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234. 우아한 소도시, 바이로이트

보통 소도시 하면 "동화같다" "예쁘다" "앙증맞다" 등의 수식어를 붙입니다. 그런데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는 조금 다릅니다. 인구 8만명도 되지 않는 소도시 바이로이트는 "예쁘다"는 수식어보다는 "멋있다" "웅장하다" "화려하다" 등의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곳입니다. 우아한 소도시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바이로이트의 전성기였던 18세기 "프로이센 변경백(邊境伯)의 영지"라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변경백이라 함은, 변두리[邊] 경계[境] 지역의 백작[伯]이라는 뜻으로, 독일어로는 마르크그라프(Markgraf)라고 합니다. 영지가 넓지는 않더라도 영토 방어의 최전선에 있는 국경 지역의 권력자이므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경 지역이니 당연히 군사가 많을 텐데, 혹시라도 배신하면 큰일나니까 대개 중앙 권력자와 가까운 관계의 인물이 변경백으로 부임하기 마련이죠.


프로이센은 당시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차례로 승리하고 유럽에 맹위를 떨친 강대국이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을 유럽 최강의 위치로 올린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이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의 누나인 빌헬미네가 바이로이트 변경백과 혼인을 맺었습니다. 즉, 바이로이트는 대왕의 매형이 다스리는 곳이었죠. 그러니 작은 소도시라 해도 남부럽지 않은 호화롭고 웅장한 건축물로 그 세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 이야기를 너무 깊게 들어가면 재미없으니 바이로이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바이에른 관광청 홈페이지를 링크해드립니다.


지금부터 바이로이트의 우아한 매력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신 궁전(Neues Schloss)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18세기 독일 전체의 궁전 건축을 다 통틀어도 몇 손가락에 들어갈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입니다. 대도시에 있을법한 이 거대한 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누나인 빌헬미네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며 완성한 곳입니다. 기본적으로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이 도시만의 독창성이 있다고 하여 바이로이트 로코코(Bayreuther Rococo)라고 구분합니다.

신 궁전이라 부르는 이유는 새로 지은 궁전이기 때문이죠. 원래 권력자가 거주하던 궁전이 있었는데 화재로 훼손되어 이 참에 새로 만들자고 지은 궁전이며, 앞선 권력자에 의해 지어졌던 옛 궁전은 다시 복원되어 구 궁전(Altes Schloss)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신 궁전과 구 궁전의 모양새가 전혀 다르죠. 그러나 구 궁전 역시 규모가 꽤 큽니다. 즉, 구 궁전은 변경백의 도시 바이로이트가 오랫동안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노라 증언하는 셈입니다.


신 궁전은 빌헬미네의 두 번째 역작입니다. 그녀는 신 궁전에 앞서 어마어마한 건축의 걸작이 바이로이트에 건축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바로 오페라극장입니다. 변경백의 오페라극장, 즉 마르크그라프 오페라극장(Markgräfliches Opernhaus)은 신 궁전에 앞서 빌헬미네의 강력한 지원 하에 완공되었는데, 이렇게 화려한 극장을 만든 이유는 딸의 결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딸의 혼인을 축하하려고 화려한 공연이 필요하다며 이 정도 스케일의 극장을 짓는 권력자가 흔하지 않겠죠. 여기서도 우리는 변경백의 권력이 가히 막강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오페라의 유령> 등 몇가지 콘텐츠를 통해 중세 유럽의 오페라극장의 분위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마르크그라프 오페라극장은 18세기 당시 유럽 여기저기 지어진 극장 중 원래의 모습을 가장 완벽히 보존(복원)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받고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이로이트 근교에도 인상적인 궁전 건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각각 에레미타주(Eremitage)와 판타지 궁전(Schloss Fantaisie)입니다. 두 곳 모두 원래 궁전이 존재했던 곳인데, 빌헬미네의 지시로 업그레이드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바이로이트의 변경백 부부는 이곳을 별장처럼 사용하면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기에 대도시 궁전이 부럽지 않은 우아한 건축미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이로이트 하면 많은 분들이 아마 이 이름을 반사적으로 떠올릴 것 같습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그는 말년에 자신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하고 음악 철학을 대물림할 "아지트"를 물색하다가 바이로이트를 택합니다.


기금을 모아 바이로이트에 축제극장을 짓고 자신의 새 작품을 발표하는 축제를 여는 장소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을 이끌고 바이로이트로 이주하여 정착합니다.

바그너는 자신의 집을 반프리트 하우스(Haus Wahnfried)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은 망상(Wahn)과 평화(Frieden)의 합성어로 "망상 속 평화"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건물 앞에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지은 "미치광이 왕" 루트비히 2세의 흉상이 있는데, 바그너를 격하게 흠모한 루트비히 2세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과 반프리트 하우스 건축을 위해 막대한 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바그너의 구상대로 축제극장(Festspielhaus)이 완성되었습니다. 앞서 마르크그라프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듯 중세 유럽의 극장은 좌석이 신분 계층별로 구분되어 있기 마련인데, 바그너는 그러한 신분 차별을 타파하는 "평등한" 구조의 객석을 만드는 등 자신의 음악 철학을 적극 반영하였습니다.


자신의 신작을 처음 공개하는 축제를 구상했던 바그너는, 그 소원대로 이곳에서 <니벨룽의 반지>와 <파르지팔>을 초연하였습니다. 그리고 <니벨룽의 반지> 초연이 열린 1876년을 바이로이트 축제의 원년으로 여기며, 오늘날에도 바그너의 후손에 의해 계속해서 매해 바그너의 오페라를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유럽에, 그리고 독일에 정말 많은 클래식 축제가 열립니다만, 바그너가 직접 만들고 바그너의 후손에 의해 계승되며 바그너의 음악만 끊임없이 재해석하여 연주하는 바이로이트 축제는 가장 "유별난" "독창적인" 축제로 꼽힙니다. 이미 향후 몇년치 티켓이 다 예약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이로이트는 소도시이지만 전혀 소도시 같지 않은, 어떤 대도시의 한 지역을 툭 잘라낸 것 같은 큰 스케일의 우아한 시가지와 유서깊은 고급 문화를 볼 수 있는 도시입니다. 오늘날에는 행정구역상 바이에른에 속해있으며, 인근의 큰 도시로는 뉘른베르크(Nürnberg)가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근교 여행지로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 로텐부르크 등은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바이로이트도 그 못지않은 여행의 매력을 간직한 여행지로 감히 추천합니다.

독일답게 맥주도 유명합니다. 국내에도 수입되어 아는 분이 많을 마이젤(Maisel's Weisse)이 바로 바이로이트 맥주입니다. 그리고 마이젤 공장 투어도 가능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기억해두셔도 좋겠습니다.


미처 다하지 못한 바이로이트의 수많은 이야기는 바이로이트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