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면적은 남한의 약 3.6배. 이 넓은 땅을 이동할 때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은 기차다. 전국을 촘촘히 연결하는 독일 열차의 명성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당신이 독일을 여행할 때 독일의 기차는 훌륭한 ‘발’이 되어준다. 독일 기차 여행, 참 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핵심을 요약한다.
1. 먼 거리도 신속하게 - 고속열차
열차 마니아에게 '꿈의 열차'로 불리는 초고속열차 이체에(ICE; Intercity Express)는 독일의 자랑이다. 최고속도 시속 300km로 독일의 넓은 국토를 거미줄처럼 연결한다. 대부분의 큰 도시와 중소도시에 정차하며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등 주변국가까지도 노선이 연장된다. 좌석의 앞뒤 간격이 넓고 승차감이 우수해 장거리 여행에도 전혀 불편이 없다.
ICE가 등장하기 전까지 독일의 장거리 운송을 담당했던 이체(IC; Intercity)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ICE보다 조금 느린 대신 가격은 조금 더 저렴하여 여전히 수요가 높다. IC는 노후 열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승차감이 우수해 독일의 열차 기술의 저력을 느끼게 해준다. IC는 이웃 국가와 연결되는 노선을 에체(EC; Eurocity)로 구분하여 부르지만 IC와 차이점은 없다.
고속열차의 가격은 다소 비싸기 때문에 정가로 구매하기는 부담이 크다. 다행히 독일철도청은 미리 구입할수록 저렴한 조기발권 할인운임(슈파르프라이스; Sparpreis)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조금만 부지런히 준비하면 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조기발권 할인운임은 ICE를 포함한 전 노선 최저 29 유로부터 시작하며, 독일과 주변 다른 국가를 연결하는 국제선 ICE는 최저 39 유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종종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최저 19 유로부터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미리 구입해야 저렴하므로 조기발권 할인운임은 인터넷으로 예매해야 된다. 독일철도청 웹사이트에서 모든 티켓을 조회 및 예매할 수 있고, 최근에는 한국어 예약 사이트도 오픈하여 야간열차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속열차를 한국어로 예약할 수 있다.
2. 가까운 거리는 저렴하게 - 지역열차
고속열차보다 느리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지역열차도 있다. 주로 큰 도시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작은 도시를 연결하는 목적으로 노선이 촘촘히 운영되고 있다. 현지인은 통근열차로 활용하고, 여행자는 큰 도시에 거점을 두고 근교의 작은 도시를 왕복할 때 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지역열차를 아르베(RB), 즉 레기오날반(Regionalbahn)이라 부른다.
아르에(RE; Regionalbahn Express) 역시 RB와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독일철도청이 운영하는 전철 에스반(S; S-bahn) 또한 지역열차의 일부로 포함된다. 지역열차는 RE/RB/S의 구분과 무관하게 철저히 수요에 따라 객차가 결정된다. 즉, 이용자가 많은 구간은 에스반도 대형 열차로 운행되고, 이용자가 적은 구간은 RE도 꼬마 전철을 보는 것 같은 작은 열차로 운행되는 식이다.
내부 좌석은 쿠션감이 없어 딱딱하지만 좁지는 않고 승차감도 준수하다. 먼 거리를 가기에는 힘들 수 있지만 3시간 이내의 거리는 큰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지역열차는 독일철도청에서 운영비 절감을 위해 사설 업체에 운영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해당 업체에서 독자적인 이름을 붙여 운행하기 때문에 열차의 종류가 매우 많다. 하지만 이러한 사설철도는 모두 독일철도청의 요금체계에 포함된다. 즉, 지역열차와 요금이 같으므로 사설철도에 대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유럽의 일부 국가나 일본 등 국철과 사철이 병행 운행하는 경우 각각의 요금체계가 달라 골치 아프게 만들곤 하는데, 독일은 모든 종류의 사설철도를 지역열차에 포함하여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혹시 열차를 검색할 때 앞서 언급한 ICE/IC/EC/RE/RB/S 외에 다른 코드가 나오면 십중팔구 사설철도로서 지역열차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지역열차는 고속열차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뿐만 아니라 랜더티켓(Länder-Tticket)이라는 매력적인 상품이 있어 비용 부담을 더 줄여준다. 랜더티켓은 한 주(州) 내에서 운행하는 모든 지역열차를 하루종일(평일 9시부터, 주말 및 휴일 0시부터 24시까지) 탑승할 수 있는 정액권이다. 가령, 바이에른 티켓(Bayern Ticket)은 뮌헨이 위치한 바이에른 주의 모든 지역열차에 유효하다. 요금은 1인 23 유로, 이후 1인 추가될 때마다 5 유로씩 인상된다. 만약 일행이 2인이라면 28 유로(1인당 14 유로)로 하루종일 열차를 탈 수 있으니 매우 저렴하다.
바이에른 티켓과 같은 랜더티켓이 총 10 종류가 있으며, 이 중 니더작센 티켓(Niedersachsen Ticket), 작센 티켓(Sachsen Ticket), 바덴뷔르템베르크 티켓(Baden-Württemberg Ticket)의 활용도가 특히 높다. 가격은 바이에른 티켓과 비슷하다. 이러한 지역열차 정액권은 일찍 구매한다고 할인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당일 기차역의 티켓판매기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3. 기차 여행의 동반자 - 독일 철도패스
매번 티켓을 구매하고 미리 알아보는 것이 번거롭거나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독일 철도패스(German Rail Pass; GRP) 하나로 모든 고민이 해결된다. 독일 철도패스는 열차 자유이용권이다. 야간열차 등 특수열차를 제외한 독일의 모든 열차를 철도패스 하나로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철도패스는 개시일 이후 내가 기차에 탑승할 날을 지정하여 이용하는 선택사용권(GRP Flexi), 개시일로부터 만료일까지 이용하는 연속사용권(GRP Consecutive)으로 나뉘고, 선택사용권은 3/4/5/7/10일권 다섯 종류, 연속사용권은 5/7/10/15일권 네 종류로 나뉜다. 여기에 다시 1등석과 2등석용, 1인권과 2인권(트윈)으로 나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철도패스도 종류가 많아 복잡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냥 간단히 내가 기차를 탈 날이 며칠인가를 따져서 그에 맞는 패스를 구매하면 된다. 매일 기차를 탄다면 연속사용권, 매일 기차를 타는 건 아니라면 선택사용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구분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2등석도 충분히 편리하므로 2등석을 기본으로 놓고 생각하자.
패스는 실물 티켓으로 발권된다. 따라서 우편으로 배송받아야 하니 국내 여행사에서 구매하는 것이 적당하다. 현지 기차역에서도 동일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나에게 맞는 패스 종류를 선택하여 주문하는 절차를 고려했을 때 의사소통이 통하는 국내에서 미리 구입해 안전하게 배송 받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고 본다. 유수의 여행사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가격 차이는 거의 없다.
4. 기차역 활용
독일에서 기차는 모든 교통의 중심이다. 당연히 기차역 또한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된다. 특히 큰 도시 기차역은 그 자체가 거대한 쇼핑몰이자 편의공간이 되기도 한다. 기차역을 잘 활용하면 여행도 더욱 편리해진다.
가장 빈번히 마주하게 될 시설은 티켓 판매기다. 독일 전국에서 똑같은 티켓 판매기를 사용하기에 어디를 가든 이용방법이 똑같다는 것이 장점. 특히 사람 한 명 만나기 힘든 시골 간이역에도 티켓 판매기는 존재한다.
티켓 판매기는 단지 티켓을 구입하는 용도가 전부가 아니다. 내가 탑승할 열차의 스케줄을 조회하고 연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환승 시 플랫폼 번호 등 자세한 내용을 미리 알아둘 수 있으며, 이러한 스케줄표를 출력할 수도 있다. 필자는 기차를 탈 때 항상 티켓 판매기에서 스케줄표를 출력해 지참한다. 몇 시에 목적지에 도착할지, 몇 번 플랫폼으로 환승해야 하는지, 그런 중요한 내용이 모두 인쇄되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물론 스케줄표 출력은 완전 무료.
모르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찾아가자. 중간 규모 이상의 기차역에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하나 이상씩 갖추어져 있으며, 직원은 대개 영어를 구사하므로 의사소통은 불편하지 않다. 기차가 연착되거나 캔슬될 때, 어떤 티켓을 구매해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 화장실 등 기차역의 시설을 이용하고자 위치를 물어볼 때, 그 외 기차에 대한 어떤 질문도 친절하게 답해줄 것이다.
'여행 센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라이제첸트룸(ReiseZentrum)은 기차를 타고 여행할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민원실이다. 역시 중간 규모 이상의 기차역에 라이제첸트룸이 있으며, 환불 등 독일 기차와 관련된 각종 민원을 처리하거나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만약 티켓 판매기 사용이 어려우면 라이제첸트룸에서 직원에게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단, 이 경우 소정의 수수료가 추가로 든다는 것은 주의할 것. 독일 철도패스(또는 유레일패스)의 구입 및 개시도 라이제첸트룸에서 처리한다.
짐 보관소도 기차역마다 있다. 아주 작은 시골 간이역이 아닌 이상 작은 규모의 기차역에도 코인락커는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큰 기차역은 코인락커 외에도 보관 사무실에 유료로 짐을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 코인락커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종류별로 있기 때문에 큰 캐리어도 얼마든지 편리한 수납이 가능하다. 위 사진은 일부러 작은 기차역의 모습을 골랐다. 최소한 어디를 가든 이 정도는 갖추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큰 기차역은 수백 개의 코인락커가 비치되어 있다.
다양한 먹거리의 향연도 빼놓을 수 없다. 카페, 빵집 등 가벼운 먹거리를 파는 곳이 많고, 패스트푸드나 아시아 임비스 등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날 수 있는 요깃거리도 많다. 그리고 부어스트 등 '독일다운' 먹거리도 눈에 띌 것이다. 가벼운 간식거리와 음료를 들고 기차에 타서 먹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트렌드에 발 맞추어 기차역에서 와이파이 핫스폿도 제공한다. 큰 기차역 대부분, 중간 규모 기차역 일부에 있으며, 기차역 전체를 커버하지는 못하지만 핫스폿이 제공되는 장소에 따로 표시를 해두고 있다. 무료 이용시간은 30분. 기차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정도의 용로도 적당하다. 또한 기차역에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면 그 내부에서도 와이파이가 손님에게 개방되어 있으니 커피나 콜라 한 잔을 시켜놓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5. 기차 속 풍경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 독일에서 기차 여행이 좋은 이유는 단지 편리하고 인프라가 훌륭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다양한 모습을 만나며 그것이 또 하나의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만나게 될 사람은 열차 차장이다. 독일철도청 제복을 갖춰입은 차장이 기차를 돌아다니며 표를 확인하고 승객을 관리한다. 깐깐하게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있고, 귀찮은듯 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인사하는 말투와 검표 도장을 찍어주는 몸짓도 저마다 제각각. 개인적으로 벌써 10년 가까이 독일 열차를 이용하지만 갈수록 친절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보수적인 독일철도청도 점차 고객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인은 반려견을 인생의 동반자로 아끼고 사랑한다. 당연히 반려견도 기차에 탈 수 있다. 독일에서 반려견을 키우려면 강도 높은 훈련을 이수해야 하므로 혹 개가 덤비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의 발밑에 얌전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리는 천진한 모습을 보게 될 테니. 참고로 반려견이 기차에 오르려면 티켓도 따로 구입해야 된다. 엄연히 '돈 내고 탑승한' 고객이라는 사실!
만화 같은 그림을 그려놓고 알록달록한 알파벳을 좌석 시트에 그린 RE 열차의 어린이 좌석. 독일철도청은 가족의 여행을 적극 장려한다. 부모가 아이를 동반할 때 아이의 요금은 무료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시도를 계속 추가하고 있는데, 위 사진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좌석을 따로 제작하기도 하고, ICE 열차에는 아이용 놀이방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푹신한 바닥와 장난감 등을 비치해둔 별실에서 안전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설열차인 ME의 좌석 테이블에 체스판을 그려두었다. 체스 말은 직접 가지고 와도 되고 열차 내 자판기에서 구입해도 된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일행끼리 시간을 보낼 게임의 장을 마련해둔 것이다. 참 별 것 아닌 아이디어인데 센스가 여간 아니라 인상적이었다.
모든 ICE 열차에 전원 콘센트도 제공된다. 지역열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거의 전원이 없었으나 최근 전원 콘센트를 제공하는 열차가 조금씩 늘고 있다. 열차를 타고가는 도중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 단, ICE는 와이파이가 제공되지만 유료이고, 지역열차는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시로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울창한 숲, 넓은 초원, 한가로운 시골 마을 등 마음을 이완시키는 풍경이 계속 펼쳐진다. 석양이 질 때 하늘에 노을이 걸리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 풍경이 시선을 즐겁게 한다. 비가 내린 직후에는 무지개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열차 이용 중 스마트폰을 하거나 잠을 자는 것은 억지로 참는다. 언제 무슨 풍경이 스쳐 지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창밖을 쳐다보곤 한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기에 미처 카메라에 담지 못한 풍경이 훨씬 많다.
일부 사설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 내에서 음주도 허용된다. 독일의 맥주를 곁들여 열차 안팎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독일 기차 여행의 완성이다. 마치 내가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여행정보 > 추천 여행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개혁 500주년 (1) (0) | 2016.12.31 |
---|---|
<프렌즈 독일>이 추천하는 독일 관광지 Top 15 (0) | 2016.12.20 |
독일여행책에 관심있는 네티즌이 선택한 여행지 (0) | 2016.06.01 |
맥주순수령 500주년 축제 (0) | 2016.04.26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추천 코스 (0) | 201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