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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75. 잃어버린 땅 쾨니히스베르크

독일의 철학자 칸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에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일생에 딱 두 번만 빼먹었대요. 마을 사람들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을 알 수 있었죠. 칸트는 고향에서 쭉 살다가 죽었고, 반경 30km 밖으로 나가본 적이 아예 없었다고 합니다.

칸트의 고향, 그가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던 곳, 여기가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입니다. 그런데 지금 독일 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쾨니히스베르크라는 곳이 없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세계지도에서 발트 3국 주변을 보면 나라명이 안 적힌 곳이 있습니다. 여기는 러시아 땅입니다. 러시아 본토와 완전히 떨어져 고립된 월경지입니다. 이 지역의 중심지라 할 수 있을 칼리닌그라드의 옛 이름이 바로 쾨니히스베르크입니다. 지금은 독일 땅이 아니니까 아무리 지도를 뒤져도 쾨니히스베르크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해체 후 독일 통일 주도한, 사실상 독일의 뼈대나 마찬가지인 프로이센의 발상지가 바로 쾨니히스베르크입니다. 이 변두리에서 태동한 프로이센은 점점 힘을 키우며 신성로마제국의 중심부로 세를 넓혔고, 지금의 베를린 지역에 있던 브란덴부르크 공국과 합치게 됩니다. 그래서 프로이센의 수도가 베를린이 된 것이지만, 프로이센의 원래 수도이자 뿌리는 쾨니히스베르크이구요. 이후 이 지역은 동프로이센이라는 지명으로 독일의 영토에 속했고, 그 주도가 쾨니히스베르크였습니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폴란드 등 점령지를 다 잃은 뒤에도 동프로이센은 독일의 영토였습니다. 대신 독일과 떨어진 월경지가 되었죠. 이게 문제였습니다. 독일은 자신의 영토인 동프로이센과의 연결을 이유로 폴란드 회랑의 영유권을 요구합니다. 폴란드는 당연히 거부했고,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은 동프로이센까지 잃게 됩니다. 동프로이센의 남쪽은 폴란드 영토가 되었고, 북쪽은 소련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소련은 쾨니히스베르크의 이름을 칼리닌그라드로 바꿨습니다. 지금 보면 러시아와 영토와 분리된 월경지이지만, 당시는 발트3국이 모두 소련에 속했으니 전체가 연결된 영토였습니다. 단, 소련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칼리닌그라드를 "폐쇄 도시(외부와 출입할 수 없는 고립된 도시)"로 지정합니다. 소련이 붕괴된 뒤 칼리닌그라드 지역은 러시아에 속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을 접수한 소련은 여기 거주하던 독일인을 모두 추방했습니다. 한때 인구 40만명 가까이 되었던 번성한 도시였으나 전쟁 후에는 인구 5만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구요. 연합군의 폭격이 심해 동프로이센 시절 건축된 수많은 아름다운 유산은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칼리닌그라드는 프로이센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대성당 정도를 제외하면 독일의 일부였던 모습은 다 사라졌죠. 그나마 그 대성당은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Königsberger Dom)이라 부르고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비슷한 역사를 가진 폴란드 그단스크(독일명 단치히)가 독일 분위기의 모습이 아직 그대로 보존된 것과 정반대입니다.


독일을 주도한 프로이센의 입장에서 쾨니히스베르크는 자신들의 뿌리이며 고향입니다. 얼마나 각별히 공을 들였을 것이며, 독일이 번영했던 그 시절에 쾨니히스베르크도 얼마나 크게 발전했겠습니까. 그 모습이 다 사라지고 그 영토도 빼앗긴 지금,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에게는 잃어버린 땅이나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