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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03. 호프브로이 1호점과 2호점

생맥주집을 호프집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왜? 대체 호프가 맥주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맥주의 원료인 홉(Hop)을 그렇게 적은 걸까요? 아닙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호프집은 독일어 호프(Hof)가 어원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Hof는 독일어로 "안뜰" 정도를 뜻합니다. 그리고 다른 뜻으로는 "왕실"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고유명사에 Hof가 들어가면 주로 후자의 경우입니다. 가령 Hofkirche는 왕실의 교회, Hofgarten은 왕궁의 정원, 그런 식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Hof는 맥주와 상관이 없는 단어에요. 그런데, 대체, 왜! 우리는 호프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누가 만든 단어인지 공식적으로 기록이 남지 않아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뮌헨의 호프브로이 하우스(Hofbräuhaus)가 그 어원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Hof가 들어가면 왕실과 관련 있다고 했죠. 호프브로이는 왕실 소유 양조(bräu) 집(Haus), 즉 왕실 양조장이라는 뜻입니다. 왕실에서 마시는 맥주를 양조하는 곳으로 1589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일반인도 호프브로이 하우스의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1828년. 당시 바이에른의 국왕인 루트비히 1세는 호프브로이 하우스를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 맥주 가격까지 낮췄습니다. 왕이 마시던 맥주를 나도 마실 수 있다는데 심지어 가격까지 착하다네요. 너도나도 마셔보겠죠. 뮌헨에 맛있고 유명한 맥주집은 차고 넘치지만 호프브로이 하우스가 가장 유명해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독 지역에 연합군이 주둔합니다. 뮌헨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은 호프브로이 하우스 맥주의 맛에 반했습니다. HB 로고가 인쇄된 머그잔 등을 본국으로 가지고 가서 기념품으로 줍니다. 서유럽을 넘어 미국에까지 호프브로이가 유명해졌죠. 맛있는 생맥주 하면 호프브로이라는 공식이 성립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문화가 고스란히 전수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브로이를 건너뛰고, 호프와 하우스, 즉 호프집이라는 단어로 언어생활에 자리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생맥주 파는 집을 호프집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저의 추정이 한 스푼 들어가 있지만, 전문가가 말하는 이유의 큰 틀이 이러합니다.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독일에서도 뮌헨과 바이에른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호프 문화"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합석을 전제로 세팅된 테이블에 빈 자리만 보이면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킵니다. 모르는 사람과도 건배하고 떠들게 되죠. 물론 맛있는 음식도 팝니다. 그러나 엄연히 이곳의 주인공은 맥주입니다.

관광객도 많이 찾으니 기념품숍까지 차렸습니다. 호프브로이 로고가 새겨진 갖가지 기념품은 뮌헨 여행의 좋은 기념품이 됩니다. 이런 HB 로고가 박힌 기념품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에 알려지고 한국에서는 호프집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면, 뻔한 기념품도 좀 더 특별해 보입니다.

독일을 여행한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저도 그 유명세를 따라 호프브로이 하우스를 드나들곤 했습니다. 아, 그런데 정말 시끄러워요. 저는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거든요. 혼이 빠질 정도로 시끄럽고 정신 없어서 내가 맥주를 마셨는지 뭘 마셨는지도 모르고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죠.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왜 분점이 없을까요? 강남에서 장사가 잘 되면 홍대점 이태원점 압구정점 목동점 잠실점 신촌점 일산점 분당점 해운대점까지 다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보면, 호프브로이 하우스 정도의 세계적인 유명세라면 뮌헨에만 지점이 10개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뮌헨에 호프브로이 하우스의 분점은 딱 하나입니다. 말하자면 2호점인 셈이네요. 그것도 현대에 들어 영리한 장사속이 나은 분점이 아닙니다.

호프브로이 하우스가 일반인도 출입할 수 있게 된 이후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서 혼잡이 극심했습니다. 이에 바이에른 정부는 시 외곽에 또 하나의 호프브로이 비어홀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2호점 호프브로이 켈러(Hofbräukeller)는 1896년부터 존재했으니 적어도 20세기 이후 새로 생긴 분점은 없는 셈입니다. (물론 다른 도시 또는 다른 나라에 몇 개의 지점을 만들기는 했습니다만)


관광객까지 몰려 혼잡한 호프브로이 하우스와 달리 호프브로이 켈러는 조용하더군요. 9시가 넘어 조금 늦은 시간대에 가기는 했지만, 그 시간대에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빈 자리도 없을 정도로 혼잡합니다. 호프브로이 켈러는 현지인들이 도란도란 대화하는 아늑한 분위기까지 느껴지더군요.


역사적으로는 창피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뮌헨을 거점으로 정치를 시작한 아돌프 히틀러는 종종 비어홀에서 연설을 하며 사람들을 선동했는데, 히틀러가 1919년 처음으로 정치 연설을 시작한 비어홀이 바로 호프브로이 켈러였다고 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아늑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맥주는 참 맛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호점보다 2호점을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