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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200.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다.

198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설치되어 냉전의 상징으로 수십년 간 군림했던 베를린 장벽은 단 하룻밤 사이에 시민의 손에 박살났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심지어 동서독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벽의 붕괴가 한 명의 말실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나비효과죠. 이 스토리만 해도 너무 방대한 관계로 우선 이 글에는 부연하지 않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곧바로 통일이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이 날로부터 거의 11개월이 지난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통일이 선포되고 독일은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약 1년 동안 무얼 했는고 하니, 제도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동서독이 서로 제도를 정비하고 통일 국가의 틀을 합의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년이면 꽤 긴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독일 통일 직후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이로 인한 통일비용의 지출, 이로 인해 서독 경제가 어려워지고 독일이 휘청거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실 독일도 이런 일은 처음이잖아요. 뭘 준비해야 되는지, 어느 선까지 준비해야 되는지, 종잡을 수 없었겠죠. 이만하면 됐겠지 싶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냥 당연히 통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교육 받은 세대입니다.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죠. 통일을 하자고 하면 "통일해서 뭐가 좋은데?"라는 질문을 합니다. 좋은 게 없는데, 나빠질 것 같은데, 그러면 통일하지 말자고 이야기하죠.


저도 한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감상적인 접근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통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풍부하므로, 통일비용을 투자금이라 생각하고 투자금 이상의 이익을 보면 통일은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결국 통일하고 10~15년 정도가 지난 뒤부터 그 열매를 수확했습니다. 서독이 막대한 통일비용을 지불해 휘청거렸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남을 정도의 통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누리는 중입니다.


독일은 "통일"이라는 길을 개척했죠. 참고할 표본도, 연구도, 전문가도 없는 상태에서 길을 개척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독일이라는 참고할 표본이 있죠. 독일을 연구한 전문가도 있구요. 그것을 참고하여 남북이 지혜를 모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시행착오를 줄인다 함은, 통일비용을 덜 투자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며, 독일처럼 10~15년 걸리지 않고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통일과 관련하여 독일의 긍정적인 사례를 이야기하면 "독일과 우리가 상황이 같냐" "동독과 북한이 상황이 같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네,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의 성공만 참고하는 게 아니라 실패도 참고하여 우리만의 길을 찾으면 됩니다. 독일이 거의 1년 머리를 맞대고 통일을 준비했지만 준비가 부족했는데, 우리는 1년이 아니라 5년 10년 준비한다 생각해도 되겠죠. 당장 한 나라로 합치기보다는 사람과 자본의 왕래가 자유로운 두 나라로 느슨하게 연합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겠죠.


남북의 경제격차가 너무 커서 통일비용도 서독보다 더 많이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경제격차를 일단 줄여놓고 그 다음에 통일하면 되는 거잖아요. 방법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방법을 찾자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예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면 다른 속내가 있다고 볼 수밖에요.

지금은 통일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죠. 그래서 베를린에 꼭 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때 정말로 총구를 겨누고 사람도 죽이던 분단의 현장입니다. 그게 100년 200년 전 일도 아니고 불과 30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통일이 되고 난 지금, 여기가 진짜 분단되었었는지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활기차고 자유롭습니다. 불과 30년 전에 총구를 겨눈 현장이라는 게 오히려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절대 허물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흉물스러운 장벽이 불과 하룻밤만에 무너졌습니다. 절대 넘어갈 수 없었던 선을 마구 넘어가도 됩니다. 만약 지금도 이 선이 막혀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베를린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독일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통일이 되었을 때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경험해본 적 없잖아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게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는 있습니다. 독일에서요. 베를린에서요.


베를린에 꼭 가보세요. 그리고 일단 보고 느껴보세요. 이 도시가 둘로 나뉘었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시절도 상상해가며 비교해보세요. 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세요. 적어도 통일하면 뭐가 좋은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