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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52. 호캉스란 이런 것! 바이에른 사이트슬리핑

요즘 "호캉스"가 유행입니다. 특별히 뭘 하지 않더라도 좋은 호텔에서 뒹굴거리며 재충전하는 게 휴가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건데요. 휴가를 떠나서도 하루이틀쯤은 특색 있는 호텔에서 뒹굴거리며 힐링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죠. 호캉스를 꼭 집 근처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사실 호텔 수준은 한국이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유럽의 내로라 하는 호텔도 어지간해서 한국인의 눈높이를 넘어서기 힘듭니다. 넓은 객실, 최상급의 어매니티, 우수한 시설, 깍듯이 모시는 직원, 매일 새 방처럼 청소해주는 룸서비스가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유럽에서는 하루밤에 수십만원 하는 최고급 호텔이 아니고서는 쉽게 마주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특색있는 대안이 있습니다. 객실은 좁을지 모릅니다. 친절하지만 깍듯이 모시지는 않는 정중한 직원들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따로 요청하지 않으면 매일 청소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하루밤은 다른 의미에서 신선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바로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사이트슬리핑(Sightsleeping)입니다.


바이에른은 뮌헨, 뉘른베르크 등이 있는 독일 동남부의 주(州) 이름이죠. 사이트슬리핑의 개념은 뒤에 설명드리기로 하고, 우선 예를 들겠습니다. 이런 호텔에서의 하루밤입니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 그라이나우(Grainau)에 있는 로만티크 알펜호텔 박센슈타인(Romantik Alpenhotel Waxenstein)은 눈만 돌리면 높은 알프스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습니다.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멍때리는 것도 신선놀음입니다.

바트 브뤼케나우(Bad Brückenau)라는 작은 온천도시에 있는 도린트 리조트 앤 스파(Dorint Resort & Spa)는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1세(Ludwig I)의 별궁을 호텔로 개조한 장소입니다. 루트비히 1세는 그 유명한 옥토버페스트를 만든 사람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국왕이 노닐던 별장에서 온천물에 몸을 지지며 힐링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호텔은 현대에 들어 신관을 짓고 개조했기 때문에 왕이 노닐던 시절과 100% 같은 모습은 아닙니다만, 그 대신 최신식 스파 시설을 갖추었으니 오히려 더 장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파사우(Passau)의 호텔 빌더만(Hotel Wilder Mann)은 당신을 바로크 시대로 인도합니다. 건물만 옛날 바로크 건축물이 아니라 그 내부의 인테리어까지 모두 기 시절의 것을 꾸며놓았습니다. 대충 흉내내서 만든 게 아니라 모두 손때 묻은 오래 된 가구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백년 된 침대에서 잔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삐거덕거리는 낡은 건물에 낡은 가구들, 당연히 최신식 호텔보다 편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런 고풍스러운 바로크 시대의 하루밤을 대체 한국의 어디에 가서 경험해보겠습니까.

100년 넘은 아르누보 양식의 호텔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며 가업을 이어 운영 중인 퓌센(Füssen)의 히르슈 호텔(Hotel Hirsch)은 각 객실마다 바이에른의 역사 속 인물이나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춰두었습니다.


이렇듯 옛 궁전, 고성, 옛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오래된 건물을 호텔로 단장한 것만 사이트슬리핑이 아닙니다.

뉘른베르크(Nürnberg)의 아트 앤 비즈니스 호텔(art & business Hotel)은 최근 개관한 아담하고 세련된 현대식 호텔인데요. 뉘른베르크에서 활동하는 지역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그들의 작품으로 객실 내부나 통로, 테라스, 라운지 등을 장식합니다. 즉, 호텔이 하나의 갤러리가 되었습니다.

독일 알프스 최고봉 추크슈피체로 올라가는 관문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의 크바르티어(quartier)는 마치 세련된 디자인 호텔 느낌의 산장을 보는 듯합니다. 산골짜기 마을에 위압적인 거대한 리조트가 아니라,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아담하고 뾰족한 산장을 만든 것 같아 그 철학이 인상적입니다. 일부러 TV 등 "외부와 연결"하는 장치를 없애 온전히 산의 정기를 받으며 힐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즉, 사이트슬리핑은 꼭 전통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전통과 현대의 구분을 두지 않고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철학적인 가치가 있는 곳들이 속해 있습니다. 또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뮌헨 근교 아잉(Aying)은 아잉어 맥주가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한데요. 이 아잉어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브라우어라이가스트호프 호텔(Brauereigasthof Hotel)은 가장 신선한 아잉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고풍스러운 고급 호텔입니다.

다뉴브강(도나우강)이 굽이치는 계곡에 유서 깊은 벨텐부르크 수도원(Kloster Weltenburg)이 있습니다. 여기도 맥주를 아주 기똥차게 만드는 곳인데요. 수도원 내에 성 게오르그 게스트하우스(Gästehaus St. Georg)라는 이름으로 숙박업소를 운영합니다. 강에서 배 타고 풍경 보고, 모래톱에서 놀다가 수영도 하고, 그 자리에서 만든 맛있는 맥주도 먹고, 하루밤 제대로 놀면서 힐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켈하임(Kelheim)이라는 도시에 있는데, 인근의 큰 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유람선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런 호텔들은 다 비싸지 않냐구요? 그렇진 않아요. 3성급 호텔은 3성급 수준의 요금을 받고, 5성급 호텔은 5성급 수준의 요금을 받습니다. 사이트슬리핑이라고 해서 가격이 더 비싼 건 아니에요.

호스텔도 있습니다. 저렴한 도미토리도 사이트슬리핑이 될 수 있습니다. 뉘른베르크의 카이저성(Kaiserburg)의 한 건물을 개조한 유스호스텔(Jugendherberge)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사이트슬리핑이 뭐란 말인가요?


관광을 영어로 사이트시잉(Sightseeing)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곳(Sight)을 보는 것(Seeing)이 관광(觀光)이죠. 사이트슬리핑(Sightsleeping)은 눈에 보이는 곳(Sight)에서 자는 것(Sleeping)을 뜻합니다. 즉, 호텔에서의 하루밤이 곧 관광에 버금가는 체험 또는 휴식을 제공하는 숙박업소를 말합니다.


사이트슬리핑은 바이에른주에서 매년 심사를 거쳐 선정하여 자격을 부여하는 일종의 인증제도 같은 것이구요. 따라서 사이트슬리핑 숙소는 모두 주정부의 공인을 받은 우수한 곳이라고 보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증을 남발하면 변별력이 없지 않을까요? 올해 기준으로 사이트슬리핑 인증을 받은 곳은 딱 37곳에 불과합니다. 그 넓은 바이에른주를 다 통틀어 37개뿐이니 정말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적용한다고 봐야겠죠. 게다가 이 숫자가 매년 변해요. 즉, 한 번 선정된 후에도 재심사에 떨어지면 인증이 만료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에 나온 호텔도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이트슬리핑 숙박업소 전체 목록은 바이에른주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업소마다 선정사유가 함께 안내되어 있습니다. 아래 관광청 로고를 클릭하면 연결됩니다.

유럽의 호텔 문화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고 서두에 말씀드렸죠. 넓고 좋은 최신식 호텔룸에서 뒹굴거리는 재미가 아니라, 호텔에서 하루 자는 그 행위 자체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는 특색 있는 숙박이 주는 재미. 한국과는 또 다른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바이에른의 사이트슬리핑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