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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229.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독일(도이치)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나라의 건국은 1871년이 최초입니다. 굉장히 늦죠. 그래서 우리는 독일의 전신인 신성로마제국까지도 독일의 역사에 포함시켜 생각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일반적인 국가의 형태가 아니기에 굉장히 개념이 복잡하고 어려워 독일 역사 공부를 때려치게 만드는 주범(?)이 되기도 하는데요.


간략히 이야기하면, 오늘날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체코가 옛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독일은 과거 프로이센, 작센, 바이에른, 헤센, 뷔르템베르크 등 수많은 국가가 난립한 지역이었고, 오늘날 오스트리아는 과거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린 지역, 그리고 오늘날 체코(의 전부는 아니지만 프라하를 포함한 많은 지역)는 과거의 보헤미아 왕국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이토록 여러 국가의 영방 형태였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사실상 얼굴마담에 불과했고 각 지방국가의 군주와 대주교가 실질적인 권력을 갖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독일이 지역색이 강하고 다채로운 전통을 보유할 수 있게 된 이유입니다.


아무튼, 제가 처음 독일여행을 다닐 때 들고 다닌 가이드북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자신의 영지가 없고 제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머물렀다, 그것을 위해 곳곳에 있는 제국자유도시에 거성을 지어두었다. 대표적인 것이 뉘른베르크의 카이저 성이다."

당시만 해도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성로마제국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더군요. 하여, 앞으로 몇 차례에 나누어 신성로마제국의 복잡한 이야기를 여행지를 기준으로 풀어볼까 합니다. 유럽 중세사를 배운 분들의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일반 교양 수준으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주제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입니다.


우선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다"가 맞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한 곳은 존재했습니다. 어쨌든 제국이니까 황제가 머문 곳이 수도가 되겠죠. 그리고 통일된 국가는 아니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법은 존재했기에 제국의 법이 만들어지는 곳(요즘으로 따지면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 역시 수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제가 머문 곳, 그러니까 황제가 "나는 여기에 머물 것이다"라고 선포한 곳을 수도로 본다면 대표적인 도시가 프라하(Praha)와 빈(Wien)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보헤미아 왕 카렐 1세(황제가 된 후 카를 4세)가 선출된 후 그는 자신의 수도인 프라하를 황제의 영지로 발표합니다. 기존에 제가 잘못 알았던 내용, 즉 황제는 따로 머물 곳이 없고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게 사실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던 거죠. 어쨌든 황제가 되었다는 건 기반이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데, 아무렴 자기 영지가 없었을까요. 황제가 되었다고 자기 영지를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15세기부터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독점하다시피 합니다. 그러니 합스부르크의 영지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빈이 수도 역할을 한 시기는 약 300년, 매우 깁니다. 만약 역사적으로 신성로마제국 수도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빈을 꼽는 게 맞겠습니다.


제국의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있는 곳을 수도로 본다면, 이 부분은 일단 굉장히 많은 도시가 언급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국의회는 어떤 안건이 있을 때 황제가 소집하여 비정기적으로 열렸는데, 매번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국회의사당이라 부를만한 건물을 짓고 한 장소를 입법기관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게 번거롭다 생각됐는지 1663년부터는 한 도시에서 쭉 열리게 되는데, 여기가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입니다.

프라하와 빈은 오늘날 독일이 아니죠. 오늘날 독일에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역할을 한 곳)로 레겐스부르크가 가장 처음 언급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레겐스부르크 구 시청사에 제국의회가 열린 회의실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일부 자료에서는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소도시 베츨라르(Wetzlar)도 수도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하는데요. 입법기관인 제국의회가 전국을 떠돌다 레겐스부르크에 정착했듯, 사법기관인 제국법원도 전국을 떠돌다가 1689년부터 베츨라르에 정착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도를 논할 때 "대통령/총리(그 시절의 황제나 왕)가 집무하는 곳" 또는 "의회가 있는 곳"을 이야기하지만 "대법원이 있는 곳"을 이야기하지는 않죠. 그래서 베츨라르를 수도라고 분류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다고 언급되는 자료가 종종 있는데요. (항상은 아니었지만 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황제를 선출하는 선거가 열렸습니다. 그 때문에 수도라고 하기엔 부적절하지만, 아무튼 굉장히 큰 상징성을 가진 도시였던 건 맞습니다.


아울러, 위에서 언급했듯 황제는 자기가 머물 곳(수도 역할을 하는 곳)을 직접 정해 발표했다고 했는데, 주로 프라하와 빈이 그 장소가 되었지만 가끔 오늘날 독일의 도시들이 그 장소가 되기도 했고, 프랑크푸르트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은 2~3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리합시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도 역할을 한 곳을 굳이 꼽으라고 하면 프라하와 빈, 넓게 보면 레겐스부르크까지 3개 도시가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일부 자료는 보다 넓게 따져서 베츨라르와 프랑크푸르트까지 언급합니다.


참고로, 현재 시점 기준으로 구글에 "신성로마제국 수도"를 검색하면 위키피디아 자료에 근거해 프라하, 레겐스부르크, 베츨라르, 프랑크푸르트 4개 도시가 검색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는 없는 게 맞고 굳이 어떤 기준에 의해 수도 역할을 한 곳을 따지는 것이니 그 기준에 따라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프라하가 들어가는 기준이라면 빈도 들어가야만 합니다. 정정이 필요한 정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