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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50. 프라이부르크 꼬마 하천, 베힐레

<알.쓸.신.잡3>에 나온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의 명물, 베힐레(Bächle)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베힐레는 프라이부르크 시가지를 따라 흐르는 조그마한 도랑입니다.

발 한 쪽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도랑이 골목골목을 따라 시가지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일부 구간은 지하로 흐르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지상으로 흘러 이렇게 도시 전체에 꼬마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독일어로 냇물을 뜻하는 바흐(Bach)의 축소형 명사 베힐라인(Bächlein)에서 유래합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책을 쓸 때에는 배클레라는 표기를 인용하면서 배클레(베힐레)라고 적었는데, 이건 틀린 게 맞구요. 개정판부터는 베힐레라고 정정해둘 계획입니다.

원래 12세기경부터 독일에서 이런 수로를 만들어둔 경우가 흔했다고 합니다. 이런 수로의 용도는, 상수도 역할도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소방용수의 공급입니다. 중세에는 한 번 불이 나면 목조주택이 겉잡을 수 없이 타서 거리 전체에 불이 번지기 때문에 빨리 불을 끄는 게 중요했는데, 소방차도 없던 시절 물을 길어와서 뿌리면 이미 늦죠. 그래서 온 도시에 물이 흐르게 해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수도 시스템도 발달되고 소방 시스템도 갖춰진 이후 베힐레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죠.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로를 만들고 마차가 다니고, 훗날에는 자동차나 자전거가 다니는데 걸림돌이 되니까 다 덮어버렸습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도 베힐레가 없어질뻔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시내에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상수도망이 파괴되어 소방용수를 조달할 수 없을 때 베힐레 덕분에 큰 화를 면했다고 하네요. 전후 도시를 복구할 때에도 베힐레를 그대로 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베힐레에 흐르는 물은 뒷산에서 발원된 깨끗한 강물을 끌어옵니다. 또한 수로를 수시로 청소하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관리하기에 아주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만약 프라이부르크에 처음 방문한 외지인이 베힐레에 발이 빠지면 프라이부르크 시민과 결혼하게 된다는 속설도 전해진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미 결혼한 사람이면? 실제로 어떤 유명한 사람이 프라이부르크에 처음 왔다가 발이 빠졌습니다. 그 사람은 그 전까지 세 번 이혼하고 네 번째 부인과 살고 있었는데, 베힐레에 빠져서 네 번째 이혼하고 프라이부르크 시민과 재혼하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유명인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발이 빠질 당시 독일 총리였습니다. 

시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자기 집이나 가게 앞 베힐레를 앙증맞게 꾸미기도 하구요. 베힐레에서 장난감 보트 경주대회를 열기도 한답니다.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이기도 하죠.


단순히 자부심만 높은 게 아닙니다. 사실 베힐레의 존재는 시민에게는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을 겁니다. 잠깐 한눈 팔다가 넘어질 수 있고, 자전거가 걸려서 크게 다칠 수도 있겠죠.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면 쓰레기가 온 도시를 돌아다니는 꼴이 되니 청결히 유지되도록 더 각별히 신경써야 합니다.


실제로 1950~60년대에는 베힐레 때문에 자동차가 건물과 충돌하거나 행인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 소송을 거는 등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다 겪으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베힐레입니다. 독일에 이런 수로를 일부 구간만 보존하는 케이스는 있지만 이렇게 전구간이 다 보존됨은 물론 아직도 작동하고 있는 곳은 프라이부르크가 유일합니다.

이 사진에 잘 나왔는데요. 베힐레 위를 덮어버린 구간이 있죠. 사람이나 자전거가 건너가야 하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베힐레 옆으로 트램 철로가 놓여있는데, 트램에 타고 내리다가 수로에 빠지면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구간은 베힐레에 보도블럭을 덮어 물의 흐름은 유지하고 시민의 안전은 챙깁니다.

베힐레는, 설령 좀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아날로그적인 삶을 감수하면서 도시를 깨끗하고 예쁘게 지켜나가는 프라이부르크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가 분명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