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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독일은 브렉시트 합의에 찬성한다.

지난주 영국과 EU는 드디어 브렉시트 합의 초안에 뜻을 모았다. 합의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영국은 EU라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했지만 계속 호텔룸에 남아 돈을 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EU는 한 나라로 간주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각각의 나라가 있지만 EU 내에서 사람과 자본 및 물자의 이동은 한 나라로 간주된다. 가령, 한국인이 옆나라 일본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고(무비자 포함), 물건을 팔려면 수출을 하며 관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영국인이 옆나라 프랑스에 갈 때 비자도 필요없고 여권도 필요없으며, 물건을 팔더라도 관세 없이 그냥 사고 판다.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이제 한 나라가 아니다. 영국인이 EU에 가려면 외국인의 신분으로 비자를 받아야 하고, 물건을 사고 팔더라도 수출 또는 수입의 절차가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오늘 갑자기 제주도가 한국에서 독립한다 가정하자. 이제 제주도에 여행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고(그럴바엔 안 가게 될 것이다), 제주도 삼다수를 구매하려면 수입 절차를 거쳐 관세가 부과되어 가격도 더 비싸지게 된다(그럴바엔 안 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본사가 있는데 제주도에 지점을 냈다면 졸지에 해외 사업장이 되어버리고, 거기 일하는 직원은 졸지에 외국인 노동자가 된다. 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언론을 통해 "노딜 브렉시트"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위에 예로 든 제주도 독립 상황이 노딜 브렉시트와 똑같다. 아무런 대책 없이 영국과 EU가 그냥 갈라서는 것. 이건 같이 죽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의 EU 탈퇴일은 이미 내년 3월 말로 결정되어 있다. 그 때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아무 대책 없이 갈라설 수밖에 없고, 독일 등 EU에서는 이 상황을 매우 기피하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합의 초안이 나온 것이다.

합의 초안에 따르면, 영국은 EU 탈퇴 후에도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하고 분담금도 납부하며 EU의 규칙을 준수한다. 즉, 여전히 영국은 EU와 같은 나라로 간주된다. 단, EU에서 탈퇴했으니 EU의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기간은 2020년 말까지로 우선 정하였지만 양측이 합의하여 종료일을 결정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영국이 굳이 뛰쳐나가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호텔에서 체크아웃(=EU 탈퇴)했지만 계속 호텔룸에 남아(=EU 관세동맹 잔류) 돈을 내는 셈이다. 사실 영국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얻을 건 없고 잃을 건 많은 합의안이다. EU의 규칙도 준수해야 하고 분담금도 계속 내야 하니 실질적으로 EU에서 탈퇴한 효과가 없는데 EU의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는 거니까.


당연히 영국 내에서는 합의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잃은 게 많으니까. 그래서 의회 비준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등 EU 리더국가는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즉, 현재의 합의 초안은 독일 등 EU에게 최선의 결정인 셈이다.


만약 영국 내에서 의회 비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재협상도 없이 내년 3월 말을 넘기면 최악의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영국 내 브렉시트 강경파는 처음부터 노딜 브렉시트를 주문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당장 강경파들조차도 노딜 브렉시트가 이루어질 경우 아일랜드-북아일랜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칫 영국연방(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이 쪼개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의 예상으로는 결국 영국이 굽히고 들어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와서 브렉시트를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을까? 구멍가게도 아니고 선진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투표로 결정된 사안을 그렇게 함부로 뒤집을 수는 없다. 다시 국민투표를 진행하더라도 명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국이 얻은 건 없고 잃은 것만 많은 합의 초안에 동의한 것도, 우선 시간을 끌며 이런 코미디 같은 현실을 국민에게 보여주어 재투표로 이르게 하려는 속내일지도 모른다.


영국 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 브렉시트 투표를 다시 하면 "반대"에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60%에 달한다고 한다. 애당초 영국의 유권자들이 브렉시트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생각도 하지 않고 극우적인 선동에 넘어가 투표를 잘못한 것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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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2 내용추가)

유럽사법재판소에서 영국이 독자적으로 브렉시트를 철회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하였다. 즉, 이제 영국이 국민투표를 다시 하여 브렉시트 철회 결정을 내릴 길이 열렸다는 뜻. 물론 영국의 메이 총리는 재투표에 반대하고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명분이다.


혹시나 하여 과거 기사들을 찾아보니, 만약 브렉시트가 실현될 경우 스코틀랜드는 독립하여 EU에 잔류하기를 희망하는 스코틀랜드인이 많다. 또한 북아일랜드도 독립하여 아일랜드와 합병해 EU에 잔류하기를 희망하는 북아일랜드인이 많다. 명분은 쌓여가고 있다. 영국에게 필요한 건 잘못된 결정을 철회할 더 많은 명분을 쌓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