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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00. 가이드북이 필요한 이유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식당에 가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후기를 찾아봤습니다. 여기는 피자가 맛있다네요. 다른 후기를 찾아보니 또 피자 얘기를 하네요. 그러면 저도 망설임 없이 피자를 주문하겠죠. 실제로 맛이 있네요. 저도 후기를 남깁니다. 여기는 피자 맛집이라고. 그러면 그 후기를 본 또 다른 사람도 피자를 먹겠죠. 어쩌면 이 식당은 피자보다 리소토가 죽여주는 곳일지도 모르는데, 다수의 경험에 기반을 둔 인터넷상의 정보에서는 피자 맛집으로 그냥 규정이 되어 버립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입니다. 피자 맛집에서 다른 음식을 주문했다가 설령 맛이 없다 해도 1~2만원의 손실만 발생하니까 "모험"을 해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 "모험가"들이 파스타도 평가하고 리조또도 평가하고 샐러드도 평가할 테니 다양한 정보들이 존재할 테니까요. 피자만 거론되어 모든 사람이 피자를 먹게 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발생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여행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모험"을 해봤다가 그 선택이 틀렸으면 수십 수백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여행후기를 찾아보고, 사람들이 방문하고 사진찍은 명소를 똑같이 찾아가고, 사람들이 맛집이라 이야기하는 곳에서 똑같은 것을 먹게 됩니다. 그런 후기가 모이고 모이면, 인터넷상에 정보의 양은 굉장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 비슷비슷한 정보만 모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인터넷으로 여행정보를 찾기 참 쉬운 세상입니다. 당장 이렇게 이야기하는 저도 이 블로그에 굉장히 많은 정보를 올려두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인터넷상의 정보는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른데,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경험이 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만족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옵션이 수없이 있었음을 모르고 넘어가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가이드북의 역할은 이것입니다. 가이드북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관점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그저 모든 정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쓸어담습니다. 그리고 역사나 문화 등 정보를 편집할 기준을 찾아 일관된 기준으로 가공하고 하나의 책에 다 펼쳐놓습니다.


독자는 가이드북을 통해 여행지의 모든 정보를 알게 됩니다. 서두에 피자 맛집 식당에 대한 비유를 했는데요. 가이드북은 마치 그 식당의 모든 메뉴와 재료, 가성비를 정리한 것과 같습니다. 그걸 다 따져도 결과적으로 피자를 먹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피자 외의 다른 옵션을 다 알고서도 내가 먹고 싶어서 피자를 먹는 것과, 다른 사람이 피자가 맛있다고 하니까 피자를 먹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말하자면, 가이드북의 정보와 인터넷상의 정보들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물론 가이드북에는 큰 단점이자 한계가 존재합니다. 인쇄된 매체이기 때문에 정보의 변경을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틀린 정보가 수록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본질을 알고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가이드북만한 존재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일단 가이드북을 토대로 계획의 틀을 잡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인터넷에 더 의존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훨씬 더 알찬 여행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더라도 먼저 가이드북으로 큰 그림을 잡은 뒤 그 디테일을 보완할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는 것과, 아무런 배경 없이 처음부터 막연하게 인터넷에서 찾는 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여행 가이드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서비스도 여럿 생겼습니다. 그러면 가이드북을 돈 주고 살 필요 없이 그런 공짜 서비스로 정보를 얻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당연히 좋은 서비스라면 가이드북 이상의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공짜냐 아니냐가 중요한 건 아니죠. 그 좋은 서비스를 고르는 기준을 하나 말씀드릴게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정보는 크게 신뢰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서비스라 해도 그 정보를 누가 취재하고 정리했는지 나와있다면 일단 신뢰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누가 취재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면, 그 정보는 인터넷으로 취합된 정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는 시중에 나온 책을 베껴 적었을 수도 있겠네요(제가 쓴 책을 도에 넘치게 가져다 쓴 서비스를 보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서비스 제공자는 그 나라에 가보지도 않았을 수 있고, 그럴거면 내가 직접 검색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겁니다.


가이드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없는 책도 있어요. 이런 경우 대개 저자 이름에 편집부라고 적힙니다. 그건 출판사 편집부 직원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서 만들었다(또는 수정했다)는 의미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당장 저도 아무 도시나 정해서 가이드북을 만들라 하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안 가본 도시여도 인터넷으로 정보 찾고 사진을 구하거나 구입하면, 한 권의 그럴싸한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게 돈도 훨씬 덜 들어요. 출판사에서도 만들려면 직원 몇이 손품을 들여 그런 책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책은 겉으로 포장을 잘해도 결국 읽고나면 알맹이가 없다는 게 바로 티가 납니다.


여행 대상지를 직접 취재하고 공부한 저자가 있고, 직접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걸어본 뒤에 정보를 검증하고 편집한 책이어야 합니다. 물론 저자가 자질 미달일 수도 있죠. 하지만 요즘처럼 출판 시장이 불황일 때에는 출판사가 아무 저자에게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기존부터 관계가 있는 검증된 기성 작가, 현지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있는 신인 작가 아니면 명함도 내기 힘듭니다. 책이 출간되었다는 자체가 저자의 자질에 대한 검증은 거쳤다고 보셔도 되는 겁니다.

저는 취재를 떠나면 다리가 고장날 때까지 걷습니다. 최근에 공짜로 받은 스마트워치가 있어서 걸음수를 기록하는데 최고 4만 걸음, 평균을 따지니 하루 3만 걸음 되네요. 이것도 최소치로 잡은 겁니다. 저는 이동 중 소매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가방을 손으로 잡은 채 걷는 버릇이 있는데, 시계 찬 손으로 가방을 꽉 잡고 다니니까 흔들림이 감지되지 않아서인지 실제보다 훨씬 적게 잡히더라구요. 분명 1시간 반 분량의 가이드투어를 쉬지 않고 걸어서 나왔는데 제가 걸은 시간이 40분이라고 나왔던 적도 있으니까 실제로는 3만 걸음이 아니라 4~5만 걸음은 될 것 같지만, 증거가 없으니 그냥 3만 걸음이라고 할게요.


성인 남성 보폭이 평균 80cm 정도라 했을 때 3만 걸음이면 24km 정도 되더라구요. 무거운 등짐 지고 매일 20km 이상 행군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미련하게 걸으며 하나하나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그렇게 추린 정보들이 한 권의 책에 담깁니다.


1.5~2만원 정도 하는 책 한 권의 가격이 만만한 건 아닙니다만, 보통 유럽여행을 간다고 하면 최소 몇백만원의 경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총 경비의 1% 미만을 투자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1%도 안 되는 투자로 내 취향에 맞는 계획을 완성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여행을 했다는 만족을 선사하는 것, 그게 우리가 가이드북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 그래서 요즘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고 하니, 독일은 아닙니다. 올해 출간 예정으로 2권의 가이드북을 작업 중에 있습니다. 하나는 도시, 하나는 국가인데요. 두 곳이 어디인지는 아래 사진으로 힌트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