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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54. 뮌헨의 중국 탑, 현지화의 좋은 예

뮌헨의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입니다. 도시에 있는 시민 공원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인데요. 영국 정원의 스토리도 참 다양하게 있으니 우선 여기서는 생략하고,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인 중국 탑(Chinesischer Turm)을 호출하겠습니다.

공원의 울창한 숲 한복판에 있는 중국 탑은 18세기 후반 영국 정원이 조성될 때 함께 세워졌습니다. 중국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닙니다. 중국풍의 탑(파고다)을 짓고 이름을 중국 탑이라 붙였습니다.


영국 정원은 그 이름 그대로 영국풍의 정원을 벤치마킹해 만들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계몽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죠. 영국에서는 이런 시민 공원을 만들 때 이국적인 설치물을 함께 만들곤 했습니다. 멀리서 이국적인 것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명상하라는 의도였죠. 아래에서부터의 각성을 전제로 하는 계몽주의적 발상에 어울립니다.


그래서 영국 정원에도 중국 풍의 탑을 만들었습니다. 공식에 충실한 거죠. 25m 높이의 거대한 탑을 만들었으니 울창한 숲 속이라 해도 잘 보이겠죠. 정원에서 산책하거나 쉬면서 이런 이국적인 것을 느껴보고 생각해보라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독일이 어떤 나라입니까? 아니, 당시 바이에른이 어떤 나라입니까? 맥주에 죽고 사는 민족입니다. 이 좋은 풍경을 앞에 두고 멍하게 생각만 할 리가 없죠. 맥주를 마십니다. 자연스럽게 맥주를 팝니다. 중국 탑은 어느새 거대한 비어가르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중국 탑은 뮌헨의 유명 비어가르텐 중 하나입니다. 무려 7천석 규모. 7천명이 동시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멀리서 이국적인 탑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게 아니라, 탑에서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놉니다.


계몽주의에 입각한 영국식 정원을 만들고 공식에 충실했지만 뮌헨 시민들은 공식을 뒤집고는 자기들의 공식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수 세기에 걸쳐 그 공식을 이어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되었지만 시민의 모금으로 다시 되살리고 시민들은 그 아래에서 또 맥주를 마십니다.


영국의 정신과 중국의 스타일이 만났지만 결국 독일의 라이프스타일이 그것을 뒤덮었습니다. 로컬라이징! 현지화의 좋은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