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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31. 베를린이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법

독일 수도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관(Holocaust-Mahnmal)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입니다. 마치 비석이나 석관을 연상케하는 2,711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넓은 부지를 빼곡하게 매우고 있습니다.

베를린 여행 중 이곳을 찾아가는 건 매우 쉽습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도보 5분 거리이며, 바로 옆에는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포츠담 광장도 있으니까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포츠담 광장까지 걸어서 가다보면 누구나 이곳을 지나치게 됩니다.

포츠담 광장의 한 전망대에 올랐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중앙부에 주차장 같기도 한 공터가 보이는데, 여기가 홀로코스트 추모관입니다. 이렇게 시내 한복판의 넓은 부지에 추모관을 만들어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된 말을 해보죠. 여기 땅값이 매우 비싸겠죠. 여기에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를 지었다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땅을 이렇게 추모의 목적으로 활용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뜻 아닐까요?

일부 석관은 매우 낮게 설계되어 걸터앉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지만 말고, 여기 앉아서 서로 토론을 해보라는 설계자의 의도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가슴아픈 과거를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당연히 추모의 자리에 찾아오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혐오시설"이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우려된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금싸라기땅에 추모 시설을 만든 이유가 뭘까요? 번화가에 만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에서 희미해지더라도 이런 시설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고, 사건을 직접 겪지 않은 미래 세대도 이런 시설을 눈으로 보면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배울 수 있는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전시행정을 하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결과물인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추모관 외에도 이와 유사한 장소가 베를린에 아주 많습니다.

연방의회 의사당 옆 강변에 하얀 십자가(Weiße Kreuze)라는 이름의 기념물이 있습니다. 분단 시절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다 숨진 이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을 추모하는 장소입니다. 유명 관광지 옆이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고, 베를린의 유람선도 이 앞을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일부러 기념물을 설치한 거죠.

역시 유명 관광지이자 번화가인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주변의 거리에는 이와 같은 사진 갤러리가 있습니다. 동서 분단을 포함한 냉전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들과 분쟁에 대해 자료사진과 함께 상세한 내용을 적어두고 있습니다. 번화가를 오가며 계속 마주치게 되겠죠. 반복학습을 통해 사람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이제 냉전 시대는 끝났다고들 하는데, 다 끝난 과거의 일을 이렇게 집요하게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오늘 4월 16일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게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추모하는 시설을 건립하는 데 있어 쓸데없는 논란이 벌어지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원지에 추모시설을 만드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 유원지에 들어서 "아이들"도 그것을 볼 텐데 나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웃기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아이들"도 그것을 봐야 됩니다. 그래야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더 잘 보이는 곳,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설치하는 게 옳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단순한 대형사고를 넘어서, 이 나라에 재난구호 체계가 엉망진창이었음을 고발당한 상징적인 사건이고, 언론과 정치인이 진실을 은폐하며 희생자의 가슴에 대못을 두번 열번 백번 천번 박은 야만적인 사건이며, 자식 잃은 부모를 폭도 취급하면서 인격살인까지 저지른 반인륜적인 사건입니다. 국민을 우습게 여긴 권력자가 결국 국민의 손으로 쫓겨난다는 걸 보여준 혁명적인 사건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기억하려면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곳, 사람이 많이 지나다는 곳,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며 교육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이 그 장소가 되는 게 마땅합니다. 그게 집값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를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