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열차를 일종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잠을 자며 먼 길을 가는 경험,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기차에서 몇날며칠을 먹고 자지 않더라도 하루밤쯤 야간열차 타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볼 만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유럽의 야간열차 나이트젯(NJ; Nightjet) 탑승후기입니다.
그러면 NJ가 뭘까요? NJ는 오스트리아 철도청 외베베(ÖBB)에서 운행하는 야간열차입니다. 몇년 전만 해도 독일철도청의 CNL이 야간열차의 중심이었으나 수지가 맞지 않아 CNL이 폐지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 철도청에서 NJ를 열심히 밀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내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동유럽 등 여러 나라의 주요도시를 다이렉트로 연결합니다.
NJ의 객실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됩니다. 슐라프바겐(Schlafwagen; 영어로 Sleeping cabin), 리게바겐(Liegewagen; 영어로 Couchette), 지츠바겐(Sitzwagen; 영어로 Seating carriage). 순서대로 요금이 비쌉니다. 그리고 슐라프바겐은 1등석(디럭스)과 2등석이 구분됩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슐라프바겐은 침대칸입니다. 1~3인실로 구성되며 침대가 세팅되어 있습니다. 쿠셋은 좌석침대칸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평소에는 좌석인데 그걸 세팅해서 좌석에 누워 잠을 잘 수 있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일반 침대보다는 불편하구요. 그러나 슐라프바겐보다 저렴한 가격에 허리 펴고 자면서 갈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지츠바겐은 그냥 의자입니다. 의자를 뒤로 젖혀서 기대 자면서 갑니다. 마치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장 편한 건 슐라프바겐이지만 비싸고, 가장 저렴한 건 지츠바겐이지만 불편합니다. 그래서 여행자는 쿠셋을 많이 선택하죠. 쿠셋은 4인실 또는 6인실로 구분되는데, 이렇게 생겼습니다. 편의상 좌석을 1층, 2층, 3층으로 표현합니다.
쿠셋칸으로 들어가면 4인실과 6인실 모두 이러합니다. 2층은 없고, 1층은 그냥 기차 좌석과 똑같죠. 잠잘 시간이 되면 이 좌석이 침대로 변신합니다. 등받이를 접어서 위로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됩니다.
등받이를 이렇게 위로 붙이면 이게 4인실입니다. 등받이를 반만 올려 2층 좌석을 만든 뒤 거기서도 승객이 잠을 자는 게 6인실입니다. 6인실은 일단 침대로 세팅을 하면 앉아서 갈 수 없습니다. 가장 윗칸은 그래도 천장까지 공간이 좀 있어서 구부정하게 앉을 수 있기는 하지만 편하게 가는 건 아니니 세팅 후에는 다 누워서 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렇게 잠자리를 세팅할까요? 노선마다 세팅하는 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대개 밤 9시나 10시경에 정차하는 역에서 조금 오래 정차하고, 그 때 이렇게 좌석을 (물론 승객이 직접) 세팅합니다. 그 후에는 이제 누워서 가는 거죠. 만약 내가 10시 이후 정차하는 중간역에서 탑승한다면, 내 자리를 찾아서 들어가면 이미 이렇게 세팅이 끝나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잠자리를 세팅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할까요. 마치 기차에 앉듯 이 1층 좌석에 앉아서 갑니다. 4인실이면 2명씩, 6인실이면 3명씩 앉겠죠. 그런데 좁아요. 엉덩이 붙이고 앉아도 맞은편 사람과 다리가 닿을만큼 좁습니다. 6인실은 3명이 딱 붙어 앉아있으니 움직일 틈도 없습니다. 그래서 답답하더라도 차라리 누워서 가는 게 더 편하기는 합니다.
쿠셋에서 편한 좌석은 3층>1층>2층 순입니다. 다만, 3층은 상당히 높아요. 그런데 난간이 없습니다. 겁이 많은 분들은 아찔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3층이 좋은 이유. 출입문 위쪽 공간을 독점합니다. 그래서 큰 짐도 수납이 가능하고, 누가 들고 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1층은 좌석 아래에 짐을 보관하는데 아무래도 큰 짐은 잘 안 들어가죠. 2층은 짐을 보관할 공간도 없습니다. 1,3층 승객에게 양해를 구해 빈 공간에 적절히 넣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도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중품은 직접 휴대한채로 자는 건 기본이어야겠구요.
또한 3층은 창문보다도 위입니다. 즉, 창밖에 불빛이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기차역은 당연히 한밤중에도 플랫폼에 불을 환하게 켜둡니다. 야간열차가 정차하든 통과하든 플랫폼을 지날 때 창문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3층은 그런 것에 영향받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또 3층이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좌석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의자 엉덩이 쿠션이 1층의 침대 매트리스가 되고, 의자 등받이가 2층의 침대 매트리스가 됩니다. 좌석을 잘 보세요. 앉는 걸 위주로 설계되어서 굴곡이 있죠. 즉, 잠잘 때 매트리스가 평평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습니다. 3층은 오로지 매트리스 용도로 만들어져 있어서 훨씬 낫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CNL 6인실 쿠셋을 한 번 이용했는데, 그 때는 3층이었거든요. 호스텔보다도 편하게 잤습니다. NJ 6인실 쿠셋은 1층에서 잤는데, 아무래도 기울어진 곳에서 자려니 자꾸 눈을 뜨게 되네요.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침대를 접어 의자로 만드는 정차역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에 강제 기상입니다. 하지만 3층은 더 자고 싶으면 더 자도 됩니다.
다만 1층도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위 사진에 콘센트 2개가 보일 겁니다. 이게 전원의 전부. 그래서 휴대폰이나 카메라 등을 밤새 충전하려면 1층에서 자는 게 유리합니다. 3층에서는 충전이 불가능해요.
탑승 및 검표방법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티켓에 객차(WAGEN)번호가 274라고 적혀 있습니다. NJ 열차가 도착하면 274번 객차에 올라탑니다. 티켓에 UNTEN 062라고 적혀있죠. UNTEN이 "아래"라는 뜻, 즉 가장 아래 1층 좌석이라는 뜻이고 좌석번호가 062입니다. 객실에 062라는 번호가 적혀있는 칸으로 들어갑니다.
단, 여기서 주의사항 하나. 객차번호는 알고 있지만 플랫폼 어디쯤에 정차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차가 들어올 때 재빨리 출입문 앞에 써붙인 번호를 확인하고 타야 합니다. 그나마 야간열차는 오래 정차하는 편이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열차가 출발한 뒤 검표원이 와서 티켓을 확인한 뒤 티켓을 가지고 갑니다. 별도의 신원확인은 없었지만 원칙적으로 여권을 제시해 탑승자 본인이 맞는지도 확인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가져다줄 때 음료를 뭘 갖다줄지 물어봅니다. 커피 등 원하는 걸 이야기하면 끝. 이제 아침까지 검표원 얼굴 볼 일은 없습니다.
인원수에 맞게 물 1병씩 비치되어 있습니다. 공짜입니다. 그리고 침대시트, 담요, 베개도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일단 쿠셋에 들어가면 침대가 세팅되기 전에는 앉아서 간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침구류는 3층 자리에 3개씩 놓여 있습니다. 내가 3층으로 예약했다고 해서 미리 내 자리로 올라가 드러눕기 애매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러려면 침구류를 내 것만 놔두고 아래로 내려보내야 되는데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셈이죠.
내가 종점이 아닌 중간에 하차할 경우 그 하차시간에 맞춰서 검표원이 깨워줍니다. 티켓도 돌려주고 아침식사도 가져다줍니다. 다만, 너무 일찍 하차하는 바람에 아직 다른 승객이 자고 있으면 내가 앉아서 아침을 먹을 수는 없으니 짐을 들고 식당칸으로 가서 먹어야 합니다. 주요 목적지는 다 일어난 이후에 도착하도록 스케줄이 설계되어 있으니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조율하느라 야간열차는 굉장히 천천히 달리고, 정차하지 않는 역에서 몇십분 그냥 멈춰있기도 합니다. 제가 탄 열차에서는 와이파이는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차역에 그냥 멈춰있을 때 기차역의 와이파이가 잡히기는 하였습니다.
먹을 걸 들고 타도 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침대가 세팅된 후에는 앉을 수 없으니 먹지도 못합니다(흔들리는 통로에 서서 먹을 게 아니면). 만약 9~10시 이후에 야간열차에 탄다면 이미 침대는 세팅되어 있을 테니 먹을 걸 들고 타도 먹기는 어렵다, 그 전에 탑승하면 서둘러 후딱 먹고 치워야 한다, 그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기상 시간이 되고 다시 침대를 접어 좌석으로 만듭니다. 3층에서 자는 사람은 계속 뒹굴어도 됩니다. 그러고 있으면 하차 시간에 맞춰서 검표원이 아침식사를 갖다줄 것입니다. 일찍 먹고 싶으면 검표원에게 이야기해서 아침을 빨리 받아도 되고, 그런 건 융통성 있게 하면 되구요.
아침식사는 단촐합니다. 식당칸도 있으니 더 먹고싶으면 사먹을 수 있습니다. 먹은 건 그냥 좌석에 두고 내리면 끝. 화장실은 객차마다 있는데, 용변을 보는 곳과 세면실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샤워는 불가능하죠. 슐라프바겐은 객실 내에 세면대는 있고 화장실은 공용입니다. 단, 슐라프바겐 1등석(디럭스)은 샤워실과 타월까지 객실 내에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부대끼며 덜컹덜컹 야간열차의 로망을 느끼려면 쿠셋이 좋습니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면 6인실보다는 4인실로, 높은 곳에서 자도 괜찮고 밤새 충전하지 않아도 되면 3층칸(독일어로는 OBERE)으로, 충전이 중요하면 1층칸(독일어로는 UNTEN)으로 택하시면 되겠습니다.
편하게 자고 도난 걱정도 없으려면 비싸더라도 슐라프바겐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슐라프바겐은 안에서 문을 잠글 수도 있습니다. 지츠바겐은 쇠도 씹어먹을 체력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권장하지 않아요.
이상, 쿠셋 중심으로 안내해드린 야간열차 NJ 탑승후기였습니다.
야간열차 예약은 아래 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
'두.유. Travel to German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4.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프린 암 킴제 (0) | 2019.02.27 |
---|---|
#263.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것들 (0) | 2019.02.23 |
#261. 함부르크 로터바움 박물관 (0) | 2019.02.21 |
#260. 쾰른 초콜릿 박물관 (0) | 2019.02.14 |
#259. 베를린 햄버거 맛집, 부르거마이스터 (0) | 2019.02.12 |