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443. 프랑크푸르트 작센하우젠

독일 프랑크푸르트 여행 중 애플와인은 꼭 마셔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애플와인으로 유명한 가게를 찾게 되고, 많은 가게가 강 건너편에 모여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지역을 작센하우젠(Sachsenhausen)이라 부른다는 것도 들어본 분이 많겠죠.

여기까지는 흔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작센하우젠? 굉장히 이상했고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뭐가 이상하냐고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는 프랑크 왕국과 관련이 깊습니다. 가령, 카를 대제(샤를마뉴)도 프랑크푸르트를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했으니까요. 지금도 프랑크푸르트에 가면 고대 로마부터 카롤링어 시대까지 이어지는 고고학 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프랑크족의 나라였죠.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는 강 동쪽의 이교도 이방인들이 게르만족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는데(사실 별개의 민족이지만 전부 다 이방인이라고 퉁쳐서 게르만족이라 부른 것) 작센족이 그 중 하나입니다. 카를 대제는 작센을 정벌하고 프랑크 왕국에 복속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프랑크족의 적통을 잇는 게 프랑스, 게르만족의 적통을 잇는 게 독일이죠. 프랑크푸르트(프랑크의 여울)에 작센하우젠(작센 거주지)이 있다? 굉장히 이상합니다. 분명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해 이번 취재 중 관련 자료가 있을만한 곳을 뒤져보았습니다.

단서는 괴테 생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중세 프랑크푸르트의 지도입니다. 강 위쪽 큰 시가지가 오늘날 프랑크푸르트의 구시가지에 해당되는 곳, 강 건너 작은 시가지가 작센하우젠 되겠습니다. 마치 일부러 분리시키려는 고의가 느껴지는 도시계획입니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카를 대제가 작센을 토벌하던 중 함정에 빠져 역습을 당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프랑크푸르트로 도망쳐야 했는데 그 때는 다리가 없었죠. 기적적으로 수심이 얕은 곳을 발견해 무사히 귀환하여 목숨을 구했고, 그 때부터 프랑크의 여울(Furt)이라는 뜻의 프랑크푸르트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카를 대제는 전열을 재정비해 다시 강을 건너 작센을 토벌했고, 그때 잡은 작센족 포로들을 강 건너편에 가두어 천한 일을 시켰다는 것에서 작센하우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역사가들은 이것에 근거가 없을뿐 아니라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죠.

그러나 카를 대제가 건넜다고 하는 그 지역에 마인강 하류 최초의 다리가 개설되었고 구 다리(Alte Brücke; 올드 브릿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다리 위에는 카를 대제의 동상도 세워 이를 기념합니다. 바로 이 다리를 건너가면 맞은편에 도달하는 곳이 작센하우젠입니다.


전설일 뿐이라면 왜 작센족과 무관한 이 지역을 "작센 거주지"라 부를까요? 역사가들이 추정하는 해답은 이러합니다.


중세 독일에는 바이자스(Beisaß) 또는 바이자세(Beisasse)라 불리는 계층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보호는 받으나 시민권은 없는 낮은 계급이었습니다. 마치 소작농처럼 말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농사 짓거나 천한 일을 하는 바이자세와 섞여 살기 싫어서 강 건너편에 그들의 거주지를 따로 두었고, 바이자세를 줄여 자세(Sasse)라고도 했기 때문에 자세하우젠이던 이름이 언젠가부터 작센하우젠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이 가설대로라면 오늘날 작센하우젠이 애플와인으로 유명한 이유도 설명됩니다. 이 지역에는 농사 짓는 사람들이 살았으니까 과일을 재배해 와인을 양조했을 당위가 충분하죠. 실제로 이 지역이 포도와인으로 유명했다가 기후변화로 포도농사에 실패하면서 18~19세기부터 애플와인을 만든다는 건 팩트라고 합니다.

가설이기는 하지만, 프랑크족의 땅에 작센족의 거주지가 있는 이상한 명칭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가 카를 대제 시절부터 융성한 도시였다는 것, 작센하우젠과 연결되는 다리가 마인강 하류 최초의 다리라는 것, 작센하우젠이 애플와인으로 유명한 것, 모두 설명이 되었습니다.


작센하우젠이 애플와인으로 유명하다고 이야기하고 끝내도 됩니다. 하지만 <프렌즈 독일>은 이런 식으로 밑바닦까지 훑어가며 제가 스스로 공부하고 찾은 해답을 통해 여행의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드북입니다.

어떤 분들은 가이드북을 "인터넷에 있는 정보 베껴서 짜깁기한 것" 정도로 치부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면 그런 정보는 공짜로 나오는데 뭣하러 책을 사냐고 이야기합니다. 가이드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런 의견을 들을 때마다 많이 슬픕니다. 흔한 내용을 짜깁기한 게 아니라 남이 관심없을 밑바닥까지 치열하게 공부하며 가장 최적의 방향을 기획하는 결과물이니까요. 이런 TMI를 책에 다 적지는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책에는 한두줄 적고 끝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한두줄을 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펼쳐놓고 파고들어 선별하는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제가 쓴 독일여행책은 모두 이 정도 깊이의 고민과 공부를 거쳐 만들어졌고, 지금도 더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시각과 자세를 가지고 동유럽여행도 공부하며 고민합니다. 제가 쓴 동유럽여행책도 마찬가지의 깊이를 추구한다고 자부합니다.


책은 분량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제가 공부한 것의 극히 일부만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최근에는 오프라인에서 말로 떠드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 노력합니다. 이번달에는 동유럽을 주제로 인문학적인 배경을 깔고 여행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소규모 강연이므로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여파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는 시간입니다.)

다시 작센하우젠으로 돌아와서, 오늘날 프랑크푸르트는 강 남쪽의 전체를 작센하우젠이라 부릅니다. 남역(Südbahnhof) 부근의 지역이 해당됩니다. 그 중에서도 원래 작센하우젠이었던 곳은 구분하여 알트작센하우젠(Alt-Sachsenhausen)이라 부릅니다. 관광지라 하기는 어려우나 애플와인으로 유명한 가게가 모여 있으니 프랑크푸르트 여행 중 잠시라도 들러야 하는 지역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