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Berlinale)가 열리는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해드린바 있는데,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일(2월 7일)에 맞추어 포츠담 광장의 수많은 어트랙션 중 한 곳에 포커스를 맞춘 글을 올려봅니다.
이런 고층건물이 둘러싸고 수많은 자동차와 행인이 지나가는 교차로 겸 광장인 포츠담 광장에 정말 안 어울리는 구조물이 하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름하여 통일정(Pavillon der Einheit). 직역하면 "통일의 파빌리온" 정도가 될 테니까 통일정이라는 이름은 의역이 아닌 본래 의미입니다.
통일정은 진짜 한국식 정자입니다. 2015년 설치되었으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실제 통일의 장소인 포츠담 광장에 설치하였으니 그 의미가 매우 뜻깊다 하겠습니다. 앞선 글에서 통일정을 소개해드릴 때에는 여기에 출입금지 울타리가 둘러 있어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지만, 보시다시피 울타리는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훨씬 보기 좋습니다.
한국문화원에서 베를린의 협조를 얻어 만들었으며, 실제 한국에서 공수한 목재를 가지고 창덕궁 낙선재에 있는 상량전을 그대로 본따 완성되었습니다. 실제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정자의 이미테이션이니 당연히 우리 눈에 낯익을 수밖에 없고, 대충 한국 스타일을 흉내낸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자와 똑같이 생겼으니 어색하지 않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통일정 옆에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원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장벽이 놓인 자리가 실제로 분단의 경계선입니다. 즉, 통일정은, 이제는 통일을 이룬 옛 분단의 경계선 위에,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분단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며 설치된 것이니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울타리를 걷어내더니 제대로 관리하려는 의지가 보이네요.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사진엽서와 브로셔를 비치해두고 있습니다. 독일인의 시선에서는 좀 생뚱맞게 보일 수 있을 텐데, 이 정자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성실하게 안내합니다.
그런데 통일정의 위치는 포츠담 광장의 남쪽 끄트머리에 해당되는 후미진 곳에 있습니다. 아무리 분단의 경계선 위에 만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너무 구석진 곳에 쳐박아두어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건 아닐까요?
이렇게 통일정 바로 뒤편으로 공원이 있습니다. 사진 우측의 흙무더기 잔디밭의 반대편은 완만한 경사면으로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낮부터 일몰까지 해를 받기 좋은 위치라 수많은 사람들이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곳입니다. 그런 장소 바로 앞에 있으니 오고가며 한 번씩 쳐다보게 될 거에요.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정은 정말 주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이국적인 설치물을 베를린에서 흔쾌히 허가한 것이 굉장히 인상 깊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통일을 진심으로 염원한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통일정은 한국문화원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목재 정자는 매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도시 한복판에 있으면 쉽게 훼손될 수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고 유지보수비도 많이 듭니다. 모쪼록 한국이 통일되는 그 날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도 멀끔한 모습의 통일정이 포츠담 광장의 한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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