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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MBC에브리원 <고민말고 GO> #4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


MBC에브리원에서 방영한 독일여행 프로그램 <고민말고 GO>의 4화이자 마지막화 리뷰입니다. 마지막화는 통채로 베를린 여행에 할애됩니다.

프로그램이 촬영된 12월 초의 칙칙한 날씨는 "회색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베를린과 잘 어울립니다. 당시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일 시기였겠지만 이미 크리스마스를 보여주기엔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보니 비 내리는 겨울 날씨만 실컷 보여주는데요. 베를린은 베를린 장벽으로 대표되는 가슴아픈 현대사의 무대이기 때문에 이런 풍경도 잘 어울려요.

그 유명한 베를린의 나이트클럽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오로지 클럽을 가려고 베를린에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30%가 넘을 정도로 베를린의 클럽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죠. 특히 동유럽 청년들에게는 "나 베를린 다녀왔어"라고 하면 "클럽도 가봤겠네"라는 말이 세트로 연결될 정도로 "베를린=클럽"이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그런데 베를린의 클럽이 왜 유명한가. 이 방송은 그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엄지 척.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단의 현실은 반전주의는 물론 무정부주의까지 잉태합니다. 냉전의 최전선 베를린이야말로 그런 무정부주의 반전주의자 히피들의 천국이었죠. 거기서부터 베를린 클럽 문화의 뿌리가 시작되고, 통일 후 사회주의가 붕괴되자 그동안 자유를 억압받았던 동베를린의 청년들까지 가세해 무절제할 정도로 진탕 놀기 시작하던 것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예능프로에서 다 이야기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되고, 분단과 통일이 클럽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대목을 꼼꼼히 알려줍니다.

유명한 클럽 몇 곳을 소개해주고, 출연진이 직접 들어가 퇴짜도 맞아보고 새벽까지 놀기도 합니다. 그런데 클럽은 내부 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방송에 그 내부 분위기까지 소개되지 못했기 때문에 "폐공장이 클럽이 되었다"는 식의 흥미 위주의 이야기만 소개될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본격적으로 시작된 베를린 여행.

첫 코스는 베를린 장벽입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그리고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나왔습니다. 분단은 독일의 과거이기도 하고, 지금 한국의 현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한국인에게도 남 일 같지 않은 감정을 선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는 진지한 주제를 벗어나 재미난 모습도 보여주려는지 침대 투어를 시작합니다. 저는 베를린에 여러 번 갔지만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유명한 시티투어는 아닌 것 같고, 오히려 행인들이 신기해서 쳐다보는 걸 보면 흔하지 않은 경험인 것 같은데, 이런 걸 용케 찾아낸 게 더 신기합니다. 살짝 스쳐간 업체명을 기억했다가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는데, 2인 요금 기본(1시간) 55유로, 이후 30분마다 20유로씩 추가된다고 하네요. 방송에 나온 코스라면 족히 100유로는 넘을 테니 부담없이 할만한 건 아닙니다. 물론 이런 침대를 끌고 페달질해야 하는 가이드의 수고를 생각하면 비싸다고 타박하기는 어렵겠네요.

그렇게 베를린의 관광명소들이 자막에서 표기 오류가 몇 곳 보이기는 했지만 약간의 설명과 함께 스쳐지나갑니다. 여행지를 소개한다기보다는 출연진 김지석씨가 21년 전에 독일 여행 중 찍은 사진 속의 장소를 찾아가는 컨셉이 주가 되었는데, 21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유럽여행이 주는 매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수백년의 시간과 전통을 존중하는 걸 기본으로 깔고 있는 나라들이니까요.

그렇게 침대투어는 돌고 돌아 포츠담 광장의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지나 통일정 앞에서 끝납니다. 통일정 앞에 철장 펜스를 쳐두어서 보기 흉했는데 화면 상에는 펜스가 치워졌네요. 훨씬 보기 좋습니다.

마지막화의 화두는 분단과 통일입니다. 독일은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친구에게 재미있는 모습을 소개해준다며 데리고 간 여행이었죠. 재미없는 역사 이야기 같지만, 이처럼 현대사의 현장을 직접 보는 것도 직접 경험해보면 돈 주고 살 수 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분단과 통일의 현장은 전세계에서 베를린만한 곳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로 갈수록 "굳이 통일을 해야 되나?"는 의문을 많이 갖는 것으로 압니다. 평화통일이니 적화통일이니 연방제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통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랄까요. 당연합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뭐가 좋은데?"라는 질문에 대해 학교나 사회에서 제대로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베를린을 꼭 보라고 권합니다. 베를린 장벽과 무수한 현대사의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꼭 보라고 권합니다. "통일이 되면 이렇게 되겠구나"라는 살아있는 증거가 거기 있습니다. 그 증거를 직접 보고, 보이는 것을 통해 직접 느끼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여 다시 생각해보세요. 학교나 사회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니 직접 보고 직접 생각하면 되죠. 그러면 사고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런 걸 전문용어로 "견문을 넓힌다"고 표현합니다. 베를린은 당신의 견문을 넓혀줍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재미를 알게 해줍니다.


제작진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부디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고 기원했지만 아쉽게도 우려대로 날씨는 쭉 나빴던 모양이지만, 독일의 여러 모습을 꼼꼼히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생각합니다. 독일을 잘 모르는 분들이 독일여행을 가기 전에 한 번 보아두면 도움이 될만한 부분이 꽤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