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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58. 햄버거의 기원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햄버거(Hamburger)는 독일 함부르크(Hamburg)를 어원으로 합니다. 함부르크의 형용사형인 함부르거(Hamburger)가 곧 햄버거죠.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출발해 미국에 도착한 독일 이민자와 선원을 통해 그들의 고기요리가 전해져 햄버거가 되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햄버거 패티가 전해져서 이것을 함부르크(햄버그) 스테이크(Hamburg Steak)라고 부르다가 빵 사이에 넣어 먹는 것을 햄버거 샌드위치라고 불렀고, 줄여서 햄버거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참고로, 우리는 함부르크(햄버그) 스테이크를 함박스테이크라고 부르죠.


햄버거가 1천년 전 요리도 아니고 1800년대 후반 내지는 190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했을 때 정확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의외입니다. 그래서 햄버거의 역사에 기원에 대해 참 많은 설이 존재하는데, 어쨌든 그 이름부터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파생된 것은 분명하니 햄버거의 기원을 함부르크라고 이야기하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저 역시 <프렌즈 독일>에서 그렇게 소개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분량상 책에 일일이 적을 수 없는, 햄버거의 기원에 대한 TMI를 줄줄 이야기해려고 합니다. 먼저 햄버거 말고 다른 독일 요리를 보여드릴게요.

뮌헨에서 먹은 플란체를(Pflanzerl), 베를린에서 먹은 불레테(Boulette)입니다. 모양은 조금 달라도 조리방식은 유사합니다. 고기를 갈거나 다진 뒤 뭉쳐 구워먹습니다. 한국의 떡갈비나 동그랑땡 같은 방식, 서양의 미트볼 같은 방식의 요리입니다.


다짐육을 뭉쳐 먹는 것은 몽골의 유목민족에게서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생고기(육회)를 먹었고, 이것을 타타르 스테이크라고 합니다. 지금도 체코에서는 타르타르를 즐겨 먹죠. 그러나 익혀먹는 걸 선호하는 유럽인은 이것을 구워먹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지역별로 레시피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조리하였습니다. 플란체를과 불레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참고로 불레테는 프랑스어 불렛 드 비앙드(Boulette de viande)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걸 직역하면 "고기 공", 즉 미트볼입니다. 다시 말해,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이러한 방식의 요리가 보편적이었다는 방증이겠습니다. 아, 쉬운 예도 있네요. 이케아 미트볼이 유명하죠. 스웨덴에서 미트볼을 가정식처럼 널리 먹는다는 방증입니다.

이러한 류의 요리를 지칭하는 독일어도 있습니다. 위 사진은 정작 스테이크가 소스 밑에 숨었지만 하크스테이크(Hacksteak)입니다. 독일어로 다짐육을 뜻하는 하크플라이쉬(Hackfleisch)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프리카델레(Frikadelle)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듯 보편적으로 해먹던 방식이었으니 함부르크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인들(당연히 그들이 모두 함부르크 사람일 리는 없고 독일과 북부 유럽 전역에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이 "함박스테이크"를 먹은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1800년대 중후반 당시 유럽과 미주를 연결하는 가장 인기있는 배편은 함부르크-뉴욕 구간이었다고 해요. 뉴욕에 도착한 독일 이민자는 고향이 생각날 때 그들이 해먹던 식으로 하크스테이크(프리카델레) 같은 요리를 해먹었습니다. 이게 미국에 퍼지면서 "함부르크에서 온 사람들이 해먹는 음식"이라고 하여 함부르크 스테이크(=햄버그 스테이크)로 불리었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에서 한 상인이 너무 바쁜 나머지 햄버그 스테이크를 빵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팔았던 것에서 오늘날의 햄버거가 유래했다는 설이 있죠. 빵 사이에 끼워먹는 샌드위치 방식의 햄버거의 기원에 대해서도 설이 워낙 많습니다만, 아무튼 독일에서 전래된 음식을 미국에서 햄버그 스테이크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햄버거로 진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저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1847년부터 함부르크-뉴욕 구간의 운항을 시작한 함부르크 아메리카 라인(Hamburg-Amerikanische Packetfahrt-Actien-Gesellschaft)이라는 운송회사에서 선내식으로 하크스테이크 같은 다짐육을 구워서 빵 2개 사이에 넣어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햄버거죠. 미국에서 발명된 햄버거보다 족히 반세기 빠른 "최초의 햄버거"라고 해도 되겠죠.

(이건 국내의 어떤 전문가도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은 저만의 "설"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아하" 싶었던 게 있습니다.

독일 소시지는 워낙 유명하니 잘 아실 텐데요. 이렇게 빵 사이에 끼워먹는 게 일반적인 식사방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는 어지간한 재료는 다 빵에 넣어서 먹습니다. 들고 먹을 때 손을 더럽히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주식인 빵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크스테이크가 귀족이 먹는 고급요리가 아니라 서민도 먹었던 가정식과 유사하다면, 당연히 하크스테이크를 이렇게 빵에 넣고 먹는 문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먼 길을 가는 크루즈 선박에서 일일이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다 챙기고 설거지까지 하면서 식사를 제공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독일인은 늘 하던대로 빵 사이에 끼워먹었을 거라고 유추하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빵 2개인지, 빵 1개를 갈라서 먹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빵 2개 사이에 끼워먹는 것처럼 보였겠죠. 그 모습을 미국인도 보았을 것이고, 또 고향을 그리워한 독일 이주민도 이런 식으로 먹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상 저 역시 유추만 할뿐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즉 "독일인은 어지간해서 빵 사이에 재료를 넣어 한꺼번에 먹는다"는 사실을 여기에 대입해보니 최초의 햄버거는 미국이 아니라 독일에서 -어쩌면 대서양 위에서- 탄생했다고 이야기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햄버거 문화가 꽃피운 곳은 함부르크가 아니라 뉴욕인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함부르크의"라는 뜻의 Hamburger라는 단어에서 응용하여 치즈버거 베지버거 등 Burger가 하나의 일반명사화 되도록 식문화를 발전시킨 것도 미국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어쩌면 원조일지 모르는 독일에서는 고유의 햄버거 문화를 창조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보기론,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Hamburger를 미국식으로 햄버거라고 발음하지는 않고 독일어식으로 함부르거(실제 발음으로는 "함부거")라고 부르는 차이 정도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함부르크가 햄버거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함부르크에 가면 역사적인 햄버거 가게가 있지 않을까요? 이 또한 No입니다. 애당초 햄버거를 "함부르크의"라는 단어로 부른 것은 이 음식이 함부르크에서 온 게 아니라 함부르크에서 배 타고 온 독일인에게서 온 것이니까 함부르크라고 해서 특별한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이런 건 있어요. 독일에서 햄버거라고 적은 음식은 반드시 쇠고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햄버거라고 적고서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을 섞어 만들면 불법입니다. 치즈버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돼지고기 등 다른 재료를 사용할 경우 반드시 이를 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건 참 독일답죠.


마지막으로, 그러면 독일에서는 어디로 가야 햄버거가 제일 유명한가요? 햄버거 문화를 꽃피우고 세계에 전파한 곳은 미국 뉴욕이죠. 독일에 "제2의 뉴욕"이 있습니다. 네, 정답은 베를린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