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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201. 페터 페히터 이야기

독일 통일 이야기를 하면서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사진도 소개한 김에 이 장소와 연관된 한 명의 인물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름은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 동베를린에 살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놓인 이듬해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결행합니다. 베를린 장벽은 내벽과 외벽의 이중구조로 차단되어 있는데, 내벽은 무사히 월담했지만 외벽을 넘다가 발각되어 그만 총격을 받고 맙니다.


총상을 입고 장벽 너머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지역은 베를린 장벽을 건너기는 했지만 아직 동독의 영토입니다. 피 흘리며 신음하는 그를 서베를린에서는 도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조금만 힘을 쓰면 구할 수는 있었지만 언제 총격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인지라 서베를린에서도 방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베를린 시민은 피 흘리는 동독 청년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신문 기자도 있었기에 이런 사실이 금세 퍼져나갔다고 하네요.


1시간 동안 방치되면서 페터 페히터는 결국 숨을 거두고, 나중에 동독 군인이 와서 시체만 회수해 갔습니다. 총상이 깊어 어차피 숨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을 방관하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게 합리화 되는 건 아니죠. 죽어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기 때문에 더더욱 큰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페터 페히터가 숨을 거둔 자리에는 통일 후 이런 기념비가 설치되었습니다. 여기 위치가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불과 한 블럭 떨어진 대로변입니다. 만약 기념비가 없다면 누구도 이 자리가 그런 비극의 현장이었음을 알 길이 없을만큼 일상적인 거리입니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 공간인데 알고보니 분단 시절에는 이런 비극이 있었던 거죠. 분단 시절에는 이 거리가 이렇게 평온해질 거라 누구도 상상치 못했고, 통일 후에는 과거에 여기서 이런 비극이 있었을 거라 상상치 못합니다. 그래서 통일 문제만큼은 일반적인 상상력의 범주에서 생각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er wollte nur die Freiheit." 직역하면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는 뜻입니다. 불과 18세 나이로 숨을 거둔 한 평범한 청년의 비극이 남의 이야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