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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64.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프린 암 킴제

증기기관은 요즘엔 거의 쓰이지 않죠. 그러나 요즘에도 증기기관이 남아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관광상품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일부러 증기기관으로 뭔가를 만들어 복고풍의 분위기만 내는 게 아니라, 100년 넘게 증기기관을 그대로 유지하며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건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되겠는데요.


여기 증기기관차에 증기선까지 패키지로 준비된 매력적인 관광지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 바이에른의 휴양지 프린입니다. 정식 명칭은 프린 암 킴제(Prien am Chiemsee), "킴제(킴 호수) 옆 프린"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호수가의 휴양도시입니다.


프린 기차역에 도착하면 바로 증기기관차가 플랫폼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딱 보기에도 낡은 이 증기기관차는 1887년부터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130년이 넘었네요. 아주 느릿느릿, 거의 자전거 속도로 달립니다. 오래 전의 열차라서 검표원이 객차 사이를 아크로바틱하게 넘어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넓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리고 증기선이 바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다른 배 사진입니다. 증기선 전체가 다 나온 사진이 없어서 호수 분위기가 나는 사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증기선은 외륜선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증기기관을 바퀴를 돌려서 마치 물레방아 돌듯 바퀴가 돌아가는 힘으로 배가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또한 역사가 오래 된 배가 아직까지 퇴역하지 않고 쉴새없이 호수를 오가는 중입니다.

갑판 위에 이렇게 좌석이 마련되어 있으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호수를 구경하며 갈 수 있습니다. 점차 가속이 붙으면서 바람이 세지면 의외로 쌀쌀합니다. 한여름이라면 모를까 초여름만 해도 외투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호수의 풍경은 아주 고요하고 깨끗합니다. "바이에른의 바다"라는 별명을 가진 킴 호수(Chiemsee)입니다. 굉장히 넓어 바다처럼 보이는 곳인데, 프린 부근은 가장 끄트머리라서 바다 같은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게 뭐 중요합니까. 깨끗한 호수 위에서 배 타고 요트 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휴양지의 모습을 구경하다보면 배가 목적지인 섬에 도착합니다.

섬은 아주 울창한 숲입니다. 삼림욕하는 기분으로 숲길을 열심히 걸어봅시다. 20~30분 걸어야 하니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설렁설렁 걸어봅시다.

섬 안에서 자동차는 구경도 할 수 없습니다. 드문드문 마차가 오갈 뿐입니다. 사실상 마차가 섬 내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갑자기 화려한 궁전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냅니다.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혹시 이 분수가 낯익을지 모릅니다. 파리의 베르사유궁에 있는 라토나 분수와 똑같이 생겼거든요. 이거 "짝퉁" 아니야? 네, 복제본 맞습니다. 그리고 궁전의 크기는 베르사유궁보다 작지만 "거울의 방" 등 그 내부의 화려함은 오히려 베르사유궁을 능가하는 궁전 내부까지 구경하고 나면, 어떻게 이런 외딴 곳에 이런 궁전을 만들었을지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여기는 헤렌킴제성(Schloss Herrenchiemsee). 바로 "미치광이 왕" 루트비히 2세의 마지막 궁전입니다. 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만든 루트비히 2세는, 성이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린터호프성을 만들고, 곧장 세 번째 궁전인 헤렌킴제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 정신분열과 대인기피가 극에 달해 있었는데요. 외딴 산 속에 성을 짓고도 불안하여 아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섬 속에 안식처를 짓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고로 화려해야 했기에 파리의 베르사유궁을 모방하여 막대한 돈을 들여 궁전을 지었죠.


하지만 이 때문에 바이에른 왕실의 재산을 탕진하였고, 결국 성을 다 짓기도 전에 강제로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헤렌킴제성은 미완성입니다. 궁전의 내부는 절반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절반만으로도 파리의 베르사유궁을 능가하는 화려함을 뽐내고 있으니 어느정도로 사치를 부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궁전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정원은 아주 예쁩니다. 깨끗한 호수 속 숲이 우거진 섬으로 깊숙히 들어가니 이런 정원이 펼쳐지는데 무슨 판타지 영화에서 시공을 이동하는 듯한 재미있는 기분입니다.


헤렌킴제성은 루트비히 2세의 궁전 중 가장 덜 찾아가는 장소입니다. 아무래도 배 타고 들어가야 하니 불편하죠. 게다가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압도적으로 유명하고, 린더호프성은 "완공된 궁전"이라는 희소성이 있는데다가, 두 성을 묶어 로열캐슬투어를 진행하기도 하기에, 헤렌킴제성은 상대적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 로열캐슬투어란? 뮌헨에서 전용 버스를 타고 하루동안 노이슈반슈타인성과 린더호프성을 모두 관광하는 여행 상품. 기차로는 하루에 두 곳을 여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전용 버스투어의 장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예약하면 파격적인 1+1 혜택이 제공됩니다(극성수기 8월은 제외).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여 유로트레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증기기관차도 타고 증기선도 타는 어떤 활동(액티비티)을 덤으로 얻으면서 가장 호사스러운 궁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헤렌킴제성이 가장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활동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가장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성의 관람을 마치고 다시 섬의 숲길을 천천히 걸어 나옵니다. 항구에서 증기선을 타고, 증기선이 프린에 도착하면 다시 증기기관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갑니다.


하루의 여행 동안 오래 전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을 타며 노스탤지어를 느껴보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고 숲길을 걸으며 제대로 힐링했고, 화려한 궁전 관람에 눈이 즐거웠습니다. 오감이 즐거운 알찬 여행. 프린 암 킴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