날을 기점으로 동독 전국을 휩쓴 혁명으로 발전합니다. 다음주에는 12만명, 그 다음주에는 30만명, 결국 혁명 앞에 동독 정부는 항복합니다.


동독 정부는 민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혁명 1개월만인 11월 9일 출국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몇 가지 정책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장에서 말실수와 언론의 오보가 몇 콤보로 겹치며 하룻밤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집니다.


우리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대대적인 사건의 불씨를 당긴 라이프치히의 10월 혁명은 잘 모릅니다. 불과 1개월만에 베를린 장벽을 날려버린 거대한 혁명의 도시, 바로 라이프치히입니다.

당시 기도회가 열린 장소가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입니다. 오늘날에도 니콜라이 교회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혁명을 기념하며 1999년 설치한 기둥이 교회 내부에 마치 월계관을 쓴 것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기도회가 끝난 뒤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친 광장이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입니다. 당시 이름은 카를마르크스 광장(Karl-Marz-Platz). 여기에 그 유명한 게반트하우스(Gewandhaus; 멘델스존이 지휘했던 세계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 극장도 있습니다. 오늘날 광장 주변에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기념비들은 모두 혁명을 기리는 것들입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매년 10월 9일마다 아우구스투스 광장에서 빛의 축제(Lichtfest)를 엽니다.


니콜라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기도하고 설교하며 시작하고,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숫자 89를 완성합니다. 어두워진 뒤 광장을 새하얗게 밝히는 "촛불의 바다"는, 힘 없는 일개 시민들의 비폭력 혁명이 낳은 엄청난 성과를 찬양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감동적인 기념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