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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11. 한국인이라면,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아래 사진은 교과서나 TV 프로 등으로 참 많이 보았는데, 아마 여러분 모두가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故손기정 선생의 마라톤 금메달 순간이죠. 한국인이 올림픽에서 처음 금메달을 딴 역사적인 순간이고,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출전해야 했던 가슴아픈 순간이고, 그래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가 신문사가 문을 닫는 등 역사적인 스토리가 줄줄 이어지기에 여러분도 모두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 속의 경기장을 직접 가볼 수 있습니다. 뿌연 흑백사진 속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꼭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디인고 하니, 베를린의 올림픽 스타디움(Olympiastadion)입니다.


아니, 일제강점기 시대면 벌써 80년은 족히 되었는데 그 경기장이 아직 있다고? 네, 있습니다. 그것도 역사의 유적으로 어디에 보존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스포츠 경기가 열리며 수만명이 운집합니다.

손기정 금메달 사건을 모르는 분은 없겠지만, 그게 몇년도 어디였는지는 가물가물한 분들도 계시겠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었습니다. 이 때 독일은 나치가 집권하여 국력을 과시하던 시절이었죠.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전세계에 국력을 과시하려고 더 요란하고 성대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그 올림픽의 주경기장 역시 근사해야 마땅했죠. 그 스토리는 나치 독일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에 대한 글에 조금 더 언급되어 있습니다.


서울올림픽의 개폐막식이 열린 잠실 주경기장이 올림픽의 상징적 무대였듯이, 올림픽 스타디움은 베를린 올림픽의 상징적 무대였습니다. 어찌나 튼튼하게 잘 만들었는지 전쟁을 거치고도 경기장은 멀쩡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개보수를 거쳐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에 연고를 둔 분데스리가 축구팀 헤르타 베를린이 여기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중입니다. 덕분에 한 달에 몇 번씩 축구 경기가 열리고 수만명이 발을 구르고 난리를 치지만 80년 넘은 경기장은 아주 멀쩡합니다.

경기나 행사가 없다면 입장권을 구입해 내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 등 온 유럽의 거대한 축구장 모습에 익숙할 텐데요. 요즘 세상에 이렇게 육상 트랙이 있는 경기장에서 1부리그(그것도 수도를 연고로 한) 축구 경기가 열리는 일은 드뭅니다. 다들 축구 전용구장을 만들어 경기하니까요.


하지만 베를린은 이렇게 육상 트랙이 있는 경기장을 사용합니다. 육상 경기가 열렸던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만든 곳이기 때문이고,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는 경기장을 계속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래 보여도 7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하고요.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 결승전이 열린 장소이기도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파란 육상 트랙은 손기정 선생께서 달린 트랙은 아니죠. 그 후에 교체되고 개보수된 거니까요. 하지만 저 자리에서 일장기를 달고 한국인이 달렸다는 사실까지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객석에 앉아 한참을 멍하게 내려다 봤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과거의 이야기를 현실 속에서 추적하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니까요. 감정이 참 미묘하더군요.

잔디를 새로 깔고 트랙도 교체하고 객석도 현대식으로 정비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올림픽 스타디움의 골격은 1936년에 만든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이 별 것 아닌듯 보여도 "나치가 만든 것"이며 "전쟁까지 버틴 82년 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세요. 과연 그런 장소를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전세계에 얼마나 될까요?


축구팬에게는 베를린 축구장에 큰 감흥이 없을지 모릅니다. 헤르타 베를린이 그다지 인기있는 구단은 아니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의 홈구장을 보고 싶다면 뮌헨이나 도르트문트를 가는 분들이 더 많겠고, 독일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나 영국 맨체스터 등 다른 나라를 가는 분들이 더 많겠죠.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손기정 선생의 금메달과 일장기 말소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베를린 축구장을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 제가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을 여러분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금메달을 이야기할 때 늘 "손기정 선수가 2등으로 달라디가 비스마르크 언덕에서 추월에 성공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이 비스마르크 언덕이 어디인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베를린에 그런 지명은 없어요. 전쟁이 끝난 뒤 지명이 바뀌었을 가능성까지 생각해 외국 자료도 찾아봤는데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비스마르크 언덕이라는 지명은 당시 일본인들이 붙인 별명이며 실제 지명은 아니라는 자료까지는 보았습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