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은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입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벌인 인종 대학살을 뜻하죠. 우리는 홀로코스트 하면 흔히 유대인 학살을 먼저 떠올리지만 체코나 폴란드 등 동유럽에 거주하던 슬라브인, 동성애자, 집시, 장애인 등 그 피해자는 범주를 가리지 않습니다.
학살당한 대부분은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죄수"들이었습니다. 죄목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무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치는 독일뿐 아니라 그들이 지배한 유럽 곳곳에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죄수를 대거 수감했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했음은 물론, 나중에는 생체실험을 하는 등 악랄함의 끝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죽이기도 아깝다며 가스실에서 한꺼번에 죽이기로 했죠.
나치가 패망한 뒤 강제수용소는 해방되었고, 그때까지 생존한 죄수들은 풀려났습니다. 워낙 야만적인 장소였고 전염병이 도는 등 위생에도 문제가 있어 당장 때려부셔야 마땅했지만 그 중 일부는 기념관으로 보존됩니다. 가해자인 독일에서도, 피해자인 체코나 폴란드에서도, 상징적인 몇 곳은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기념관으로 바꾸어 공개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을 맞아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 7곳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는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홀로코스트 못지않은 폭력의 희생을 당한 민족으로서 "남 일 같지 않은" 상처와 아픔을 느끼고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의 현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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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폴란드
왜 1월 27일이 기념일이 되었을까요? 1945년 1월 27일에 소련군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는 독일어 지명이고, 폴란드어 지명으로는 오시비엥침(Oświęcim)이라고 합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가장 최악의 대학살이 벌어진 곳입니다. 수용소를 만든 목적 자체가 죄수를 대량학살하기 위함이었기에 이러한 강제수용소는 별도로 절멸수용소(Vernichtungslager)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 악명높은 가스실을 포함하여 최소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현장이 고스란히 공개되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1수용소와 2수용소로 나뉘어 있고, 그 중 비르케나우(Birkenau)라 불리는 2수용소가 대학살의 현장입니다. 1수용소는 가이드투어로 볼 수 있어 사전 예약이 필수, 2수용소는 자유롭게 관람 가능합니다.
오시비엥침은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에서 가깝습니다. 이 외에도 절멸수용소로 분류되는 대학살의 현장은 대부분 폴란드에 위치합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독일
나치가 최초로 만든 강제수용소는 다하우(Dachau)에 있습니다. 1933년 생겼으니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만든 곳입니다. 실제 대학살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가스실 등 홀로코스트의 도구(?)들은 모두 다하우에 그 원형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여기가 홀로코스트의 프로토타입인 셈입니다.
나치는 이러한 수용소를 만든 이유를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함"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나치에 반대하는 지식인,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이 주 대상이었죠. 다하우는 뮌헨(München) 근교에 있습니다. 뮌헨은 나치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노골적으로 정치범을 수용한다며 이런 시설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지만 다하우 수용소는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즉, 나치 독일이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고 서구 사회에서 충격을 받게 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최초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서 아우슈비츠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치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독일
다하우가 최초라는 상징성이 있다면, 독일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수감하고 많은 사람이 죽은 최악의 수용소로는 단연 바이마르(Weimar)의 부헨발트(Buchenwald) 강제수용소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부헨발트는 바이마라 지역의 산 이름입니다.
아우슈비츠나 다하우 등 다른 수용소는 정문에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구를 새겨두었습니다. 강제노역을 시키는 선전문구죠. 그런데 부헨발트 수용소 정문에는 "Jedem das Seine"라는 문구가 있는데, "모든 것은 각자의 책임" 정도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한 마디로, 니들이 지금 고통받는 건 다 니들 죗값이다, 뭐 그런 미친 소리쯤 되겠습니다.
심지어 부헨발트 수용소는 해방 후에도 소련군의 수용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치범들의 수용소가 되어야했죠. 물론 현재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기념관에는 이런 곱절로 희생당한 역사를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독일
작센하우젠(Sachsenhausen) 강제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수도이기도 했던 베를린(Berlin) 근교 오라니엔부르크(Oranienburg)에 있습니다. 당시 베를린의 인구가 아주 많았고, 당연히 그 많은 인구 중 유대인이나 정치범도 많았겠죠. 나치는 전철을 만들어 베를린에서 죄수를 싣고 오라니엔부르크까지 편하게(!) 이송했습니다. 이 전철이 독일 에스반(S-bahn)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베를린의 강제수용소에서 대학살을 벌였다가 소문이 나면 안 좋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대놓고 학살하기보다는 생체실험 등 암암리에 나쁜짓을 많이 벌인 장소입니다. 지금도 그 생체실험실이 그대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가스실에 버금가는 울렁거림을 주는 곳입니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역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소련군의 수용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 독일
앞서 다하우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했는데요. 다하우가 두번째였고, 가장 먼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곳이 바로 베르겐(Bergen)에 위치한 베르겐벨젠(Bergeb-Belsen) 강제수용소입니다. 베르겐 자체도 작은 마을이고 주변에 큰 도시는 없습니다. 그나마 여행지로 좀 알려진 주변 도시는 첼레(Celle), 더 멀리까지 넓히면 하노버(Hannover)나 함부르크(Hamburg)가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에 편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독일에서 강제수용소를 보고자 하는 여행자는 대개 앞서 소개한 다하우나 작센하우젠 또는 부헨발트를 찾아가는데,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베르겐벨젠에 수용소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여기서 숨진 한 명의 무고한 죄수를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안네 프랑크. 우리는 안네 프랑크가 암스테르담에 숨어있다가 끝내 발각되어 잡혀간 스토리를 잘 알고 있으며, 그 때 작성한 일기가 유명합니디만, 그렇게 잡혀간 안네 프랑크가 끝내 병으로 숨진 강제수용소가 여기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는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를 찾아오죠. 안네 프랑크는 당시 희생자의 아이콘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참고로, 안네 프랑크는 1945년 2~3월께에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는 1945년 4월에 해방되었습니다. 불과 1~2개월 차이입니다.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독일
먼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여기는 가보지 못했고 그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 강제수용소는 그동안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가 최근 들어 점차 연구가 진행되는 곳입니다.
그 이유인즉슨, 여기는 여성 전용 수용소였습니다. 처음에는 매춘부 등 나치의 이념에 반하는-사회 질서를 흐리는- 여성 죄수를 수감하는 용도였는데 나중에는 정치범도 많이 수감됐죠. 주로 독일인 여성이 그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몹쓸 짓이 많았다고 하네요.
독일이 인종대학살까지도 낱낱이 밝혀내고 공개하며 사과하는데, 같은 시기에 벌어진 성폭력 문제는 아직 그렇게 낱낱이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일단 해방된 여성 수감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입을 닫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구동독에 속한 곳이라 당시 시대상황상 적극적으로 밝혀내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아무튼 2000년대 들어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앞서 소개한 홀로코스트와는 또 다른 차원의 폭력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 오스트리아
마지막 장소는 당시 나치에 의해 독일로 병합되었던 오스트리아에 남은 가장 큰 강제수용소입니다. 린츠(Linz) 부근에 있는 마우트하우젠(Mauthausen) 강제수용소인데요. 인근에 채석장이 있어서 그야말로 고된 노동을 위해 만든 장소나 다름없습니다. 추정치이기는 합니다만, 여기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는 위에 소개한 다하우, 작센하우젠, 부헨발트 수용소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잔혹했다는 건데요.
그 상징적인 장소는 소위 "죽음의 계단"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채석장에서 돌을 캐서 직접 가지고 168개의 계단을 내려와야 해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든 수감자들이 무거운 돌을 들고 울퉁불퉁한 계단을 내려오는 게 말이 안 되죠. 누구 하나 쓰러지면 계단 밑으로 도미노처럼 다 쓰러지고 돌에 깔리게 되죠. 그래서 죽음의 계단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수감자를 처벌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합니다.
원래 죽음의 계단도 오픈되어 있었는데, 지금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되었다고 나옵니다. 아무튼, 히틀러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이런 미친 짓은 버젓이 자행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혐오했다고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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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폴란드 1곳, 독일 5곳, 오스트리아 1곳, 총 7곳의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모두 입장료는 없으며, 가이드투어 신청 시에만 비용이 발생합니다(그러니 아우슈비츠 1수용소는 유료라고 해야겠네요).
글로만 보아도 불쾌하죠. 즐겁고 유쾌한 것만 보아도 시간이 모자른데 이런 불쾌한 걸 보려고 일부러 가야 할까요?
네, 일단 한 곳이라도 관람해보세요. 그 불쾌한 감동은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유럽의 역사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내 나라의 역사와도 공유되는 부분이기에 더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가해자인 독일도 이렇게 몇 번이고 사과하고 반성하는데,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는 사과는 고사하고 소녀상 하나 세우는 것 가지고 난리를 떠는 상반된 현실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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