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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49. 공간 재활용이란 이런 것, 유럽의 문화공간 Top 5

요즘에 "투기"라는 키워드와 함께 언론에 굉장히 많이 나오는 동네가 목포 구도심이죠. 제가 목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동네 사진만 봐도 이걸 투기라고 하니 난감하더군요. 아무튼,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투기라는 누명을 쓰게 한 원인이 옛 면화 공장터를 인수하여 박물관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하죠. 공장터 사진까지 보면서 자연스럽게 유럽의 많은 문화공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수명이 다한 공간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공간의 용도를 바꾸고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는 것을 이른바 "공간 업사이클링", 즉 공간 재활용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도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죠.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개념이며 도시재생의 트렌드입니다.


특히 공간 업사이클링의 선두주자는 유럽입니다. 산업화 시기에 무수히 생긴 공장이 이제 문을 닫고 버려진 곳이 많은데, 이걸 다 때려부수고 고층건물을 짓는 대신 공간을 재활용합니다. 비록 문을 닫았지만 공장이 가동되던 시기도 역사의 한 부분이며, 폐공장은 그 역사의 증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철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주목할만한 다섯 가지 공간 업사이클링의 모범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성공사례는 단연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을 들 수 있겠습니다. 폐공장은 아니지만, 문 닫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하여 파리의 인기명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베를린의 함부르거반호프(Hamburger Bahnhof) 미술관 등 폐기차역에 미술관이 생기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목포에서 공간 업사이클링을 꿈꾸는 그 분이 하도 "굴뚝"을 강조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 장소가 바로 연상되더군요. 굴뚝이 아름다운 곳,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입니다. 시내 한복판에 화력발전소가 있었는데, 공해 문제로 가동이 중단되고 버려진 곳을 현대미술관으로 재단장하였습니다. 국민의 건강보다는 경제발전이 더 중요하다며 시내 한복판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었을 굴뚝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저는 이런 보존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봐요.

공간 재활용에 있어서 세계 최고는 독일 아닐까요? 유명한 사례가 너무 많아 딱 하나만 고르기 힘들었는데, 베를린의 쿨투어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를 소개합니다. 직역하면 "문화의 양조장"이라는 뜻인데, 원래 맥주공장이 있던 곳입니다. 단순한 공장 건물 하나가 아니라 공장의 전체가 다 남아있으며, 보일러실이 공연장이 되는 등 각각의 장소마다 저마다의 목적에 맞게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방송국도 있고, 박물관도 있고,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공장의 안뜰은 수시로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쿨투어브라우어라이처럼 큰 공장의 건물과 부지 전체를 하나의 문화단지로 뒤바꾸는 사례는 최근 유행(?)이라 해도 될 정도로 유럽 각지에서 성행하는데, 문 닫은 섬유공장을 복합 쇼핑몰, 박물관, 문화센터 등이 한 데 모인 엔터테인먼트 단지로 만든 폴란드 우치(Łódź)의 마누팍투라(Manufaktura)도 그 중 하나입니다. 즉, 이러한 공간 재활용은 선진국뿐 아니라 유럽의 후발국가들도 모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의 가소메터(Gasometer)도 흥미로운 사례죠. 이 건물의 용도는 가스 저장소였습니다. 지금은 네 채의 건물이 각각의 용도를 가지고 문화공간이나 쇼핑시설, 박물관, 사무실 등으로 사용됩니다.



기차역, 발전소, 공장, 가스저장소 등 수십년 전에 지어진 장소의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내부만 단장하여 새로운 용도를 덧입힌 공간 업사이클링의 사례들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필요없는 건물들이고, 냉정히 말해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좀 삭막하고 멋없고 낡은 건물들이라 미관상 안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 자체가 역사의 일부이므로 없애지 말고,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여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공간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과거를 존중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유럽의 정신입니다.


그냥 밀어버리고 100층짜리 빌딩을 올리면 떼돈을 벌겠죠. 박물관 공간이 필요하다면 고층건물을 짓고 그 안에 박물관을 만들어도 되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겠죠.


공간 업사이클링은 돈보다 소중한 가치의 창조와 계승에 주목합니다. 결국 그 가치를 인정 받으면 세계에서 구경하러 옵니다. 저 역시 그런 걸 보려고 유럽에 갑니다. 100층짜리 빌딩이나 화려한 백화점을 보러 가는 게 아닙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